잘 키운 병아리 10 마리가 대기업을 일구었다. 한국의 닭고기 가공업체인 ‘하림’의 성공사례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림이 최근 공정거래위가 지정하는 대기업 반열에 오를 것이 확실시 되면서 영세 기업이 대기업에 이르기까지의 일화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비록 시작은 미비했지만 그들만의 창의적인 마케팅과 적시의 비즈니스 확장, 포기할 줄 모르는 끈기로 오늘의 대기업이 되었다는 하림의 성공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해 준다.  하림의 김홍국 회장은 초등학교 4학년때 외할머니가 준 병아리 10마리에서 축산업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 병아리들을 정성껏 키워 2500원에 팔았고, 그 돈으로 다시 병아리를 샀다. 이렇게 산 병아리는 100마리에 달했다. 김 회장은 이후 농업고등학교로 진학했고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78년에 자본금 4000만원으로 닭 5000마리, 돼지 700마리 수준의 농장을 차렸다. 그러나 1982년 축산물 파동으로 돼지와 닭값이 폭락하며 사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한 농장 경험에서 축산물 값이 폭락해도 축산 가공물 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배웠고, 1986년 하림식품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당시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며 전국에 치킨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였다. 하림은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하루 매출 3000만원 이상을 기록하며 성장해갔다. 이후 10여년간 탄탄대로를 달려 1997년에는 코스닥 상장에도 성공했다. 공격적인 마케팅 덕분이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하림은 매출이 줄어들고 10%대였던 이자율은 28%까지 올랐고, 공장 가동률도 바닥을 면치 못했다. 부도 직전의 상황까지 갔다. 그러다 국제금융공사(IFC)에서 2000만달러를 유치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림은 또 다시 공격적인 사업확장에 나섰다. 1999년에는 사료제조사를 설립했고, 2001년에는 하림그룹이 출범했다. 2001년, 2002년, 2007년에는 꾸준히 계열사를 편입했고, 2008년에는 팜스코를 인수하며 돈육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이는 자신들이 필요한 비즈니스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판단해 사업확장을 추진해 나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림그룹이 최근 팬오션 인수로 그리고 있는 그림은 ‘곡물 메이저 기업’이다. 팬오션을 인수하게 되면 운임변동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게 하림의 계산이다. 6월 팬오션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면 자산 총액이 현재 4조3000억원에서 5조원을 넘어서게 된다. 한국에서 대기업 집단은 자산 총액이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으로 현재 61곳이 지정돼 있다. 끈기를 가지고 추진해 온 목표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대기업 집단에 편입되면 상호 출자와 채무 보증에 제한을 받는 등 각종 규제에 묶이지만 공식적으로 대기업 반열에 들어선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바둑에서 ‘신의 한 수’란 승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수를 뜻한다. 인생을 논할 때도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망가진 삶을 역전시킬 수 있는... 우리 인생에도 신의 한 수가 있을까.” 영화 ‘신의 한 수’에서 주님(안성기)의 대사분이다. 이처럼 ‘망가진 삶’이 아니더라도,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삶의 질을 대폭 개선시킬 결정을 한다면 우리는 이를 두고 신의 한 수라 표현한다. 아시안 게임, 88올림픽 때 치킨점으로 탄력을 받았던 하림은 외환위기에서 갓 벗어났음에도 본업에 필요한 계열사를 인수하고 체제를 정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것이 하림의 한 수였다.  이제는 곡물 메이저 기업을 꿈꾸며 신의 한 수를 던져 놓았다. 주간 포커스 신문도 하림과 같은 의지로 꾸려나가고 싶다. 2006년 5월 덴버 한국일보에서 쫓겨나 자본금 3천달러로 시작한 것이 이 포커스 신문사였다. 창간 후 6개월 정도는 몇몇 지인 광고주의 안면으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창간 2년째 되던 해에는 집 페이먼트 할 돈으로 신문 인쇄비를 주는 일이 비일비재해지면서 결국 집과 차를 날렸다. 창간 3년째부터는 포커스 칼럼의 팬들이 늘어나고, 포커스의 진가를 알아봐주는 광고주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신문외에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여력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앞으로는 웹사이트 시대가 될 것”이라는 직원의 말에 쏠깃해, 월급을 못가지고 가는 한이 있더라도 웹사이트를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한국의 전자신문 전문업체에 웹사이트를 의뢰했고, 3개월만에 완성되었다. 그렇게 가난한 시절에 탄생한 것이 바로 포커스 웹사이트였다. 한국의 대 일간지들의 웹사이트 보다도 훨씬 보기 좋게 만들어져 있다고 자부한다.

    창간 4년째 점차 신문사 운영이 안정적으로 되어가면서 언론의 역할 중의 하나인 지역사회의 문화 발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신문사 수익을 좀 챙길만도 했는데, 문화사업 확장에 대한 일종의 사명감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문화센터를 오픈하고 청소년 문화축제, 동요대회를 시작한 것이다. 짬짬이 교육세미나, 한지공예 교실, 요리교실, 노래교실 등을 오픈하기도 했었다. 창간 5년째, 전자신문을 만들었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신문을 구할 수 없다는 독자들의 하소연이 늘어나는 것을 듣고 더 많은 콜로라도 교민들이 신문을 볼 수 있도록 추가 비용을 들여서 웹사이트내 전자신문을 제작했다. 현재 웹사이트와 전자신문의 운영비용은 매달 따로 지출되어 오고 있다. 필자는 비록 작은 인구의 동네이지만 이 콜로라도에서도 잘 갖추어진 한인 언론사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이제 포커스는 신문, 웹사이트, 전자신문, 문화센터, 업소록 그리고 라디오까지 종합 언론사의 체재를 갖추고 또 다른 한 수를 두려한다. 지금까지 포커스도 하림과 마찬가지로 어려울수록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고, 지역 언론사가 갖추어야할 역량을 차근차근 확장해왔다. 물론 라디오 방송의 경영이 안정되기까지는 포커스 신문이 겪었던 고난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텐 코리아 콜로라도(Radio i10 Korea Colorado) 방송이  많은 콜로라도 한인들의 외로움을 달래고, 오래된 친구같은 존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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