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음악 시험문제에 “음악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음악의 어머니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기억 난다. 정답은 바흐와 헨델이었다. 상상력이 지나쳤던 몇 친구들이 고불고불한 파마 머리의 헨델 사진을 내 보이며 헨델이 여자라고 억지 부렸던 것도 기억난다. 바흐와 헨델의 음악사적 위대한 업적과 그들의 높은 예술가치를 숭고하기 위해 이 같은 닉네임이 붙여진 것 같다.

5월에 예정중인 제 5회 콜로라도 정기 연주회 레퍼토리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선택하고, 지난 1월부터 연습에 들어 갔다. 거대한 산맥과도 같은 헨델의 메시아를 연습하면서, 지휘자인 나를 비롯, 합창단원들 대부분이 헨델의 음악 앞에 겸허해진다. 그가 ‘메시아’, 작품 계획부터 작곡, 연주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배경과 곡의 전체적 구조, 가사 선택, 바로크 음악의 특징, 그리고 주어진 가사로 음악의 적절한 표현을 살펴 보니 이번 연주를 통해 우리가 얻는 경험과 그 의미는 너무나 크고 사뭇 다른 때와는 다른 것을 느낀다. 다행히, 이런 내용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어 보람 되고, 또한, 지면을 허락해 준 주간 포커스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5회에 걸쳐 여행을 떠나려 한다. “메시아”를 찾아서,,,

I. 헨델의 생애
바흐와 헨델, 이 두 작곡자는 출생의 운명을 같이한다. 1685년 같은 해, 같은 나라인 독일에서 태어나 바흐는 1750년, 헨델은 1759년까지 그들은 작곡과 연주의 삶으로 보내게 된다. 특이하게도 이 두 작곡자는 그들 생애 한번도 만나 보지 못했다고 한다. 바흐는 작곡의 출발부터 마지막까지 종교음악인 수난 곡, 칸타타, 그리고, 모테트 중심이었고, 헨델은 일찍부터 대중적인 장르, 오페라를 중심으로 세속 음악에서 출발 하여 그의 마지막 시기에는 종교 음악으로 바꾸게 된다. 여기서 세속 음악이라 칭하는 것은 그 당시 종교 음악(Sacred Music) 이 외의 것은 모두 세속 음악(Secular Music)이라 분류하였기에 어떤 부정적인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니다.

헨델은 뛰어난 궁정 이발사 겸 외과 의사였던 아버지 게오르크 헨델과 루터 파 목사의 딸이었던 어머니, 도로테아 파우스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바흐처럼 직업 음악가의 가계 출신이 아니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헨델이 법률 공부 하기를 바랬다고 전해진다. 가정환경이 그랬으니만큼 헨델은 어려서부터 루터 파 교회 음악에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고, 그 곳에서 첫 스승인 교회의 오르간 주자 겸 작곡가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차호를 만나게 된다. 헨델은 차호 밑에서 작곡과 오르간 그 밖의 주요 악기를 배우기 시작 했으며, 약간의 예배를 위한 곡을 쓰기 시작 했었다.

대 성당의 오르간 주자를 거쳐 대중가극장의 바이올린이스트와 챔발로 주자로 활동하면서, 헨델은 드디어, 1705년 그의 첫 오페라 ‘알미라’를 함부르크에서 공연하게 된다. 그 당시, 헨델이 활약했던 시대의 국제적 양식의 발상지는 이태리였다. 이태리에서 기교를 갈고 다듬은 음악가들이 차례로 북 유럽으로 건너가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고 각광을 받았다. 그러므로, 어느 작곡가이든 이태리를 찾는 일은 간절한 꿈이었고, 오페라에 손을 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층 더 했다.

바로크 시대(1685-1750: 바흐의 생애기간에 의해 정해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오페라의 출현에 따라 헨델 역시 함부르크 시절 그의 후원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토스카니 대공의 왕자, 가스토네 데 메디치의 도움으로 이태리로 떠나게 되고,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 그리고 로마를 방문하면서 그 곳에서 화려하고 풍부한 표현의 이태리 오페라를 작곡하게 된다. 1709년 헨델은 그의 작품 ‘아그릿피나’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며, 27회 공연을 거듭하게 된다. 그리하여, 헨델이 이태리를 떠날 때쯤 그는 유럽에서 가장 재능 있는 작곡가로 손꼽히게 된다.

이태리에서 오페라의 큰 성공과 함께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헨델은 그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많은 영어 오페라 작곡과 함께 후원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극기야 1726년 영국인으로 귀화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이후 50 편이 넘는 그의 오페라 작품들은 영국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하게 된다. 헨델의 관심은 오라토리오로 전환되면서, ‘사울’, ‘ 이집트의 이스라엘인’, ‘메시아’, ‘삼손’ ‘솔로몬’과 같은 성공적인 작품을 남기게 된다. 1751년 2월경 헨델은 불행히도 왼쪽 눈의 시력이 약해져 그의 마지막 작품 ‘에프타’ 작곡을 잠시 중단하게 되다가, 우여곡절 끝에 ‘에프타’는 그 다음 해인, 1752인 무대에 올려진다. 그러나, 이미 그의 한 시력은 잃었고 나머지 한 쪽 눈마저 시력이 멀어지고 있었다. 1753년 수술을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헨델은 완전히 실명하고 만다.

헨델은 시력을 잃었으므로 작곡활동은 거의 할 수 없었고, 악보를 외워 오르간 협주곡을 연주하였다. 그리고 동료의 도움을 받아 오라토리오를 지휘하는 일은 그치지 않았다. 그가 죽기 전 불가 10일전에도 두 번의 ‘메시아’를 연주하는 열정을 보였고, 1759년 4월 14일 아침 7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김태현
-콜로라도 한인 합창단 지휘자
-University of Norther Colorado에서 합창 지휘 박사 과정 중 :2010 여름-학위 수여 예정
-College-Conservatory of Music, 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합창 지휘 석사 졸업
-UNC를 비롯하여 지역 오페라단에서 chorusmaster, 지휘자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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