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필자는 모국을 위해, 자녀 세대들을 위해 우리 한인사회가 해야할 일들에 대해 거론한 적이 있다. 그 첫번째 사명이 오늘의 주제다. 바로 ‘동해 병기’이다. 이민와서 사는 우리들에게 역사와 민족에 대한 언급은 늘 따라다니는 꼬리표와 같은 것이지만, 자칫 고리타분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건 몰라도 우리의 무관심으로 인해 일본에게 뺏기는 것이 있어서는 절대 안된다.
지난달 워싱턴 의회 건물인 레이번 빌딩에서는 한미연구소의 주최로 토론회가 열렸다. 연설에 나선 프랭크 로즈 미 국무부 군축ㆍ검증ㆍ이행 담당 차관보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국식 발음을 거론하며 “내가 알기엔 한국에서 실제로는 ‘새드’라고 발음한다”면서 콩글리시에 대한 친근감을 표했다. 그러나 로즈 차관보는‘동해’는 몰랐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거론하며 “북한의 많은 도발적인 미사일 시험은 일본해(Sea of Japan)를 넘어가 큰 긴장을 야기했다”고 말했다. 북한 미사일은 한국만 아니라 주변국에도 위협이 된다고 설명하면서 나온 말이었다.

     같은 날 워싱턴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제임스 위너펠드 합동참모본부 차장도 동해 대신 일본해라고 말했다. 작년에 일본에 배치한 AN/TPY-2 레이더를 언급하며 “일본해와 일본 동쪽에서 탄도 미사일을 추적하는 이지스함을 배치해야 할 부담을 줄여준다”고 설명하면서, 그 또한 일본을 기준으로 일본해와 일본의 동쪽을 거론했다. 지난해 1월 미주 한인 사회가 동해 병기를 주장하며 이슈가 되자 미 국무부도 대변인 브리핑에서 “일본해 표기가 미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니 미국 관료와 군 장성이 동해라는 말은 쏙 빼놓은 채 일본해만 거론하는 것은 당사자들 입장에선 하나도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씁쓸한 현실이다. 독도에 이어 동해까지, 우리의 땅을 가지고 일본의 지명과 함께 사용하는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아예 일본 땅이라고 하니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다.
실제로 미국 대학의 수업에서 참고 자료로 이용된 세계 지도에도 동해가 East Sea가 아닌 Sea of Japan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래서 동해가 정답이었던 문제에 East Sea를 답으로 적어서 제출했지만 오답 처리가 되었고, 교수에게 건의했지만 전 세계 지도의 90% 이상이 동해를 Sea of Japan이라고 표기하고 있기 때문에 채점에는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은 유학생도 있다.

      한때 우리 정부의 정책은 동해나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여겼다. 엄연한 우리 땅을 가지고 국제 재판소까지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한민국의 안일한 대책은 일본의 적극적인 로비에 밀려, 이제 독도와 동해는 분쟁지역이 아니라 일본 땅으로 되어가고 있다. 이러다 우리 아이들까지 동해를 일본바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선 동해병기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몇가지 있다. 동해병기 법안이란 ‘병기’라는 말 그대로 함께 나란히 기록한다는 뜻이다. 이 동해병기 법안은 버지니아주에서 시작되었고, 공립학교의 교과서에 동해를 ‘Sea of Japan(일본해)’이라고만 표기하던 것을 ‘East Sea(동해)’와 함께 의무적으로 표기하도록 제정된 법안이다. 미국에서는 현재 이 법안을 SB2로 지칭하고 있다. 동해는 지리적으로 강원도 동해안에 접하고 있는 바다로서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고지도에서도 그 지명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동해는 대한민국의 명백한 영토이다. 또한 동해는 18세기까지만 해도 세계 지도에 ‘Sea of Corea’로 표기 되어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가 서양에 소개되고, 20세기에 들어 동해의 지리적 이점을 간파한 일본이 동해를 일본해로 바꾸기 위한 국제적인 로비를 펼치면서 세계 지도 위 동해는 ‘Sea of Japan’ 혹은 ‘Japan Sea’로 둔갑하게 되었다.
지난해 2월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시에서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 병기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하원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인해 버지니아주를 비롯한 미국 남부 7개주에서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한 교과서로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연방정부가 일본해 단독 표기를 공식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큰 버지니아주가 입법을 통해 동해 병기를 의무화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다. 사실 일본해 표기는 국제 지도 제작의 일반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두 개 이상의 국가가 공유하고 있는 지형물에 대한 지명은 관련국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각각의 국가에서 사용하는 지명을 병기한다는 게 국제수로기구(IHO)와 유엔지명표준화회의의 분명한 결의다. 때문에 버지니아주의 입법은 한일 양국의 외교전에서 첫 승리라는 점에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한인사회의 몇몇 사람들은 독도, 동해병기, 위안부, 한국전참전용사비 건립 등의 대한민국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가 논의될 때마다 지겨운 일이라며 아예 외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이제라도 이런 문제가 거론되면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한 ‘절대적으로 나와 관련 있는 일’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이는 이민 온 우리 세대와 자녀 세대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뉴욕주도 올해 초 동해병기법안을 다시 상정했고, 여러 주에서 이 법안 상정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여기 콜로라도도 지난해 한인회를 주축으로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칫 용두사미가 될 수 있다. 끝까지 힘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동해병기법안 추진위원회가 비록 한인회가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지만, 한인회장과 집행부가 바뀌더라도 이와는 별개로 운영되어 지속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한인들의 노력과 국민들의 염원이 담긴 법안이 곳곳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그 때 콜로라도가 빠지면 안된다. 이 빛이 미국 전역을 밝히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와 외교부, 특히 재외국민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야 한다. 모든 세계 지도에 동해가 ‘East Sea’라고 당당하게 표기될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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