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벗겨내면 좋아진다는 말에 솔깃해서….”
30대 초반의 앳된 신부 P씨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성행위에서 전혀 느낌이 없고 흥분되지 않는 등 불감증 문제로 고민했던 P씨. 어디선가 음핵포경을 없애면 좋아진다는 소리에 시술을 받았지만 실망만 남았다.
P씨의 사례처럼 진료실엔 학술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시술에 현혹됐다가 후회 가득한 얼굴로 방문하는 여성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성에 대해 강한 이중성이 있다 보니 올바른 지식이든, 비상식적 내용이든 구분 없이 무작정 성 관련 내용은 음지로 내몰린다. 이렇다 보니 음지에선 다소 근거가 부족한 시술들이 활개를 친다. 이 중 하나가 바로 여성의 음핵포경을 제거하는 수술이다.
여성의 음핵포경은 클리토리스라고 불리는 음핵이 포피로 덮여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이는 남성의 귀두포경과 마찬가지 상태다. 대개 소음순을 위로 잡아당겨서 50% 이상 포피가 음핵을 덮고 있으면 음핵포경으로 진단된다. 남성의 귀두포경에 대한 갖가지 오해보다 여성의 음핵포경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지식이 더 심하다.
포경수술에 대한 진실은 그나마 제법 알려져서 세계적으로 대부분이 하는 수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우리도 인식하고 있다. 만약 포경수술이 성기능이나 몸에 절대적인 필수 시술이라면 의료선진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적극 홍보했을 것이다. 하지만 포경수술을 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음핵포경 수술도 의학 교과서엔 불감증 등의 주된 치료법으로 소개된 적이 없다.
음핵포경에 대해선 이미 10여 년 전에 국제학술지에 그 의미가 발표됐다. 미국 보스턴 성의학연구소 뮤나리즈 박사는 음핵포경 상태가 여성의 성기능에 별 관련이 없다고 보고했다. 성기능 장애로 방문하는 여성의 80%는 음핵포경이 없으며, 겨우 20%만 음핵포경이 있음이 확인됐다. 만약 음핵포경이 여성 성기능 문제의 주된 원인이라면 불감증 여성 환자 대부분은 음핵포경 상태여야 한다. 같은 연구에서 음핵포경과 성욕·성흥분·오르가슴 등 성반응의 구체적 관련성 여부를 살펴봤지만, 어떤 성반응에도 음핵포경이 특별히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결론났다.
의학적으로 음핵포경이 문제인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는 성기능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감염의 문제이기 십상이다. 미국의 골드스틴 박사는 경피 위축성 질환(Lichen sclerosis)이나 잦은 감염을 동반한 음핵포경에서, 스테로이드 등 약물치료로 호전이 없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나 음핵포경 제거 수술이 일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요컨대 음핵포경 시술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성기능과는 별 상관없다. 전 세계에서 여성의 음핵포경을 실제로 권장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그런데도 “여성의 포경이 불감증을 일으킨다”는 등 근거가 불분명한 궤변을 늘어놓는 의사도 있다고 한다. 음핵포경 시술만 받으면 성생활에서 대단한 변화가 올 것처럼 과장해 환자를 끌어모아선 안 된다. 이는 참으로 의료인으로서 무책임한 모습이다. 혹세무민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전문가로선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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