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금 중동호흡기증후군 일명‘메르스’때문에 난리가 났다.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한국에 대한 경계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물며 메르스 발병의 원주국인 아랍에미리트마저 한국 여행을 자제하라며 자국민에게 권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과의 왕래가 잦은 LA 한인타운에서도 한국을 갔다온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꺼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태가 심각하다. 전국의 극장과 고궁, 거리 등 주요 여가시설에는 나들이객의 발길이 크게 감소했다. 또 병원의 응급실이 텅텅비고 전국의 유치원과 초중고교 2,000개에 육박하는 학교가 휴업에 들어갔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도 현저히 감소하면서, 한국은 메르스 확진 환자가 갈수록 늘어 발병 2위 국가라는 오명(汚名)까지 듣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0일 현재 100명이 넘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10대로는 처음으로 한 남자 고등학생까지 확진됐다. 이처럼 메르스는 전국으로, 모든 연령층으로 전방위 확산되는 양상이다. 의료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선진국 문턱에 있다는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걱정도 되지만, 해외에 사는 우리로서는 부끄럽기도 하다.

      한국 정부는 지난주 기자회견을 통해 확진 환자 경유 병원 24곳을 뒤늦게 공개하면서 총력 대응을 천명했지만, 아직 사태 수습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허둥대면서 국민들의 불신만 키우고 있을 뿐이다. 늦게나마 격리 대상자의 1 대 1 관리와 휴대전화 위치 추적,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실무협의체 구성, 세계보건기구(WHO)와 합동평가 실시 등의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문제는 정부가 3차 감염자를 제대로 추적하지 못하는 데 있다. 더욱이 불특정 다수와 접촉한 확진 환자나 의심 환자가 속출하면서 지역 감염의 개연성도 커지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14번째 확진 환자 옆 병상의 환자를 문병했다가 양성 판정을 받은 60대 남성은 경기도 부천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누나 집에 머물다가, 광명역으로 가서 KTX를 타고 부산까지 이동했다. 다시 지하철로 갈아타고 식당과 약국을 차례로 들르기도 했다. 부천의 한 30대 남성 확진 환자는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출근하는 등 고열 증세가 나타난 뒤에 접촉한 사람만 해도 400명 가깝다고 한다. 메르스 확산 차단에 소홀한 것은 대형 병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삼성서울병원은 한국에서 최고 수준이라는 평판을 무색하게 했다. 첫 환자를 확진한 경험을 가졌으면서도 소속 의사를 포함해 8일까지 무려 34명의 확진 환자가 나온 것을 보면 어안이 벙벙하다. 이렇다보니 정부는 방역망 밖에서 확진 환자 숫자만 발표하고 있을 뿐 속수무책이다.

      휴스턴 배일러 약대 피터 호테즈 학장은 전염병을 전문적으로 관리 통제하는 격리 병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음압병실(병실 안 기압이 외부보다 낮아서 문밖으로 공기가 나가는 것을 차단하는 시설)을 갖춘 21개 병원 가운데 메르스 환자가 방문할 경우 즉시 입원 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은 6곳에 불과하다. 독립적인 소독 시설이나 의료 폐기물 처리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국민이 직접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뒤 증상이 있는 경우는 스스로 격리 후에 의료기관에 자진 신고하고 관련 수칙을 지켜야 한다. 외부 출입을 자제하고, 대중교통과 택시 이용을 삼가고, 화장실도 가능한 단독으로 사용하며, 손을 깨끗이 씻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식기나 컵, 수저, 수건 등은 다른 사람과 되도록이면 함께 사용하지 말고 호흡기 증상과 발열 증상이 발생하면 즉시 근처 의료원으로 연락해야 된다.

       건국대학병원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가 거짓말을 한 탓에 일이 커진 경우를 보면,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삼성서울병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사실대로 한마디만 했다면 해당 환자를 곧바로 격리 병동으로 옮겨 응급실 폐쇄를 막을 수 있었다. 메르스와 싸워야 할 상당수 의료 인력이 이 환자와 접촉했을 가능성 때문에 격리 병동에 갇힌 것도 손실이다. 이 사례에서 보듯 의료계에선 메르스 확산 저지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환자와 보호자의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첫 메르스 환자인 K(68)씨도 고열로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할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여행 사실을 숨겼다. 이 바람에 이 병원은 한국 메르스 진원지가 되면서 폐쇄됐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 자진 신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나마 희소식은 호테즈 학장에 따르면 메르스는 건강하고 면역력이 강한 사람은 기침이나 고열 같은 증세를 보이지 않고 자연 치유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우디에서는 메르스 치사율이 40%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망자는 주로 다른 질병을 앓고 있던 환자나, 노약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2년부터 미국의 국립 알러지 및 전염병 연구소에서 620만 달러를 지원받아 사스(SARS) 백신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호흡기 질환인 메르스 백신도 개발 초기 단계에 착수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버텨야 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올 6월에는 여름방학을 맞아 주변에 한국을 방문한 가족들이 유난히 많다. 딱히 발열증상이 나타나지 않는한 미국에서도 입국 저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주변인들과의 접촉을 자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곳도 메르스의 안전지대가 될 수 없을지 모른다.‘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조심하고 예방해서 나쁠 건 없다. 당분간 이곳 교민들도 메르스 예방법에 대해 익혀두는게 좋을 듯 싶다.
한국도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계와 국민 모두가 총력 대처에 나선다면, 위기 극복의 저력을 가진 대한민국이 메르스 재앙 또한 막아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