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는 뚜껑 없는 감옥이 있다고 합니다. 이 감옥에 얽힌 이런 이야기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고 합니다. 신교를 박해했던 영국의 메리 여왕이 젊은 부부와 어린 세 자녀를 둔 신실한  예수를 믿는 일가족 5명을 뚜껑 없는 이 감옥에 수감했습니다. 사방이 140㎝ 정도 높이의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지붕이 없는 감옥이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탈옥할 수 있는 감옥입니다. 여왕 메리는 그 가족에게 󰡒주 예수에 대해 믿음을 지키려면 그 안에서 죽으라. 만일 살고 싶거든 신앙을 포기하고 담을 넘어 집으로 가라󰡓고 했지만 그 가족은 자신들의 신앙 양심에 따라 죽음을 선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만약 나와 내 가족이 이 뚜껑 없는 감옥에 들어갔다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과연 하나님 앞에서 나의 신앙 양심을 죽음으로 지킬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수 없겠지요.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신앙인의 양심은 하나님을 향하는 나침반과 같은 것입니다. 이 양심의 나침반이 망가지면 신앙인의 삶은 표류하고 맙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의식이 무뎌지고 맙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무딘 양심, 화인 맞은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으면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두움이 되고 맙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길이 없어 보여도 나침반 하나 있으면 찾아 갈 길이 보이듯이 크리스챤은 살아 있는 양심가지고 세상 한 복판에 우뚝 서서 길 잃은 사람들의 나침반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애굽에 팔려 종살이를 하던 요셉은 매일 같이 몸으로 자신을 유혹하는 주인집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세기39:9) 그는 자신을 유혹하는 여인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크게 의식했기에 신앙 양심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종교 개혁 당시 유럽은 가치관의 혼란과 정치적인 무질서가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위스의 제네바만은 유럽의 많은 도시들 가운데서도 가장 편안하고 살기 좋은 바람직한 도시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네바의 한사람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개혁자 칼빈입니다.  제네바의 시민들은 그를 제네바의 양심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칼빈은 단지 종교개혁을 단행한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네바라는 한 도시의 문화와 정치,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삶의 패턴을 완전히 바꿔 놓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신뢰했고 그는 문자 그대로 제네바의 양심이었고 유럽의 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한 원인, 그의 일생을 지배하고 있었던 중요한 삶의 좌우명 하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코람 데오(Coram Deo)’,  즉 이 말의 뜻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판단하실까? 이 의식이 그를 한 도시를 바꿔놓는 양심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로마 감옥에서 이제 죽을 날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그 시간에 자신의 제자인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사랑하는 제자의 모습을 이렇게 추억합니다.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디모데후서1:3). 바울은 그의 제자를 청결한 양심의 소유자로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신앙인들이 소유해야 할 신앙의 중요한 자산 중의 하나는 분명이 살아 있는 양심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실종되면 나침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오늘도 길을 잃어 방황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저기가 길이라고 저곳으로 가야 한다고 묵묵히 손을 내밀며 “내 손 끝을 보라!”고 온 몸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정말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양심이 존재하고 있느냐를 물어야 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말대로 “저 하늘에는 무수한 별이 반짝이고 내 마음속에는 양심의 도덕률이 빛나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단순히 하나님 없는 양심의 도덕률만 가기고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기 때문에 늘 필요할 때 작동하는, 늘 켜져 있는 알람시스템 같은 살아있는 양심의 소유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보이는 사람 앞에서만 살지 말고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불꽃같은 눈으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코람 데오!” “하나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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