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무더운 날씨 때문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흘러내렸다. 결국 아이들과 커뮤니티 수영장을 갔는데, 수영장에 있어도 콜로라도의 햇빛은 얼마나 따가운지 여전히 더웠다. 두어시간을 그렇게 놀고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저녁에 취재를 가야한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더 힘이 빠졌다. 날씨탓에 만사가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재기자만 보내고 집에 있을까 하고 잠깐 꾀를 부렸다. 하지만 몇달전부터 취재거리와는 상관없이 꼭 참석하고 싶은 행사여서 정신을 차리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곧바로 콜로라도 한인합창단의 10주년 연주회장으로 향했다.
 연주회내내 몰입을 하고 경청한 공연은 참으로 오랫만이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안봤으면 후회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공연장으로 오기전까지 지치고 힘들었던 몸은 어느새 활기에 차 있었다. 이번 공연은 한마디로 감동적이었다. 콜로라도 한인합창단은 매년 정기연주회마다 새로운 곡으로 도전을 해왔는데, 이번에는 한국의 음악을 선보인탓인지 그 감동이 몇곱절이었다.
 서너달전즈음 김태현 지휘자로부터 이번 공연에 대한 개요를 들은 적이 있다. ‘아리랑’이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하는 단어이기에 아리랑을 공연의 테마로 정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공연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는데, 가야금에 소프라노, 수십명의 오케스트라, 수십명의 어린이 합창단, 그리고 독일의 작곡가 초빙까지 콜로라도 한인커뮤니티에서 좀처럼 접할 수 없는, 영화로 치자면 블럭버스터 수준이었다. 당시 필자는 아마추어 동네 합창단에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수준의 공연을 준비하기에는 제작 및 기획 인원도 턱 없이 부족할 것 같아서 공연의 완성도에도 살짝 의심이 갔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역시 지난 10년동안 다져온 저력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아리랑이라는 테마에 맞추어 차근차근 공연의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가야금 연주에서 경쾌한 선율로 흥을 돋울 수도 있었지만 한국인의 정서가 살아있는 산조를 고집한 이유도 이번 테마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예전에 루브르 박물관을 간적이 있는데, 당시 필자는 교양과목으로 세계미술사 수업을 수강하고 있었다. 책에 나온 그림들이 모두 박물관에 걸려 있어서 일반 관광객보다는 이해가 쉬웠고 더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는 알고보면 더 재밌다는 뜻이다. 이번 연주회에도 알고 들으면 특별한 것이 많았다. 소프라노, 클라리넷, 타악기와 현악 앙상블을 위한 ‘몽’과 혼성합창과 가야금을 위한 ‘수련(Nympheas) 환타지’가 그렇다. 이 두 곡은 30대의 젊은 작곡가인 이도훈씨의 창작곡들로, 수련 환타지는 이번 콜로라도 한인 합창단 10주년을 위해 특별히 작곡한 곡이다. ‘몽’은 조선 중기의 명기였던 황진이가 쓴 상사몽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된 작품이다. 소프라노 이지민씨가 노래하고 클라리넷으로 애절함을 잘 표현해 청중들을 매료시켰고, 수련환타지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네의 수련 연작을 감상하고 있는 한국인을 보고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곡이다. 여기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고 동서양의 만남을 착안했고, 동양의 색깔을 가야금으로 대변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한국환상곡이었다. 40여명의 오케스트라가 애국가를 연주하는 것을 보면서, 서양의 오케스트라에 한국을 담은 장면을 연출해 준 합창단에 감사했다. 합창단원들, 어린이 합창단, 그리고 모든 관객들이 일어나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은 마치 대한민국의 전 국민이 애국가를 부르는 듯 했다. 한동만 총영사는 공연이 끝난 후에도 눈시울이 붉어져 감동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수를 많이 쳐서 빨갛게 된 손바닥을 보여주면서 생애 최고의 음악을 들었다며, 공연 참석을 종용했던 필자에게 감사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아리랑이라는 주제로 한국의 것을 보여준 공연이어서 그런지 공연내내 가슴속의 뜨거운 그 무엇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공연을 마치고 몇일이 지난 지금에도 마지막 피날레의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필자의 감동이 남편에게도 전해졌는지, 대외적으로 나서는 걸 싫어하는 남편이 합창단원을 제의했다.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남편이 자발적으로 뭔가를 하겠다고 말한 것이 참으로 오랫만이었는데, 그의 선택이 합창단원이라니 놀라울 수 밖에.
 
     필자는 콜로라도 한인합창단이 창단모임을 가졌을 때도 그 자리에 있었다. 10년전 지영주 단장이 약 40여명의 단원들을 모았고, 한 멤버의 집에서 창단식을 가졌다. 물론 잠시 주춤했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딛고, 매년 정기연주회와 크리스마스 공연을 꾸준히 해오면서 콜로라도 한인합창단은 이제 한인사회 대표 문화단체로 자리 잡았다. 한국 사람들은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쉽게 포기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것 한다고 밥이 나오냐?’는 식이다. 지난 10년간 필자는 콜로라도주 한인합창단을 취재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기나 돈에 연연하지 않고 단지 노래가 좋아서,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 이렇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행복한 마음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는 ‘행복과 감동’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꺼려왔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서 되려 감동을 받았다고 얘기하고 싶다. 콜로라도 한인합창단이 1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결코 한사람의 노력이 아니었다. 정재연 단장과 김태현 지휘자의 리더십과 기획력은 칭찬받을 만하다. 단원의 절반이상이 합창단에서 10년간 노래했고, 나머지 절반도 앞으로 10년, 20년을 노래하려 한다. 단원 전체의 열정이 없었다면 오늘의 합창단은 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노력과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의 건승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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