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기념일에 알자지라 방송은 미국의 비만, 포르노그래피 양산, 총기문제에 대한 풍자 동영상을 자사 유튜브에 올려놓고 미국의 ‘미심쩍은 성과’라며 조롱했다. 이 동영상은 카타르에 본사를 둔 알자지라 방송사의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제작된 것인데, 미국이 세계1등 국가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다. 처음에는 한 남자가 나와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이 올림픽 메달 수와 노벨상 수상자, 억만장자의 수에서 세계 1등이라고 칭찬을 하는가 싶더니 곧 감옥의 재소자수, 개인총기수, 비만자 비율 역시 세계 최고라며 비야냥거린다. 그는 “우리 국민의 3분의 1은 엄지발가락을 내려다 봐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어서 풍선을 든 남자가 미국인이 전 세계 포르노의 89%를 제작한다는 얘기를 하고 기타로 연주되는 미국 국가를 배경음악으로 “그뿐 아니라 세계에서 잔디깎는 기계로 인한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축복받은 나라”라고 비꼰다.이처럼 미국은 많은 이들의 질투 대상이다. 239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된 미국, 적도 많고 친구도 많다. 그리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변화도 많았다. 최근 미국의 변화 중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단연 동성결혼에 관한 것이다. 2주전 미 연방 대법원은 동성 결혼에 대해 찬성 5, 반대 4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이제 미전역에서 동성애자들은 떳떳하게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평등을 향한 우리의 여정에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제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결혼할 권리를 갖게 됐다”고 기뻐했다.

    동성 결혼의 합법화는 기독교의 가치관 위에 세워진 미국에서 분명 사회근간을 흔드는 일대 사건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변화의 조짐은 일찍부터 보여져 왔다. 미국내 동성결혼에 대한 여론은 최근 급격하게 달라졌다. 1996년 갤럽조사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지지여론은 27%에 불과했지만, 지난달 조사에서는 60%가 찬성했고, 결국 대법원도 정통기독교의 교리에 위배되는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반대 여론도 거세다. “이는 교회에 결정적인 몸통 공격을 가한 꼴이다.”뉴욕타임스와 미 주요 언론들의 진단이다. 그리고 기존 결혼제도 의미가 점차 크게 변질되거나 퇴색되어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진정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일까. 대법원 결정과 맞물리면서 실제로 그동안 금기시됐던 다양한 형태의 가족관계에 대한 논의에도 불이 붙었다. LA타임스를 비롯한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정치전문 사이트 ‘폴리티코’와 ‘슬레이트’ 등은 동성결혼 합헌 판결이 나온 직후 일제히 ‘일부다처제가 다음 차례’라고 사설을 통해 주장했다.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에 이어 향후 일부다처제에 대한 합헌 여부를 가리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 모르몬교는 일부다처제를 시행했지만 주법 및 연방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1890년 이래 금지된 상태다. 그러나 모르몬교에서 갈라져 나온 급진적 분파들은 여전히 암암리에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고 있다.

    또, 캘리포니아주는 친가족의 의미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2년 전부터 특수한 경우, 한 어린이의 법률상 부모를 3명 이상 인정하고 있다. 어린이의 부모가 입양, 이혼, 재혼, 인공수정, 동성애 등 다양한 부부 관계를 구성하는 현실을 반영한 법이라는 게 입법자들의 주장이었다. 더 황당한 일은 캘리포니아에서 아동 성범죄자들로 분류되어야 할 아동소아 성애자들은 그것이 범죄가 아니라 동성연애자와 다름없는 성적 취향임을 인정해달라는 법안까지 상정했다고 한다.기독교단의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 설령 크리스찬이 아니더라도 우리 한국 이민자들의 대부분은 동성애 혹은 동성 결혼에 대한 경험도 적고, 이 문제를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간주해왔다. 물론 필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모든 가치관이 급변하고 있다. 동성결혼을 금기시해왔던 일부 기독교와 가톨릭에서도 이를 포용하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타락한 동성애자들에 대한 혐오와 거부감은 어쩔수 없지만 ‘타고난 동성애자들’에 대한 무조건적 배척은 옳지 않다는 시각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듯하다. 미 대법원 판결문을 쓴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헌법은 법이 닿는 한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약속했다”고 썼다. 종교적 가치관, 남자와 여자간의 성적취향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행복권을 인정해야 한다는데 무게를 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가 모든 죄악과 재앙을 넣은 상자를 판도라에게 주었다. 제우스의 경고대로 결코 열지 말았어야했던 그 상자는 판도라의 호기심으로 열렸고, 상자속에 들어 있던 인간의 모든 불행과 재앙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맨 밑바닥에는 ‘희망’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상자속의 마지막 남은 희망을 안고 세상을 살아간다고들 한다. 미국의 급격한 행보는 판도라의 상자를 보는 듯하다. 낙태, 마리화나, 동성결혼까지, 그리고 일부다처제, 근친결혼, 아동소아성애자의 궤변 등 앞으로 놀라울 일들이 더 많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정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하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찬반 논리를 펼친다. 세대가 다른 부모와 자녀 간 충돌은 예상됐었다. 생각이 다른 친구나 직장 동료 사이에서도 미묘한 갈등이 생겨난다. 심하면 싸우거나 관계가 서먹해진다. 같은 종교인이지만 나이에 따라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젊은 교인은 이해하는 쪽, 중장년 이상 교인은 죄라며 개탄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합법화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현실을 부정하기보다는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거부감이 덜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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