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펜실베니아주에서 열린 미국 여자 프로골프 투어 US 여자오픈에서 또 한번의 한국 여자 골프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인지 선수가 합계 8언더파로 우승하면서 상금 81만 달러를 가져갔다. 양희영, 박인비가 연이어 2,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마지막 결과를 발표하는 TV 장면에는 태극기가 1, 2, 3위 자리에 나란히 올라가 있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전세계의 골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미국 메이저 골프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의 행보는 기적에 가깝다. 이날 전인지는 US 여자오픈에 처음 출전해 우승하는 기록과 함께, 1996년 안니카 소렌스탐과 1999년 줄리 잉스터에 이어 대회 최저타 타이 기록(272타)도 세웠다. 70년 대회 역사상 첫 출전만에 우승을 차지한 것은 그가 네 번째다. 가장 최근에 우승한 김주연도 한국 여자 골퍼다. 전인지는 2013년 한국 투어 메이저 대회인 한국여자오픈에서 첫 승을 거뒀다. 또 지난 5월엔 일본 여자프로골프 투어 메이저 대회인 살롱파스컵을 정복했고, 두 달 만에 US여자오픈 정상에 오르면서 한국과 미국, 일본의 메이저 대회를 모두 석권했다. 7년 전 신지애도 한미일 투어 우승이라는 진기록을 세운 적이 있다. 현재, 박인비, 김효주, 유소연, 양희영, 전인지, 김세영, 최나연까지 한국 국적 선수 7명이 세계 랭킹 15위 안에 들어 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 말했다고 한다. 자식과 골프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골프를 쳐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항상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전세계 1등, 연이어 계속 1등 자리를 유지하는 일은 사실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태극 낭자들은 여자 골프의 신화를 쓰고 있는 것이다. 여자 골프의 최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이니, 이제 클럽하우스에서 김치를 팔아야 할 때가 됐다.

    한국 여자 골퍼들이 선전하는 이유가 바느질과 젓가락 사용 등을 통해 길러진 탁월한 ‘손 감각’을 물려 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예민한 감각이 중요한 골프에서 한국 선수들이 앞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한국 선수들이 양적으로 늘어난 데는 박세리의 힘이 컸다. 젊은 선수 중에서 “세리 언니는 내 우상”이었다는 선수가 상당수다. 현재 한국 중고 골프연맹에 등록된 선수들은 1800여명, 등록하지 않은 채 골프를 배우거나 유학 중인 청소년을 따지면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일본은 90년대 초반 8000여 명에 달하던 중고생 등록선수가 250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미국의 경우 골프를 칠 줄 아는 청소년은 2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실제 주니어 연맹에 등록한 선수는 5200여 명 수준이다. 그래서 한국의 경우 세계랭킹 15위 안에서 상위 랭커 4명만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내에서의 경쟁도 치열하다. 지난 주말 US 여자 오픈에서 놀란 가슴은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 결과로 이어졌다. 유니버시아드는 세계 대학생끼리 우호와 친선을 도모할 목적으로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이 2년마다 주최하는 범세계적 대학운동대회다. 이번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는 세계 143개국에서 1만2885 명의 젊은이들이 함께 했는데, 대한민국 선수단이 금메달 47개, 은메달 32개, 동메달 29개를 획득해 러시아와 중국을 제치고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우리나라가 국제 하계 종합 스포츠대회 메달 순위 1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초 종합순위 3위를 목표에 둔 한국이어서 더욱 놀랍다.

    풍성한 경기 성적 못지않게 돋보인 것은 알뜰하고 실속있게 진행한 대회 운영이다. 경기장 신, 증축은 수영장, 양궁장, 체육관, 테니스장 등 4개로 최소화했고 나머지 65개는 기존 시설을 고쳐서 사용했다. 부족한 시설은 전라남북도와 충청북도에서 도움을 받기도 했다. 선수촌은 도심의 낡은 아파트를 재건축해 사용했다. 시상대와 메달받침대는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에서 물려받아 사용했다. 개회식과 폐회식에도 2013 카잔하계유니버시아드 때의 1200억원보다 훨씬 적은 101억원을 지출했지만 클로드 루이 갈리앙 FISU 회장이 감사 편지를 보냈을 정도로 큰 갈채를 받았다. 총사업비를 당초 8171억원에서 세 차례 조정한 끝에 6172억원으로 무려 1999억원을 절감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메르스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과 대회 진행자들의 노고가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우리의 태극 전사들을 보고 있으면 한국의 ‘저력’이라는 표현 보다는 ‘괴력’이라는 표현이 더 맞지 않나 싶을 정도다.

    우리는 한 사람이 백 사람 몫을 해낸다는 일당백(一當百)이 아니라 인구 수로 따지면 일당 천의 역할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이 언듯 생각난다. 수 양제가 이끄는 113만과 우중문이 이끄는 별동대 30만 명이 을지문덕 장군의 지략에 의해 몰살 당해 압록강을 건너 요동에 도착한 군사 수가 2,700명에 불과했다. 조선 시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떠올려 봐도 우리의 신화는 계속된다. 선조 정유재란 때 이순신이 울돌목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명량대첩은 너무나 유명하다.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싹쓸이한 지략은 후세에도 일당백을 비유하는 좋은 예로 자리잡았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종목이면서도, 나이 들어서까지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바로 골프다. 때문에 미국에서도 태극 낭자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요즘 여자 골프 채널을 보고 있으면 전교 10등 안에 같은 반 친구들이 7명이나 들어 있는 기분이랄까. 뿌듯하다. 전세계 대학생들의 대회에서도 1등을 거머쥔 대한민국. 우린 같은 핏줄이다. 이만하면 스포츠 잘하는 국가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이제 오늘부터라도 가슴을 쫙 펴고 자신있게 살자. 결코 작은 일에 흔들리고, 별 것도 아닌 일에 지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님을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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