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수학 실력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명문대인 하버드와 스탠퍼드에 동시 입학을 하게 되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한인 천재 소녀의 이야기는 결국 거짓으로 드러났다. 지난 6월 초  미주지역의 한 한인매체는 미국 고교에서 공부 중인 한 한국인 여학생이 뛰어난 수학실력을 인정받아 하버드와 스탠퍼드에서 동시에 러브콜을 받았으며, 결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가 학년을 쪼개 두 학교 모두에서 이 학생이 수학할 수 있도록 협의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런 사실은 한국 언론에서도 기사화되면서 이 소녀는 졸지에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 해프닝의 주인공은 올해 버지니아 토머스 제퍼슨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김정윤 양이다. 애초 보도된 내용은 이렇다. 지난해 말 하버드에 조기 합격한 김양은 스탠포드, MIT, 칼텍, 코넬 등 최고의 명문대로부터 잇따라 합격통보를 받았다. 각 학교들은 유명 교수들까지 나서서 김양을 데려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스탠포드와 하버드가 되었는데, 두 학교는 김양에게 공평하게 학교를 다녀보고 졸업대학을 결정해 달라는 초유의 제안을 했다. 이에 따라 김양은 스탠포드에서 1~2학년을, 하바드에서 3~4학년을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파격적인 제안 외에도 두 학교는 유학생 신분인 김양을 위해 수업료와 기숙사비를 포함해 연간 6만달러가 넘는 학비를 제공하기로 했고, 여기에 하버드에서는 김양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교수장학금이라는 명목의 장학금까지 특별히 제공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사가 나간 후 미주지역 한인사회와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김양과 관련된 각종 의혹들이 잇따라 제기됐고 설상가상으로 하버드와 스탠퍼드가 공식적으로 김양의 입학을 부인하면서 천재소녀는‘사기 의혹’에 휩싸였다.

    의혹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김양이 주장한 미국수학경시대회의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도, SAT와 ACT 에서 모두 만점을 받았다는 말 역시 거짓말이었다. GAP 4.6 만점을 받았다는 것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문제가 커지자 김양은 갑자기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 학부모 및 학생들에게 하버드 수학과 교수의 이름으로 “김양은 하버드 학생이 맞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하기도 했다. 일관되지 않은 말투와 공식적인 문서의 형식을 갖추지 않은 합격증을 봐도 위조되었다는 사실을 금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의혹이 불거진 후에도 김양과 김양의 가족들은 하버드와 스탠퍼드 동시 합격은 사실이라며, “변호사를 선임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세간의 의혹을 적극 부정했었다. 하지만 학교 측의 확실한 답변으로 이 사건은 10대 소녀의 맹랑한 사기극으로 결론이 났고 결국 김양의 아버지는“모든 것이 다 제 잘못이고 제 책임이다. 그동안 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 상태였는지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점, 오히려 아빠인 제가 아이의 아픔을 부추기고 더 크게 만든 점을 마음속 깊이 반성한다. 앞으로 가족 모두 아이를 잘 치료하고 돌보는데 전력하면서 조용히 살아가겠다”고 사과했다. 이 사건은 명문대 지상주의가 빚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것을 보면서 학부모의 한사람으로서 필자는 마음이 아팠다. 혹자는 김양이 상습적인 거짓말로 인격장애를 일으키는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을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한다. 이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가 진실이라고 믿는 일종의 정신병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치열하게 거짓말을 했던 김양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다.

    필자 세대라면 그 끔찍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기억하고 있을 법하다. 새벽 6시에 도시락 3개를 싸서 등교를 하고, 밤 11시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자정이 되었다. 이런 피도 눈물도 없던 시절에 한번은 방학동안의 보충수업이 한학기동안 아주 잠깐 사라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해방감은 잠시였다. 다른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하고 있을 또래 학생들을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불안해졌다. 결국 학부모의 반대로 인해 보충수업은 부활되었고, 하루에 4시간만 자면 된다는 구호가 대학입시를 보는 날까지 책상머리 위에 붙어져 있었다. 입시날, 고사장 문에 엿을 붙히기도 하고, 시험보는 내내 지극정성으로 머리를 조아려 기도를 하는 부모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이런 부모님의 마음을 알기에,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는 ARS 자동 음성안내 시스템에서 불합격 통보를 들었을 때도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해당 학교로 미친듯이 달려가 벽에 붙어져 있는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기도 했다.
 필자는 재수를 했다. 첫 대입고시 때였다. 합격자 명단에 필자의 이름이 없는 것을 확인하면서, 연필로라도 내 이름을 합격자들 이름 사이에 써넣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필자는 치열하게 살았던 나의 시간과 부모님과 주변에 대한 기대를 차마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한국사회에서 대학입시의 실패는 사회의 낙오자로 낙인 찍혔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지난주 신문이 한주 휴간한 틈을 타서 일주일간 가족들과 유타로 캠핑을 다녀왔다. 여행 이튿날 모압에서 우리는 래프팅을 했는데, 벨기에에서 온 가족들과 함께 한 배를 타게 됐다. 그들은 우리에게 왜 미국을 선택했느냐고 물어왔다. 우린 스스럼없이 경쟁이 심한 한국보다 아이들에게는 미국의 교육환경이 훨씬 좋다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이들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힘들었던 한국에서의 고등학교 시간을 우리 아이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캠핑 일주일내내 책 한 줄도 안 읽고 마냥 논 아이들을 보면서 필자는 한국 부모의 특유한 불안함을 지울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어느새 필자도 최고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임을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김양의 사건을 돌아보면서 학부모의 한사람으로서 반성의 시간도 가져본다. 곧 아이들이 긴 여름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겪었던 그 억압된 시간은 훌훌 털어버리고, 공부 외에도 뭔가를 스스로 할 수 있는 아이로 키워보련다. 결코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님을 부모가 먼저 깨우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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