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메시아’ 연주를 앞두고, 간혹 몇 분들이 나에게 묻는다 “왜 메시아를 12월 하지 않느냐고?” 그렇다. 대부분 ‘메시아’ 연주는 성탄절이 있는 12월, 크리스마스 전후 혹은 송년 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로 많이 하게 된다. 특히, 바로 작년, 2009년 12월 온 세계의 음악회장을 둘러 본다면 다른 해와는 달리 ‘메시아’ 연주가 수 많은 곳에서 공연 되었던 것을 발견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작년이 헨델이 죽은 지 250주년이었기 때문이다. 메시아가 12월 자주 연주되는 계기는 헨델이 1749년부터 매년 고아원(Foundling Hospital 1739년 창설)을 위해 자선 음악회를 가진 후 오늘날에도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에 세계 각지에서 자선 연주로 행해지는 전통이 된 것이다. 비록 헨델 자신은 사순절 기간, 부활절에 ‘메시아’를 공연했으나, 그가 죽은 뒤, 크리스마스 시즌에 더 많이 공연되기 시작했다. 이 경우 대부분 전체 3부로 구성된 ‘메시아’ 중 1부의 예언과 탄생 부분과 2부 제일 마지막 곡인 ‘할렐루야’만 공연할 때가 많다.

II.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탄생
오라토리오라는 말은 본디 이탈리아어로 ‘기도실(Hall for Prayer)’을 뜻했으나 16세기 후반에 로마의 성 필리포 네리가 기도실의 예배에서 사용한 음악이 계기가 되어 특정한 음악형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성서에 입각한 종교적인 내용을 지녔으며 동작이나 의상, 무대장치가 따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오페라처럼 독창 ?합창 ?관현악이 등장하나 오페라에 비해 합창의 비중이 더 크며, 이야기의 줄거리는 내레이터가 낭송 하게 된다. 무엇보다 오라토리오는 경제적으로 오페라에 비해 절감 되는 게 사실이다. 특별히, 17세기 초부터 오라토리오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사순절기간 동안, 교회에서 오페라 공연을 금지토록 하여, 오라토리오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헨델이 오라토리오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그의 후기 오페라가 실패를 거듭함으로써 오페라 분야에 커다란 공헌을 해 온 그에게 심한 타격을 안겨 주었다. 건강의 문제와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심리적인 압박이 더 많았으리라 본다. 급기야, 1741년에 헨델이 영원히 영국을 떠나리라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헨델은 국왕으로부터 연금을 받고 있던 귀화 영국인이었기에 소문만 무성할 뿐 실상 그에게는 실의에 빠진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 즈음 오페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데븐셔공인 아일랜드 총독으로부터 초대를 받게 된 것이다. 1741년 10월 개관할 예정이었던 피쉬앰블 거리의 새로운 음악당에서 한 시즌을 활동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 초청을 받아들이고, 그 해 여름 새로운 오라토리오 2편을 쓰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자선 공연을 위한 ‘메시아’였고, 나머지 하나는 ‘삼손’이었다. ‘메시아’의 대본은 헨델보다 15살 어린 제넨즈 (Charles Jenens: 1700-1773)가 성경(King James Version)을 바탕으로 구성하였다. 제넨즈는 이미 헨델의 이전 오라토리오 ‘사울’과 ‘이집트의 이스라엘인’ 에서도 함께 작업을 했고, ‘메시아’ 이후, ‘벨샤자르’에서도 호흡을 맞추게 된다. 헨델은 ‘메시아’를 1741년8월 22일에서 9월 14일까지 24일 동안에 완성했다. 이처럼 열광적인 창작속도를 무턱대고 하나님의 영감으로 돌리기에 앞서, 그의 오페라 ‘리나도’가 2주일 만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되살리 필요가 있다. ‘메시아’보다 훨씬 복잡한 관현악법을 담고, 극적인 성격 묘사를 둘러싼 문제를 안고 있는 그의 오라토리오 ‘사울’ 조차도 24일 만에 초고가 마무리되었다.

헨델은 감격하면 격정의 포로가 되어 작곡하는 버릇이 있었다. 헨델이 ‘메시아’ 작곡을 서두르게 된 보다 현실적인 이유가 따로 있었다. 그건 가능하면 빨리 오라토리오 ‘삼손’을 작곡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던, ‘메시아’를 작곡하는 동안 헨델의 심경을 잠시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전해 지는데, 헨델이 2부 마지막 곡인 ‘할렐루야’를 끝 마친 후 그는 이렇게 고백 하였다. "I did think I did see all Heaven before me, and the great God himself!"

메시아의 첫 공연은 1742년 4월 13일 피샴플가의 음악당에서 헨델 본인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연주회 입장권은 매진 되었으며, 음악당 혼잡을 피하기 위해 스페이스를 많이 차지하는 복장을 삼가라는 안내문이 신문을 통해 미리 알려 지기도 했다. ‘메시아’ 첫 연주는 대성황을 이루었고 극찬의 평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연주회를 주관하였던 필하모니 협회도 대만족을 하였다. 런던에서의 첫 공연은 다음해인 1743년 봄(3월 23일)이었다. 당시 오라토리오 ‘메시아’가 일반 연주회장에서 공연 된다는 이유로 찬반의 여론이 심하여, 더불린에서 만큼의 결과는 가져 오지 못했지만, 이 날 영국 국왕 죠지 2세가 참석하였고, ‘할렐루야’ 합창 동안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머지 청중들도 함께 모두 일어난 사건 때문에 오늘날에도 ‘할렐루야’가 연주 되는 동안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독일에서의 첫 공연은 1772년 5월 21일 함부르크에서 애르너 (Michael Arne: 1740/41-1786) 지휘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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