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부터 연일 한국의 모든 언론사에서 탑 뉴스로 다뤄졌던 롯데그룹 ‘왕자의 난’, 즉 장남과 차남간의 경영권 분쟁은 지난 17일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 주주총회에서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승리로 일단락되었다. 이로써 20여 일간 계속됐던 한일 롯데그룹의 경영권은 신동빈 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원 리더(One leader)’ 체제를 갖추게 됐다. 그러나 장남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소송이나 임시 주총 재소집 등을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이번 사태가 완전히 마무리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FKI 미디어가 2년 전 청소년용으로 펴낸 ‘대한민국을 바꾼 경제 거인 시리즈’라는 책은 어린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이 책에는 정주영(현대), 이병철(삼성), 구인회(LG), 최종현(SK), 박태준(포스코), 박두병(두산), 김종희(한화), 이원만(코오롱), 조중훈(한진), 조홍제(효성) 등 굴지의 기업을 일군 창업주 10인의 삶을 적어 놓았다. 각자 삶의 궤적은 달랐지만, 온갖 역경을 딛고 오로지 경제발전을 위해 달려온 이들 모두에게 ‘거목’(巨木)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이들의 공적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순 있겠지만, 불확실성을 뛰어넘는 과감한 도전 그리고 창조와 국가발전을 위해 앞장선 기업가 정신은 오롯이 남아 있을 것이다.

   머리로는 전문경영인의 영입으로 회사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경영 체제라고 잘 알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세습이 전형적인 구도이다. 한국의 재계는 거목들의 시대를 지나 2대를 거쳐 3대, 4대로의 경영승계가 진행되고 있다. 이 과도기에 터져 나온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경제 거인의 덕목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롯데 왕자의 난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전격 사퇴하고 둘째부인인 일본인 시게미쓰 하츠코 사이에서 태어난 신동주와 신동빈 두 아들의 경영권 다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몇 남지 않은 창업 1세대다. 그는 일본에서 기반을 닦은 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모국에 롯데제과를 세워 재계 서열 5위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굴지의 사업가이다. 그리고 롯데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의 사랑속에서 무럭무럭 성장했다. 하지만 이 형제의 난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롯데 그룹의 지주회사가 일본회사라는 사실에, 그리고 그들의 꼴 사나운 경영권 분쟁을 보면서 불매운동까지 벌이는 등 롯데의 배신에 상처를 받고 있다.

    두산그룹에서도 비슷한 경영 다툼이 있었다. 두산 형제의 난은 2005년 두산그룹의 박용오 전 회장이 물러나고 박용성 회장이 취임하면서 벌어진 사건이다. 두산그룹은 형제가 공동경영하는 전통이 있다.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차남인 박용오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셋째 박용성으로 넘길 것을 요구하자 박용오 회장이 이사회 하루 전에 ‘두산 그룹 경영상 편법 활용’이라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이 사건이 시작되었다. 검찰은 두산그룹이 10여년간 326억원의 비자금을 횡령, 총수 일가의 세금 등 가족공동경비 및 가족 분배 등 개인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냈고, 관련자 3명에 대하여 불구속으로 기소하며 일단락되었다. 경영권 다툼으로 형제들을 고발한 이 사건으로 박용오는 가문에서 제명되었고, 형제의 난 이후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심리적 외로움을 겪다가 2009년 자택에서 자살했다. 현대그룹도 고 정주영 회장이 5남인 정몽헌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하려하자 차남인 정몽구 회장이 반발하여 현대그룹이 쪼개졌다. 금호아시아나 그룹도 M&A로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이 불화를 겪다가 비자금 조성을 폭로해 박찬구 회장이 불구속 기소되었다. 3년전 삼성도 마찬가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씨가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었다. 이맹희씨는 아버지 생전에 제3자의 명의로 신탁한 주식을 이건희 회장이 형제들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명의로 변경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적합한 재산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으로 7천억원대의 소송을 제기했고, 이후 이 사건은 삼성과 CJ 간의 갈등으로 비화됐다. 1, 2심에서 모두 패한 이맹희 전 회장은 2014년 2월 상고를 포기하고, 삼성에서 이맹희씨의 아들 이재현 CJ 그룹 회장에 대한 선처를 부탁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면서 두 그룹간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맹희 전 회장은 재판이 끝난지 1년 반만인 지난주에 별세했다.

    우리 재계에서 형제간의 경영권 및 재산 분쟁은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50대 재벌 그룹 총수 일가에서 분쟁이 일어난 곳은 삼성, 현대, 롯데, 한진, 한화, 두산, CJ, 금호아시아나, 대림, 효성, 코오롱, 한진, 한라, 하이트 등 18곳이나 된다. 이같은 가족간 분쟁사태가 빈번한 이유는 재벌들이 경영권을 봉건시대의 왕권과 같은 전유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성장했기 때문에 사회적 가치공유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법적 절차나 경영인으로서 검증 과정 없이, 그저 아버지가 손을 들어주면 그게 경영승계라고 믿는 전근대적 발상은 세계 톱 기업들의 비전과는 괴리가 크다. 어쩌면 이번 사태로 인해 신격호 총괄회장의 업적이 ‘거목’으로 평가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관심사는 차남 신동빈 회장의 롯데가 과거와 얼마나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것이냐 이다. 신 회장은 지난 11일 롯데를 글로벌 기준에 걸맞은 한국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했다. 호텔롯데를 상장하고, 실타래처럼 얽힌 416개의 순환출자도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일자리 창출에도 앞장서 2018년까지 정규직 일자리를 2만4000개 늘리겠다고 했다. 이런 약속이 비난 여론을 잠시 피할려고 내뱉은 말이 아니길 바란다. 롯데가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총괄회장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도, 신 회장이 얼마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국민들은 재벌들의 싸움을 지켜볼 때마다 혀를 찰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많이 먹겠다고 으르렁 거리는 모양새가 “있는 것들이 더하다”며 한숨짓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피보다 돈을 선택했던 많은 재벌들, 이제는 국민을 선택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순간의 이익에 급급하는 보따리 장사치가 아니라, 한국 경제를 이끈 위대한 ‘거목’으로 후세에 남겨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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