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볼더 근처를 지나면서 패러글라이딩이 떠 있는 것을 보고 잠시 추억에 젖었다.  대학 졸업반이 되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직장을 구해야 했는데 막상 취업 전쟁에 뛰어들어 성공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대학 내내 수업은 밥 먹듯이 빠졌고, 휴학도 했고, 일년의 절반은 배낭을 메고 세계를 헤매면서 돌아다녔다. 이런 불성실한 대학교 생활의 결과는 바로 학점이 대변했다. 한국에서는 취직을 하려면 성적 증명서가 필수다. 이 때문에 취직을 하자니 학교 성적이 엉망이어서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백수가 될 수도 없고, 결국 나의 선택은 대학원이었다. 어쩌면 대학원을 선택한 것은 취업 전쟁이라는 현실을 도피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20대 초반은 자신없는 내 삶이 들킬까봐 고단했던 때였다. 이런 청년 세대의 고민들을 털어버리고 스트레스도 날려버릴 수 있는 무엇인가를 절실히 찾고 있었다. 뭔가에 빠져서 인생을 열정적으로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패러글라이딩이었다. 필자에게 패러글라이딩은 소개팅을 하는 것보다도, 애인과 영화를 보는 것보다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10여년동안 하늘을 날았다. 아무도 없는 곳, 구름만 날고 있는 하늘 위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동강이 흐르는 계곡을 눈 아래 두고 온 몸으로 바람을 느낄 때면, 귓전에 스치는 바람 소리는 새의 날개 짓 같은 자유를 속삭였다. 안으로는 자연의 위대함 앞에 스스로 작아지는 법을 배웠고, 밖으로는 모든 일에 전진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진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내게 묻은 똥의 크기도 알게 되었다. 40대인 지금 다시 한번 그때를 되돌아본다.

    20여년전 필자는 주말이면 패러글라이딩을 타기 위해 늘 산에 있었다. 지상훈련에서 필수는 달리기다. 주로 경사면을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하고 날개인 캐노피를 끌어올리는 라이업 단계를 익혀야 한다. 이외 가장 중요한 것은 착륙방법이다. 4주 동안의 지상훈련을 마치고 처음 하늘을 나는 날이었다. 동호인끼리는 이를 첫경험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짜릿함에서 기인된 듯하다. 대부분 비행은 경기도 산골에서 진행됐다.나의 첫 비행도 어느 시골 산등성이 위에서 이뤄졌다. 막상 이륙장에 올라선 나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후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러나 자유는 잠시, 거름으로 가득 채워진 논두렁에 착륙했다. 냄새도 냄새였지만 무거운 날개를 짊어지고 있는 탓에 다리는 점점 바닥으로 깊이 박혀 들어갔다. 함께 간 회원 넷이나 동원되어서야 나를 끌어낼 수 있었다. 기대했던 나의 첫경험은 이렇게 망신스럽게 끝이 났다. 하지만 이때 일로 인해서 필자는 이를 악물고 연습했다. 높이 날기 위해 달리다가 캐누피를 재빨리 머리위로 올리는 자세, 안정적인 착륙을 위해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살짝 앉는 자세, 갑작스런 골바람에 대처하는 비행 방법 등을 열심히 익혔다. 3년이 훌쩍 지난 뒤에 나는 동호회원 중 그나마 조금 탄다는 부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신출내기를 훈련하는 선배가 됐다. 나의 첫 제자는 당시 마흔을 바라보던 직장인 아저씨였다. 그의 첫 경험 날, 나는 무선 호출기로 조정 방향을 잡아주면서 코치했지만 그는 결국 착륙장과 멀리 떨어진 야산에 앉았다. 소 똥 위에 주저 앉은 그를 바라보면서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의 운동화 깊숙이 들어간 이물질은 회식 자리 내내 우리의 코를 고생시켰다. 하지만 동호회 대장은 그를 비아냥거리는 필자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네 첫날을 기억해, 네가 밟은 똥은 네 제자의 몇 배는 됐다”고 말이다. 잊고 있었다. 필자가 더 많은 똥 구더기에 빠졌던 일을 말이다. 패러글라이딩을 타다가 일어난 일들은 예전에도 소개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 그 중 첫경험의 일화가 유독 생각나는 건 얼마 전에 만난 한 사람 때문이다. 자신이 빚진 100은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이 받아야 할 1만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더 큰 제 흉은 모르고 남의 작은 잘못만 탓한다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내 눈에 대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에 티만 본다’는 속담이 딱 맞다.

    벌써 9월이 성큼 다가왔다. 연말까지 한인타운에서는 이런저런 행사들이 남아있다. 그런데 이런 행사를 준비하면서 으레 듣는 말들이 있다. “저 사람이 함께 하면 못 도와준다, 저 사람이랑 가까우면 돕기 싫다, 저 사람과 함께 하는 행사이면 보러 가기 싫다.”이는 자신한테 묻은 똥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허물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내뱉는 말이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본인만 잘났다는 뜻일게다. 이곳 콜로라도의 한인사회는 작은 도시의 특성상 한두 집만 건너면 대부분 연결이 되어있다. 친구나 친척, 아니면 아는 사람의 친구나 친척으로 말이다. 이런 곳이야말로 절대 영원한 친구 혹은 영원한 적이 있을 수 없다. 실제로 10여년 전 자신의 집에 건축일을 맡겼던 사람과 소송까지 벌였던 그 집주인은 지금 그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절대로 만나지 말자며 침까지 뱉고 원수로 헤어졌던 사람들이 10년이 지난 후에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살고 있는 게 인생살이다. 한때 여당이었던 국회의원들 또한 지금은 야당에서 예전에 자신이 적극 지지했던 안건들을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속단은 금물이다. 남의 허물만 놓고 욕을 하는 것도 금물이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바뀔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생각이 내일까지 굳건하게 지켜질 것이라는 생각 또한 편견이다. 오늘의 적 중에 내일의 진정한 친구가 있을 수도 있다. 이제 2015년도 마지막 분기에 접어든다. 함부로 말하고, 결정하고, 비방하는 우를 범해 한해를 후회로 마무리짓지 말고 한번 더 신중히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성숙한 모습이 필요하다. 결점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사용한 말이긴 하지만 ‘겨 묻은 개’와 ‘똥 묻은 개’는 모두 결점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자신의 결점이 더 크다는 걸 먼저 깨닫는다면 남의 결점에 너그러워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속담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서 반성하는 자세와 겸손한 모습이 필요하다. 그렇게 한다면 적어도 욕은 듣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그것은 자신이 대접받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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