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포커스를 창간한 지 9년이 됐다. 6개월 만에 문을 닫을 것이라고 했던 소문은 정말 소문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지난 9년의 시간은 참으로 많은 것을 인고해야 했던 시간이었다. 주간 포커스 신문사를 시작한 첫 해였다. 매주마다 인쇄비를 맞추어야 했고, 낮에는 광고를 수주하면서 밤에는 신문기사를 썼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여간 힘든 삶이 아니었다. 초창기에는 배달 직원을 고용할 형편이 아니어서 직접 신문을 들고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배달을 다녔는데, 무리한 탓에 창간하고 4개월 즈음 유산의 아픔도 겪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첫번째 구입했던 집도, 차도 모두 날리고 남의 집에 살아야 했다. 당시 첫째 아이는 세살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큰 아이의 아기 시절이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사진으로 볼 때마다 이렇게 예쁠 때가 있었는데 눈에 담지 못해 미안함이 크다.

    필자의 아침은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도시락 3개를, 주말에도 일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락은 계속 싸야 한다. 남편은 한국식, 아이들은 서양식 도시락이라서 그리 간편한 일은 아니다. 특히 아침을 많이 먹는 우리 집은 아침 설거지가 많다. 아이들은 학교를 가고 남편도 출근을 하고 나면 간단히 집안 청소를 하고 출근을 서두른다. 하루종일 일에 치여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면서 애들 숙제를 봐주고, 과일에 야참, 쥬스짜기, 아침 준비, 내일 도시락 반찬까지 해 놓으면 대부분 자정이 넘는다. 혹 회식이나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면 필자의 아침은 더 바쁘다. 저녁에 먹을 된장찌개라도 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교정부를 따로 두어 한글자 한글자 뜯어가면서 교열을 보고, 다양한 콜로라도 기사를 위해 취재인력을 보강하고, 바람직한 언론의 길을 기획해서 만든 신문이 포커스다.

    그런데 고백하건데 최근 나는 신문에 대한 애정이 식어가고 있었다. 자주 건강에 적신호가 왔고 또, 간혹 신문의 가치를 모르는 독자들이 있으면 나의 억척같은 생활은 더욱 무의미해졌다. 이래도 저래도 흥인 독자들이 대상이라면 신문은 아무렇게나 만들어도 된다. 편하게 대충대충, 문맥이 좀 안맞으면 어때, 주어가 빠지면 어때, 줄간격이 좀 틀리면 어때, 타이틀이 신문이론에 맞지 않으면 어때, 틀린 글자가 있으면 어때, 고등학교만 나와서 신문을 만들면 어때, 정의감이나 사명감이 없으면 어때. 대충하자. 더불어 회사일이 많아질수록 아이들에게 소홀해진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면서, 지난 20여년 동안 지녀온 신문에 대한 나의 가치관이 흔들렸다. 그러던 얼마전 큰 아이가 중학교를 가면서, 학기 첫날에 으레 열리는 백투스쿨 나잇에 갔는데 그 때 필자의 마음 속에 꺼져가던 불씨가 살아났다. 남이 알아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론인으로서 가야할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 날이었다. 큰 아이가 한학기 동안 공부할 쇼셜 스터디 교실에 들렀는데, 한 벽면에는 아주 거대한 세계 전도가 붙어져 있었다. 독도 옆에는 일본해(Sea of Japan)이라고 적혀 있고, 그 지도 옆쪽으로는 일본‘사무라이’ 복장에 대해 구구절절이 소개되어 있었다. 갑자기 얼마전에 시 교육 분과위원회에서 한인 위원을 천거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이를 이행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로 밀려왔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일본에게 땅도, 권위도 빼앗긴 우매한 국가의 백성을 부모로 둔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치욕스럽기까지 했다. 힘없는 국가의 백성 그리고 그의 후세들. 우리가 관심없는 사이에 일본의 침략 문화와 왜곡된 역사는 어느새 우리 아이들의 교과서에 들어와 있었다. 말로만 들어왔던 일본의 억측을 실제로 접하고 나니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동안 포커스 신문사는 사실 꽤 많은 일을 했다. 콜로라도 언론역사상 최초로 동포를 대상으로 ‘신문기사 선호도 설문조사’를 실시해 독자와 함께 만드는 신문으로 발전시켰고, ‘광고 바르게 읽기 캠페인’으로 광고주의 광고효과를 높였다. 문화센터를 개원해 무료건강검진, 교양강의, 각종 세미나, 월드컵 응원전, 영사업무 등을 해왔으며, 웹사이트를 개설해 신문이 닿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콜로라도 소식을 전했다. 한인사회 및 주류사회에서 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신속 정확한 보도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민 수기 공모전과 어린이 동요대회, 콜로라도 청소년 문화축제를 개최해 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 곳에 다양한 문화 행사가 정착할 수 있도록 앞장섰다. 알찬 기획기사와 전문가 칼럼, 기사 실명제를 도입하면서 콜로라도 언론사의 격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면서 타 언론사의 추종 대상이 되었다. 또 올해 5월부터는 연합뉴스와 제휴해 아이텐 코리아 콜로라도 라디오 방송을 시작해 명실공히 멀티미디어 시대에 앞장서는 콜로라도 최대 통합 언론사로 자리잡았다. 이제 주간 포커스는 신문, 라디오, 업소록, 웹사이트, 전자신문, 문화센터까지. 그리고 지금 포커스와 연을 맺고 있는 직원이 10명이나 되어, 소수인종 언론사로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할 만하다. 물론 이는 독자들과 광고주, 직원들 그리고 남편의 뒷바라지가 있어서 가능했다.

    그래서 이 정도 규모가 되었으니 이제는 말로만 ‘잘났다’라고 떠드는 일은 그만 두어야겠다. 한때 빠졌던 기운을 다시 챙겨 우리 아이들이 교실에서 일본해 대신에 동해를, 사무라이 대신에 우리의 명장들과 거북선을 배울 때까지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일단 언론사는 주류사회와의 접촉이 많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일을 성사시키기가 훨씬 수월한 위치에 있다. 겉멋만 들어 사진찍는데만 연연하지 말고 실제로 한인사회에 필요한 일을 제시해야 할 때이다. 첫째, 지금까지 해왔듯이 포커스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문화행사를 활성화하고, 둘째, 동해와 독도를 다시 찾을 것이며, 셋째 지나간 역사에만 매달리기 보다 미래를 위해 한국을 적극적으로 알려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다. 좁은 한인사회에서 서로 싸우고 멸시하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의 자식 세대를 위해서라도 대외적으로 한국의 자존감을 찾고 그 위상을 알려나가는데 앞으로의 10년을 보탤 각오를 해본다. 그것이 바로 이민사회에서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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