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화요일, 늦은 오후였다. 그 날은 아침 내내 박해춘씨 실종사건과 관련해 새로운 소식이 없을까 해서 덴버 구치소를 찾았던 날이다. 아침 일찍 덴버 경찰서를 갔지만 덴버 카운티 구치소로 옮겼다는 말에 거기까지 가서 면회를 신청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지쳤던 하루였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신문사의 사건 담당기자였다. 조금 전에 하바나에 있는 공원에서 시체 한구가 발견됐다는 다급한 전화였다. 주류언론과의 지속적인 연계관계를 유지한 덕에 발 빠른 뉴스를 건졌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체 모를 시체를 찾아 신문사에서부터 카메라를 들고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원에 도착해 아무리 찾아도 경찰차는 보이지 않고, 사체를 발견한 장소라는 별다른 기미가 없었다. 한참을 찾다가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앉았다. 30분 정도 지나 경찰은 한인이 아니라 젊은 멕시칸 남성의 사체라고 알려주었다.

콜로라도 한인역사상 박해춘씨 실종사건과 같은 사건은 드물다. 이렇게 좁은 한인사회에서 잘 아는 사람끼리 연루되어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동네가 떠들썩하다. 특히 사건의 정황이 ‘살인’으로 짙어지면서 조용한 콜로라도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모두 한숨을 내쉰다. 실종자와 살인 용의자는 한인사회에 잘 알려진 사람들이기에 더욱 마음이 편하지 않다. 경찰이 정확하게 공개한 증거도 없이 용의자를 2급이 아닌‘1급 살인혐의’로 체포를 했다는 것은 계획에 따른 살인사건을 염두 해 두고 있다는 말이다. 혐의자 사무실에서 발견된 피에 대한 분석은 2주 정도가 걸린다니 곧 발표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단서인 혈액의 검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씨에게 1급 살인혐의가 주어졌다는 것은 사체 유기설에 무게를 둔 듯하다 .

이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는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이 사건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질 않는다. 실종자와 살해 용의자에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가족 때문이다. 실종자 가족의 애끓는 마음도 짐작이 가지만, 용의자 가족에 대한 걱정도 크다. 계획적인 살인이 아니라는 것에 심중을 둔다면 더욱 그렇다.

아주 오래 전 일이다. 필자가 사회부 기자를 포기하게 됐던 사건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대학을 갓 졸업하고, 어느 신문사의 사회부 기자로 일을 시작할 때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 선배들을 따라 다니면서 이것저것 주워 듣는 수습기자 시절이었다. 신문사에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아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터졌다. 아들이 아버지, 어머니를 죽이고 결국 잡힌 사건이었다. 경찰과 함께 취재팀들도 범행 현장인 집을 찾아갔었다. 그 현장의 처참함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부모 머리를 망치로 쳐서 두개골을 연 것도 모자라, 골을 꺼내 바가지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냉장고 옆에는 범행 이후 버젓이 시켜먹은 자장면 그릇이 뒹굴고 있었다. 아들은 얼마 되지 않아 체포되었다.

그는 교도소에 있어 차라리 편하다. 세상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는, 남아있는 가족들보다는 백 번 편하다. 그 때문에 평생 눈물 흘리면서 손가락질 받고 시집도 못하는 동생보다는 훨씬 편할 것이다. 이 사건 이후 필자는 사건현장을 찾아 다니는 것이 싫었다. 사람들의 아픔을 후벼 파고, 무섭고 처참한 광경을 사진에 담아야 했던 직업이 싫었다. 그 장면이 떠올라 한동안 힘든 생활을 했었다. 결국 필자는 어렵게 취직한 신문사를 그만 두고, 방송국으로 옮겨 교양프로그램의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었다.

6년 전 즈음인가, 덴버에 살던 한인 여성도 비슷한 잘못을 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한국에 살던 내연남의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지명수배를 받았다. 결국 그녀는 인터폴에 의해 한국으로 송환되어 조사를 받았고,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 여성 때문에 이 곳에 살고 있었던 착한 남편과 어린 자녀들이 받아야 했던 고통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경찰이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남편과 아이들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죽은 사람과 함께 그들도 피해자가 되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이번 박해춘씨 실종사건이 살인으로 수사가 좁혀지면서, 가족들이 받고 있을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이번 사건이 우발적인 살인이었든, 계획적이었든 간에 체포된 이씨가 양측 가족들에게 최소한의 고통을 안겨줄 방법을 생각하길 간절히 바란다.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건과의 연관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남편과 아이들, 신앙생활밖에 모르는 부인, 자녀들, 친척, 친구들이 또 다른 피해자가 될까 염려스럽다. 이 좁은 한인사회에 그들이 설 자리는 벌써 없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너무 가혹한 것이다. 가족들이 평생 안고 가야 할 고통을 생각한다면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최선은 아닐 듯싶다. 오랫동안 알아온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예의도 아닐 듯싶다. 그리고 한인 동포들 또한 양측 가족들을 위해 좀더 말을 아끼고,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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