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있을 미국 대선은 정석대로라면 부시 가문과 클린턴 가문의 24년 만의 리턴 매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잽 부시와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의 막말에 밀리면서 전세계의 이목도 트럼프에게 쏠려있다. 대세론의 소멸이다. 5일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인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69)가 민주당 대선 유력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67) 전 국무장관을 45% 대 40%로 앞섰다. 막말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후보 17명 가운데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트럼프가 클린턴 전 장관과의 양자 대결에서 이긴 것은 처음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인기가 올라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하는 말을 들여다보면 친한 백인들끼리 밥상머리에서나 주고 받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지난달 앨라배마주 모빌의 한 미식축구 경기장. 트럼프의 유세를 기다리던 3만여 명의 청중 사이에서 갑자기 환호가 터져 나왔다. 축구장 상공을 선회하는 트럼프의 대형 보잉 757 전용기를 쳐다보고서다. 밴을 타고 길바닥을 달리며 ‘서민 유세’를 벌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가장 취약한 계층이 우리 사회의 전면에 놓여야 한다”며 서민 후보임을 내세운 잽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서민 대신 불법 이민자를 이슈로 만든 트럼프의 보잉기 유세에 위기를 맞았다. 그는 갑부임을 과시하고, 품위를 팽개치고,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의 ‘트럼프 스타일’ 은 그 동안 상식으로 여겨졌던 기존 선거 공식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대선의 최고 키워드는 서민과 중산층이다. 클린턴 전 장관이 ‘보통 미국인의 대변자’를 구호로 내걸었고, 부시 전 주지사까지 ‘취약 계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정반대다. 선거 유세는 서민차 대신 ‘헬기의 벤틀리’인 82억원짜리 시콜스키를 타고 다닌다. 그의 전용 헬기다. 트럼프가 탔던 보잉 757은 2011년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인 폴 앨런에게서 1억 달러를 주고 사들인 것이다. 승객 228명을 태우는 이 여객기를 트럼프는 43인용 전용기로 개조해 안전벨트 등을 순금으로 도금했다.

    그의 또 다른 동력은 백인 사회의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배설 캠페인에 있다. 가장 큰 논란은 미국내 이민자들에 대한 발언이다. 사실 이민자의 한사람으로서,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트럼프가 이민자를 향해 날리는 이런 막말들은 참으로 듣기가 민망하다. 지난달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Get them the hell out of our country”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며 불체자들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했다. 멕시코 불법이민자를 “성폭행범과 마약사범”으로 비난하면서, 멕시코를 아예 범죄자들의 소굴로 전락시켜 버렸다. 그리고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높디높은 벽을 쌓아 멕시코인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그 막대한 건설비용은 멕시코 정부에게 물리겠다는 공언까지 했다. 처음에 트럼프는 “불체자 모두 다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 버리면 된다”고 말을 꺼냈다. 그러다 비난이 쏟아지자 “내말은 일단 자기 나라로 돌려보낸 다음 이들에게 제대로된 합법 신분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다시 돌아오게 하면 된다”며 괴상한 비책을 내어놓았다. 하지만 이 말을 믿고 고분고분 짐을 싸서 돌어갈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자칫 영영 못 돌아 올 수도 있는데 지금껏 자리 잡은 터전을 어떻게 포기하란 말인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였다면 지금껏 미국정부가 전전긍긍하지 않았을 것이다. 길이가 2000여 마일이나 되는 멕시코와의 국경에 옹벽을 쌓는 것도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 비용을 멕시코 정부가 순순히 대어 줄 일은 더욱 만무하다.

    더구나 트럼프는 한국에 대해서도 무지하다.“미국이 한국을 돕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2011년 ABC 방송에 출연해 한국이 북한과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주한 미군이 도와주는데, 한국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주둔에 필요한 방위비를 분담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이를 모르는 것 같다. 그의 막말 대상은 주변의 모든 것이다. 그는  “아시아인은 인사말이 없다”며 아시아인들의 서툰 영어 발음을 비웃고, 중국을 놓곤 “위안화 평가 절하는 미국의 피를 빨아 먹는 것”이라며 미국을 위협하는 중국을 비난했다. 한 레즈비언 여성 코미디언을 “뚱뚱한 돼지”로 인신 모독을 하며 보수 백인 사회가 동성애자에 대해 갖고 있던 노골적인 혐오감을 대변했다. 또 그는 클린턴 전 장관을 놓곤 트위터에 “남편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뭐로 미국을 만족시키겠나”라고 조롱했다. 그간 소수 인종, 동성애자, 여성 등을 거론할 때 차별이나 모욕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정치적 차별 금지(political correctness)’는 정치인의 덕목이었지만 트럼프는 이를 깨버렸다. 이런 트럼프를 보면서 상식의 선에서 벗어난 일본 아베 총리의 모습이 비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그는 미국의 아베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런 놀랄만한 인기를 얻고 있는 트럼프임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해야할지 고민 중이다. 물론 지지율로만 따지면 현재로서 힐러리에 맞설 유일한 후보이지만, 공화당이 주저하는 이유는 그가 대통령으로서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가 받고 있는 지지의 대부분은 공화당내 우파의 분노의 정치로부터 소외된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도 그가 말하는 것 중 한 두개 정도 수긍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계속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후보는 아니라고 본다. 그는 세번 결혼하고 두번 이혼을 했다. 부동산업자로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러나 비록 TV 쇼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부족한 신입사원들에게 가차없이 “넌 해고야”라고 외치는 그의 모습에는 그의 일상이 묻어 있었다. 실제로 공영방송을 통해서 여성을 비하하고, 남자라도 자신의 마음에 안들면 인격적 모독을 서슴지 않고, 외교에는 아예 문외안임이 여러번 증명되었다. 아마 대중들이 그가 내뱉는 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금까지 그와 같은 정치인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희귀성에 잠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트럼프의 막말 세레머니는 한시적으로 이야기꺼리를 만들어주긴 하지만, 단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뱉아 버리는 그의 막말은 미국 정치를 전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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