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낯선 팻말 하나가 교회 입구에 붙어있었다. ‘Switch your seat Sunday’(주일 자리를 바꿔라). 교인들은 그 팻말을 보면서 무심코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하지만 그 팻말의 내용이 계속 생각이 났다. 지금까지 자기가 앉아 있는 자리가 지정석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일반적으로는 교회에 오면 늘 같은 자리에 앉는다. 학교를 다닐 때도 우리 자리는 항상 같은 자리였다. 교회에서도 늘 앉는 자리가 있다. 학교처럼 1년 후에 바뀌는 것도 아니다. 교회를 다닌 햇수만큼 그 자리는 변함이 없다. 어떤 교인은 자기가 늘 앉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았다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마치 자기 자리를 빼앗긴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늘 앉던 자리에 앉아야 마음도 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익숙함에 이미 길들여져 있다. 무엇을 바꾸거나 고치면 생활의 리듬이 깨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내 곁에 앉는 사람도 늘 같은 사람이다. 그 사람 역시 자기 지정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어든다. 그런 것을 한 번 생각해 보라고 교회에서 내 놓은 아이디어가 바로 ‘자리를 바꾸라’는 팻말이었던 것이다. 교회에서 내 자리에 대한 애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웃을 만나는 기회는 적어질 것이다. 자리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사람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 사람과 몇 번만 같이 앉다 보면 자연스럽게 안부를 물을 것이다. 다른 자리에서 보더라도 반가워질 수 있다. 우리가 자리를 바꾸는 것은 단순히 장소의 변화만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장소의 변화를 넘어서 마음의 변화까지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앉아 있는 편안한 자리가 아닌 이웃의 아픈 자리에 한 번 앉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이웃의 일에 관심을 갖고 내일처럼 생각하는 마음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바로 자리를 바꾸어 보는 것이다.

    장애자들에 대해 늘 관심과 사랑을 갖고 살았던 대니얼 마이클과 오닉스 워커라는 사람이 있었다. 대니얼은 대학 때부터 정신착란자들을 고용해서 조경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돈을 벌려고 한 것이 아니다. 장애자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만을 고용했던 것이다. 오닉스는 어느 큰 식당의 수석 요리사였다. 그도 역시 아픈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남달랐다. 그들을 초청해서 종종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기도 했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남쪽에 조그마한 카페를 연 것이다. 카페 내부에는 테이블이 4개, 또 외부에는 3개가 겨우 놓여 있는 작은 카페이다. 하지만 아침과 점심만 판매하는 이 카페는 주문하는 손님들의 행렬이 아주 길게 늘어서 있다. 마치 도시마다 한 두 군데씩 있는 유명 맛 집을 보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 카페의 실제 정체는 그 같은 분위기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맛이 있어서가 아니다. 다른 곳에서는 팔지 않는 특별 음식이기 때문도 아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몰리는 것은 카페 종업원들 모두가 정신지체 장애자들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우울증에서부터 정신착란증 환자, 중증 자폐 환자들이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약만 먹고 생명만 유지해 오던 사람들이다. 아픔을 가진 이후에는 어디서도 일해 본 적이 없다. 누구도, 어느 회사도 그들을 고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고용기회를 얻게 되었다. 거의 33년 동안 우울증을 앓아왔던 제임스 플래너리는 그 카페에서 생애 첫 번째 직업을 갖고 일하고 있는 중이다. 평생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고객의 각종 오더를 받느냐 진땀을 흘리고 있다. 다른 식당의 일반 직원들과 다른 점은 아직도 그는 고객들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객들이 자신을 바라보거나 보고 웃는 것이 여간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에 부담이 될 때마다 카운슬러에게 배운 주문을 외우고 있다. “나는 원래 스마트한 사람이다. 단지 병을 앓고 있을 뿐이다” 그가 비록 주문도 제대로 못 받고 실수를 해도 누구도 그를 야단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핀잔을 받는 경우도 없다. 그런 분위기가 그가 끝까지 일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대니얼과 오닉스는 자기 자리인 지정석을 바꾸었다. 건강하고 문제가 없는 사람들을 고용하기 보다는 처음부터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만 고용하기로 했다. 돈을 벌려고 하기 보다는 돈을 쓰기로 했다. 장애자들의 마음에서 그들이 기뻐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은 것이다. 자리가 바뀌면 마음도 바뀌는 것이다. 그 카페에서 일하는 장애자들뿐만 아니라 그곳을 찾는 많은 손님들에게도 장애자들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어주고 있다. 지정석과 같은 내 삶의 자리를 한 번 바꾸어서 다른 사람의 자리에 앉다 보면 그 동안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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