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반갑게 피어나는 꽃이 있다. 코스모스다. 동내를 산책하다 여기 저기 피어 있는 가을의 전령사 코스모스를 만나면 왠지 모르게 반갑고 친근하다. 어릴적부터 보아 온 꽃이고, 가을이면 늘 곁에 피어나는 꽃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가곡 중에 “코스모스를 노래함”(이기순 작사, 이흥렬 작곡)이라는 노래가 있다. “달 밝은 하늘밑/ 어여쁜 네 얼굴/ 달나라 처녀가/ 너의 입 맞추고/ 이슬에 목욕해/ 깨끗한 너의 몸/ 부드러운 바람이/ 너를 껴안도다./ 코스모스 너는 가을의 새아씨/ 외로운 이 밤에/ 나의 친구로다./ 밤은 깊어가고/ 마음은 고요타/ 내 마음 더욱더/ 적막 하여지니/ 네 모양도 더욱/ 더 처량 하구나/ 고요한 이 밤을/ 너 같이 새니/ 코스모스 너는 가을의 새아씨/ 외로운 이 밤에/ 나의 친구로다.” 이 가사 내용 속에서 느껴지는 코스모스의 이미지는 깨끗함이다. 그리고 가을의 고독함을 형상화한다. 코스모스는 가을의 전령사이다. 그리고 쓸쓸히 가을 길을 걷는 인생 나그네들을 반기며 손짓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가을의 숨소리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고즈넉하게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코스모스는 홀로 피지 않는다. 군락을 이루며 피어난다. 여럿이어서 아름답다. 그래서 코스모스는 군중 속의 고독함으로 몸서리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홀로 있음이 얼마나 외로운가를 가르친다. 성경은 여럿이 함께함의 유익과 아름다음을 이렇게 말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 하느니라.” (전도서 4:9-12)
코스모스는 강하다. 쓰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거센 비바람과 태풍이 몰아쳐도 뽑히지 않는다. 풀뿌리 정신에 투철한 꽃이다. 그래서 코스모스는 스스로 너무 강해서 너무 잘나서 뚝뚝 부러지기 쉬운 이들에게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보다 낫다.”는 철학을 배우게 한다.
코스모스는 한 가지 색깔로 피어나는 법이 없다. 다양한 색상을 뽐내며 조화롭게 피어난다. 빨주노초파남보...... 하늘의 무지개가 땅의 무지개로 피어난 것이 코스모스인지도 모르겠다. 코스모스(Cosmos)는 그리스어로 그 어원이 ‘그 자체 속에 질서와 조화를 지니고 있는 우주 또는 세계’를 뜻한다. 우리는 나와 다름에 화가 나고 시비가 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으신 이 우주는 한 없이 다른 것들로 채워져 있음에도 시비하지 않는다. 한 색깔을 고집하지 않는다. 같은 크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르기에 그 다름에서 오는 차이를 즐긴다. 그 다름을 틀렸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다름 때문에 많이도 불편해하는 이들에게 코스모스는 똘레랑스(“내게 허용된 자유를 즐긴다.”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한다.”)의 의미를 무게있게 가르쳐준다.

      코스모스는 다른 꽃들에 비에 그렇게 향기가 진한 꽃이 아니다. 코스모스 한 송이 꽃에 코를 박고 향기를 맡아 보아도 그 향기는 너무도 미미하다. 그러나 대신 코스모스는 온 몸으로 춤춘다. 찾아주는 관객이 많지 않아도 코스모스는 온 몸으로 춤추며 가을을 노래한다. 오늘 향기 진하고 화려한 꽃 장미가 되지 못한 것을 슬퍼하는 이들에게 코스모스는 “나는 장미를 한 번도 부러워해 본 일이 없어. 너는 너 자신으로 노래하고 춤추면 돼. 그것으로 행복하면 돼”라고 진정한 행복을 가르친다.
아스라이 지나간 어린 시절 책보를 메고 학교 가는 마을 어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코스모스 꽃밭이 눈에 아른거린다.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1시간 넘게 신작로 먼지 뒤집어쓰고 동네 어귀 돌아 서면 아침에 인사를 나눴던 그 코스모스가 다시 나를 반긴다. “안녕!”하고 인사하면 내 곁에 앉아 보라고, 누워보라고 말한다. 책보 옆에 던져 놓고 코스모스 꽃밭 속에 누워 코앞에 하늘거리는 꽃과 높디높은 파란 가을 하늘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고 긴 시간을 코스모스와 함께 해야만 했던, 황홀하기 그지없던 그 추억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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