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이 주축이 되어 태평양 연안 12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10년간의 진통을 끝내고 지난 월요일에 타결됐다. 애틀랜타에서 9월30일에 시작된 TPP 회원국 각료회의는 예정된 기간을 나흘이나 넘기는 마라톤 협상을 벌인끝에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TPP 참가국인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멕시코 등 12개 국가의 경제규모는 세계경제의 40%에 육박한다. 협정 범위 또한 매우 넓다. 1만8000여개 품목의 관세가 철폐되는 것을 비롯해 서비스, 투자, 환경, 노동, 지식재산권 분야를 망라한다. 협정이 발효되면 그 경제 규모가 유럽연합(EU)의 1.5배에 달하는 지구촌 최대의 경제 공동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TPP는 미국과 일본이  연합전선을 맺어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항한다는 정치적, 지정학적인 의미도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국의 입장이 애매해졌다는 게 관건이다. 한국은 TPP에 가입을 놓고 저울질만 하다 때를 놓쳤다. TPP 타결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2013년 초 박근혜 정부가 막 출범하던 때였다. 당시 한국은 부처간 이견과 야당, 시민단체의 반발로 뜸을 들이다 그해 11월이 돼서야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기존 참여국과 예비 협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은 기존 회원국들 협상이 끝난 이후 들어오는 게 옳다”며 완곡하게 한국을 밀어냈다. 그러는 동안 일본은 2013년 3월, 재빠르게 판단을 내려 TPP 참여를 공식 선언했다. 그 뒤 일본은 협상을 주도하며 세계 최대 경제 공동체 탄생의 주역이 됐다.
문제는 한국의 TPP 가입을 일본이 결정한다는데 있다. 한국이 정식으로 TPP 참가를 표명할 경우, TPP 참여 12개국이 참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한국은 이미 일본을 제외한 11개국과의 사전 합의를 마친 상태로, 일본과의 합의만 남아 있는 상태다. 창립회원 12개국 중 한 국가라도 반대하면 참여가 불가능하다. 일본은 한국에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공업품의 관세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게 되면 한국은 일본에 내수시장을 내주는 꼴이 되기 때문에 협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 정부는 초특급 경제블록인 TPP에 참가하지 않으면, 변방으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면서 고심에 빠졌다. 그러나 TPP 참가국 12개국이 한국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 놓은 양허안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많지 않느냐는 우려도 있다. 그렇다고 TPP 가입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TPP에 동참하지 않으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선점 효과를 잃게 되고 TPP 회원국과의 교역 및 투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자동차, 전자, 석유화학, 기계 등 주력 산업 분야에서 일본과의 가격 경쟁력에 밀려 설 자리를 잃게 될 공산이 크다. 실제로 자유무역협정을 매개로 한 경제영토 확장 경쟁에서 한국에 크게 뒤졌던 일본은 TPP를 통해 단숨에 따라붙는 성과를 얻게 됐다. 관세가 부과되는 품목의 대미 수출액이 756억 달러에 이르는 만큼 미국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게 된다. 그래서 일본은 TPP 발효 첫해 자동차 부품에서만 5000억원 가량의 관세 부담이 줄어든다. TPP 타결의 주역이자 최고 수혜자는 역시 미국과 일본이기 때문에 이 협상을 미일 자유무역협정이란 얘기가 나올법 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타결 직후 “중국과 같은 나라가 세계 경제질서를 쓰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는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주도하면서 세계 경제권을 장악하는 것을 막고 미국과 일본이 21세기 국제 통상질서를 주도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 주도의 국제 금융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가국은 총 70개국이며 올해 안으로 정식 출범할 예정이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에 있어서 TPP 타결은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단순히 경제 분야에만 국한하지 말고 정치, 군사적 국제질서 재편이라는 거대 흐름 속에서 바라봐야 옳다. 군사력 증강과 해양 진출을 강화하는 중국을 의식한 포위망 구축의 일환이기도 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TPP 타결은 자신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의 훈풍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결국 TPP 체결로 인해 미국과 일본, 중국의 주도권 다툼이 가시화되면서 새로운 경제 냉전시대가 열린 셈이다.

    주요 교역국인 우리나라가 제외된 상태에서 거대 자유무역 시장이 등장했기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경제도 TPP의 파장을 피해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참여를 결정하더라도 TPP 비준 발효 절차를 감안하면 2017년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가입 시기를 탓할 필요가 없다. 한국 참여 여부가 일본의 뜻에 달려 있기 때문에 더욱 서두를 필요가 없다. TPP 참여는 사실상 한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과 같다. 그동안 한국이 일본과 자유무역협정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유는 자동차, 전자, 정밀기계 등 한국의 제조업에 타격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또 오바마는 TPP 타결로 무역 및 외교 정책 면에서 큰 업적을 추가하게 되었지만 공화당은 물론 올초 오바마 대통령의 TPP 추진을 강력 지지했던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타결 내용이 충분치 못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어 내년 미의회에서 비준을 얻어내는데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TPP의 10개국은 이미 우리와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발효한 상태다. 우리로선 가입에 따른 추가 실익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일본이 연간 7만톤까지 미국산 쌀을 무관세 수입하기로 한 것을 보면, 한국에도 똑같은 요구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국제질서의 흐름을 냉철한 눈으로 지켜보면서 최대의 국익을 거둘 수 있는 통상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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