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호르몬의 상호작용

     “가을을 타는 것인지, 배터리가 방전된 것 같이 기운이 팍 빠져나간 느낌이 영 안 좋습니다.”
올가을은 이런 현상을 호소하는 남성들이 유독 많다. 갑자기 찾아온 가을 탓이다. 40대 중반의 B씨는 이상하리만큼 온몸이 찌뿌드드하고 의욕이 떨어지고 성욕마저 처진다고 느낀다. 쓸쓸함에 가슴이 뻥 뚫린 듯하고, 창 밖을 멍하니 내다보며 인생을 고뇌하는 철학자가 따로 없다. 우울증까지는 아니지만 처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급기야 아내로부터 ‘요즘 가을 타?”라는 얘기까지 듣게 된다. 이런 현상은 비타민D와 남성호르몬의 상호작용과 관련이 있다. 햇볕을 받으면 우리 몸의 피부에서는 비타민D가 합성된다. 그런데 일조량이 감소하면 비타민D의 합성이 줄고 남성에게는 반갑지 않은 일들이 생긴다. 비타민D는 고환에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생산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오스트리아의 연구에서, 비타민D의 혈중 농도가 높은 남성이 테스토스테론의 혈중 농도 또한 높은 것이 재확인됐다. 또, 비타민D와 테스토스테론의 혈중 농도는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남성호르몬의 혈중치를 계절별로 비교해보면 일조량이 감소하는 가을에 접어들면서 남성호르몬은 더욱 감소해 겨울까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다. 테스토스테론은 성욕, 발기, 사정 등 성기능에 필수적이다. 테스토스테론의 감소는 성기능의 전반적인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실제로 가을에 발기부전, 조루 등 성기능 장애가 발병하는 빈도가 더 높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남성호르몬은 성기능뿐 아니라 몸과 마음의 에너지와 신진대사에 상당 부분 관여한다. 가을에 일조량 감소에 따라 남성호르몬이 저하되면 기분은 처지고 의욕이 없어지며 쉽게 피로해지는 등 우울증 현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런 양상은 계절성 변화에 따라 체내의 멜라토닌 생성이 증가하고 세로토닌이 감소하면서 더욱 심해진다. 가을을 가볍게 타는 정도라면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가을에 따른 심신의 위축감을 줄이는 데는 몇 가지 도움되는 길이 있다. 기본적으로 햇볕이나 그와 유사한 빛을 자주 많이 쬐는 것이 좋다. 비타민D의 생성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아예 비타민D를 보충하는 것도 방법이다. 남성호르몬의 생성을 돕는 아연·셀레늄 등의 섭취도 유익하다. 비타민D는 계란노른자·우유·등푸른 생선에 많으며, 아연은 굴·콩·육류에, 셀레늄은 브로콜리·양배추·우유 등에 많다. 40대 중반 이후의 남성들은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진다. 평소에도 남성호르몬의 생산이 부족한 갱년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을을 타다 보면 더욱 힘들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가벼운 대처로도 힘들 경우엔 호르몬계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필요에 따라 남성호르몬을 직접 보충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인간의 성기능까지 좌지우지하는 햇볕의 힘, 자연의 위대함에 새삼 겸손해지는 가을이다. 계절의 변화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지만, 남성호르몬 저하나 우울증 등은 인간의 노력으로 상당 부분 개선할 수 있다. 가을의 얄궂은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나는 데는 비타민D, 아연·셀레늄이 우리 몸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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