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위대한 하늘나라 복음사업을 혼자 하시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처음부터 선택하여 그들을 함께 일할 파트너로 삼으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마음에 드는 여러분을 불러 천국사업의 파트너로 삼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했으며(고전3:9), “그리스도의 일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이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고전4:1)

누가 파트너가 될 것인가?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에는 “주께서 내게 부탁하신 일은 천사도 부러워서 흠모한다”는 가사가 있고 성경에도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1:12)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다 천국사업의 역군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주를 따르겠다고 자원하는 자에게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시면서 거절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 마음에 드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계획도 완성도 하나님 자신이 하십니다. 우리는 중간에서 거들어 드리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는 자가 아니고서는 이 건설사업의 잡역을 맡을 노무자조차도 가당치 않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식, 재능, 지위, 이런 것들이 조건이 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요6:44) “사람은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으면 예수를 주라고 부르지 못한다”(고전12:3) “혈육은 우리에게 예수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려주지 못합니다.(마16:17) 예수님은 세상의 왕으로 오셨지만 이사야53장이 말씀했듯이 “그에게는 아름다운 모습도 없고 사모할 만한 매력도 없었습니다. 그는 비웃음을 받았으며,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못합니다. 왕 자신이 가시관을 쓴 분일진대 제자가 어찌 비단방석이나 고급 카우치에만 앉아 있겠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자가 되는 길

     하나님은 왕국을 주신 그 외아들에게 또한 제자를 허락셨습니다. 예수님이 안드레나 시몬을 면접해 보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바닷가에서 그물을 깁고 있을 때 첫눈에 부르셨습니다. 그들 또한 “며칠만 생각해 볼 수 있는 말미를 달라”고 한 적도 없으며, “가족에게 작별인사 드리고 오겠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첫마디에 “예”하고 배를 버리고 따랐으니 그들은 천생 연분입니다. 그러한 사제지간이 되어야 동역자, 파트너가 되어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라는 말은 “교사에게 훈육을 받은 자”(Mathete)라는 말로써 구약에 1회, 신약에 269회가 나오는데 모두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만 나옵니다. 좁은 의미로는 열두 사도를 의미하고(마10:1, 11:1, 막8:27) 넓은 의미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크리스천 모두를 말합니다.

제자 될 자격

     스승이신 예수님이 30세이니 제자들은 물론 경험이 적은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요한은 소년이어서 식사할 때 예수님의 품에 안겨 식사할 만큼 어렸습니다. 당시 로마의 국토를 지키기 위해서 47개 연대의 군대가 있었고 지방 주둔군을 합치면 약50만에 가까운 로마 군인들이 있어 황제에게 머리 숙여 절하지 않으면 국법으로 징계하던 시대에 이 철없는 젊은 사람들이 세계를 구원한다고 나섰으니 이 얼마나 ‘동키호테’적 발상입니까? 그러므로 로마제국을 삼킨 하나님 나라 운동은 역사적으로는 ‘불가사이’요,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의 ‘신비한 기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될 몇 가지 조건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지적하신대로 첫째, 가족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할 것, 둘째, 고난을 각오할 것. 셋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기까지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 넷째,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 이 모든 말씀은 가정윤리를 저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비상시의 윤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축과 절약이 평상시에는 마땅하고 당연한 것이나 자식이 수술을 받아야 할 때는 빚을 내서라도 수술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인이 외출할 때는 화장을 하고 단정하게 하는 것이 정상적이지만, 외동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머리 빗고 루즈 바르고 예복을 입고 나갈 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평상시의 선후와 비상시의 선후는 바뀔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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