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1월 31일 38회 미국의회에서 통과된 13번째 미국헌법개정안인 노예제도 페지이후, 미국 근대사의 흐름 중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인식되는 인권운동의 대부인 마틴 루터킹과 함께 평생을 인권신장에 힘써 왔던 도티 하이트여사가 오늘 흑인들의 하버드라고 불리는 하워드대학 병원에서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달리하였다.

노예제도 폐지 이후에도 당장에 인종차별이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188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미국은 이른바 ' 짐 크로우(Jim Crow; 19세기 미국의 순회 쇼에서 등장하던 흑인 캐릭터의 이름이다. 백인이 얼굴에 검정 칠을 하고 두꺼운 입술을 분장한 채 나타나, 노래하고 춤추며 우스꽝스러운 바보 연기를 하던 캐릭터 였는데 이것이 흑인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굳어지게 되었고, 깜둥이를 뜻하는 니거(Nigger) 보다는 약하지만 여전히 흑인을 비하하는 용어로 쓰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흑인을 차별하는 여러 가지 제도와 법률, 그리고 그런 것들이 존재한 시대를 통칭하는 용어로도 회자되고 있다.)' 시대라고 하여 흑인을 차별하는 각 종 법률과 제도가 수많이 존재하였고 흑인들에 대한 폭력과 살인 역시 쉽게 볼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녀의 일생은 이렇게 심한 차별과 역경의 세월자체였다.

그녀가 1929년 뉴욕 시 북서쪽에 위치한 컬럼비아대학교 맞은 편에 위치한 명문 리버럴아트칼리지중 하나인 버나드여대에 입학하였으나, 그 해에 흑인여학생들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학장의 설명을 듣고서 곧바로 버나드대학의 입학허가편지를 구겨 들고서 곧바로 지하철을 타고 뉴욕시의 중심가에 위치한 뉴욕대학으로 찾아가서 입학 허가 받고서 뉴욕대학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던 일화가 있었다. 그 후 75년이 지난 2004년도에 버나드여대는 그녀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게 된다.

미국 인권 사에서 한 획을 그는, 1963년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앞에서 킹 목사가 행한 “I Have a Dream” 연설 시에 바로 뒤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그녀였지만, 그녀는 그 모임과 연설회를 조직한 주된 사람들 중 하나였으며, 평생을 유색인종들의 인권신장에 몸바쳐온 여인이었다. 킹 목사가 1968년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암살된 지 40여년동안 미국의 지적 사회의 본산인 대학사회는 수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60년대 이전에는 유색인종의 대부분을 차지한 흑인들의 똑똑한 자녀들이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서 흑인들이 대부분인 대학으로 진학할수밖에없었다. 이러한 유명 흑인들의 대학들을 Black Ivies라고 명칭할수있겠다. 이들 대학들은 다음과 같다;
? Claflin University, Orangeburg, SC
? Clark Atlanta University, Atlanta, GA
? Cheyney University of Pennsylvania, Cheyney, PA
? Dillard University, New Orleans, LA
? Fisk University, Nashville, TN
? Hampton University, Hampton, VA
? Howard University, Washington DC
? Lincoln University (Pennsylvania), Oxford, PA
? Morehouse College, Altanta, GA,
? Morris Brown College, Atlanta, GA
? Morgan State University, Baltimore, MD
? Spelman College, Atlanta, GA
? Tuskegee University, Tuskegee, AL
? Xavier University of Louisiana New Orleans, LA
이들 중에서도 Howard(하워드)University, Morehouse(모어하우스)College, Spelman(스펠만)College, Dillard(딜라드)University, Hampton(햄튼) University, Tuskegee(터스키지)University, Fisk(피스크)University대학들이 흑인들의 최고명문대학들로서 알려진 대학들이다.

인권운동의 시작된 1960년대 이후부터 시작하여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유색인종들에게 소위 유명명문사립대의 문호가 열리게 된다. 이민역사가 얼마되지않은 한인사회에도 이들 흑인들의 부단한 인권운동의 부산물로서 많은 혜택을 보게 된다. 70년대와 80년대의 한인 자녀들이 대거 명문 아이비리그대학들과 이에 준하는 대학들에 생각보다 쉽게 입학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유색인종들에 대한 대학입학사정 시에 특별고려해야하는 기회균등정책 때문이었다.

유난히 흑인들에게 인종차별이 심한 한국인들과 우리한인들에게는 별로 중요한내용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 흔한 인간쓰레기들 같은 무자격 백인 영어회화선생들에겐 과외를 못하여 안달하지만, 자격 있고 제대로 교육받은 흑인선생들에겐 배울 학생들이 없다는 현실이 우리 대한민국의 수준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 씁씁할 따름이다.

그러나, 미국에 이주하여 2세들을 교육시키는 우리한인 부모님들은 다시 한번 지난 세월 흑인들이 노력해온 인권신장과 차별철폐를 위한 지난한 노력들을 우리 한인 자녀들과 다시 한번 생각해보며, 그들이 암울한 시절에 그들의 명석한 자녀들을 훈련시키고 교육시키기 위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미국내의 흑인 명문대학들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한다는 필자의 생각이 사치가 아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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