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밤 프랑스 파리 도심에서 국제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IS)의 동시다발적인 테러가 발생해 무려 48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테러로 숨진 희생자는 129명에 달했고, 부상자는 350여 명에 이른다.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가 늘어날 우려가 크다. 테러에 목숨을 잃은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부상자의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

     이번 만행은 이전 테러 사건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2001년 미국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을 겨냥한 9·11 테러는 수퍼파워 국가의 상징적 건축물을 겨냥한 공격이었다. 올 1월 프랑스에서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테러는 이슬람을 조롱하는 듯한 한 잡지사의 만평(漫評)을 문제삼았다. 하지만 지난주 금요일 밤 파리에서 일어난 연쇄 테러는 축구 경기장, 식당, 록 공연장, 카페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이런 곳들은 정치적 혹은 종교적인 장소가 아니다. 그저 음악과 스포츠를 즐기고 가족과 외식을 하려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자신이 테러의 표적이 될 것을 어느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콘서트장에 난입한 테러범들은 15초에 한 명씩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고 한다. 사망자들은 단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희생됐다. 일반 시민을 향한 무차별 학살이고 맹목적 총질이었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가 입은 사상 최대의 테러참극이라고 밝혔다. 테러발생 직후 프랑스의 공군기는 시리아 내 IS 거점지역을 중심으로 연일 공격에 나섰고, 러시아도 공습에 가담했다. 유럽연합(EU), 미국 등도 강도 높은 타격전에 곧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도 IS의 극단적인 폭력 테러에 반감을 드러냈으며, 때마침 터키에서 열리고 있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IS 테러에 대한 국제 공조를 천명했다. 유럽 최고의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테러인데다가, 각종 경기와 국제적인 회의 등을 거치며 테러에 대한 나름 신중한 대응책이 마련되었다고 하는 찰나에 빚어졌던 참상이었기에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슬람국가는 프랑스에 이어 미국을 다음 테러 대상국으로 지목했다. 워싱턴 D.C., 뉴욕 등 미국의 주요도시들은 테러방지를 위한 추가 경찰병력을 배치했으며 이상징후 포착을 위한 순찰도 강화했다. 9.11 테러의 악몽을 떨쳐버리지 못한 뉴욕시는 테러 진압 특수 훈련을 받은 경찰 1백여 명을 뉴욕시내 주요지점에 처음으로 배치했다. 위싱턴 D.C.의 경계수위도 높아졌다. 백악관, 국회의사당 등 주요건물 주변에는 경찰견을 동반한 경찰들이 바쁘게 순찰하며 테러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 민간인 사살을 거침없이 해대고 있는 IS가 다음 순서로 미국을 지목한 이상, 이 흉흉한 분위기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대한민국도 테러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이번에 IS가 미국의 대테러 활동 동참국으로 지목한 62개국에는 대한민국도 포함돼 있다. 언제든 IS의 테러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테러 지침은 1982년에 제정된 대통령훈령이 고작이다. 이 지침은 ‘법률’이 아니기에 처벌 조항조차 없다. 게다가 사전적 테러 예방을 위한 감시 체계를 합법적으로 운용할 법적 토대들도 미비하기 짝이 없다.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대테러 방지법 마련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낼 만큼 체계적이지 못했고 설득력 있는 논증도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이번 파리 테러 참사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대한민국도 만일의 테러 사태에 대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테러에 적극 맞선다는 의미는 테러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의미도 된다. 문제는 시급성이다. 그럼에도 국회가 ‘테러방지법’ 제정을 2001년 발의 후 14년째 방치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 안전을 도외시한 심각한 직무유기이다. 야당의 입법 방해로 33년된 대테러 지침에 의존하고 있는 한심한 현실이다. 당리당략을 떠나 이제는 테러방지법을 완성시켜야 할 때이다.

       지금 프랑스는 슬픔에 잠겨있지만, 정신만은 반듯해 보인다. 테러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올랑드 대통령이 질 수 밖에 없다. 야당으로서는 부실한 테러 대응을 지적하며 정부를 매섭게 몰아붙일 ‘정치적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정계는 정파를 떠나 올랑드의 사회당 정부에 전폭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테러 직후 올랑드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 연설에 나서 “프랑스는 지금 전시 상황이다. 승리를 위해 미국과 러시아도 하나의 연합군으로 맞서 싸우자. 공화국 만세, 프랑스 만세”를 외쳤다. 그 순간 회의장에 있던 900여 의원이 모두 일어나 올랑드 대통령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어디선가 시작된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모두 합창했다. 좌와 우, 여당과 야당의 구분은 없었다. 거의 모든 사안에서 대립각을 세워 온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공화국의 가치를 지키려는 대통령에 지지를 보낸다” 면서 극히 이례적으로 대통령을 칭찬했다. 올랑드 대통령과 제1야당 공화당 대표인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만남은 테러 발생 후 2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런 프랑스 정계의 움직임은 국가 비상 상황에서는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단결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다.

      IS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공습이 아니라 단결이다. 이번 11·13 파리 테러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반(反)인륜적 만행이다. 정치·군사 시설이나 경제·금융 중심지도 아닌 일반 민간인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더욱 죄질이 나쁘다. 전 세계는 IS의 테러에 굴하지 않고, 이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해야한다. 무고한 사람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전세계가 이들의 만행을 더 이상 묵인하지 않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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