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사무실로 필자를 찾아온 이들이 있었다. 다소 흥분된 얼굴로 필자를 찾았는데 이유는 이랬다. 목욕탕에서 아주머니들이 모여 자신들에 대한 나쁜 얘기를 했다는 것인데, 그 이야기를 필자가 그 사우나에서 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 사우나에 가본 적도 없지만, 전혀 알 수도 없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말들이 도는 걸까. 전혀 연관성이 없는 내용이어서 뭐라 딱히 답을 해 줄 수도 없었다. 어처구니 없는 말들이 떠돌 때마다 참 난감하다. 이럴 때마다 필자는‘사람들의 입을 타는 것은 인기 덕이겠지’하면서 스스로 위로를 하곤 한다. 그래도 어제처럼 찾아와서 오해를 푼 이들은 고맙다. 직접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거짓말쟁이로 보일 때가 있다. 바로 코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이 말이 정말일까’하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는 바로 가짜가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 한인사회는 더 심하다. 가짜의 필수조건은 큰 목소리와 우기기 그리고 위조 등이다. 가짜를 조장하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확인도 하지 않고 그냥 믿어버리는 사람들도 문제다. 이들이야 말로 가짜를 만드는데 공을 세운 공로자 들이다.

한국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던 학력위조는 이곳에서도 성행한다. 한국이 아닌 미국에까지 와서 학력을 속여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슬픈 일이다. 그동안 세상과 살아온 시간을 속이는 일이기에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화가 난다. 간단하게 대학입시를 준비했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대학을 가기 위해 도시락 3개를 싸서 새벽 6시에 집을 나섰고, 밤12시에 운동장에 세워진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던 시절을 보낸 학생이, 3년 내내 나이트클럽 다니고, 미팅하고, 놀러 다닌 학생과 같은 결과를 받는다면 너무 억울하다.

대학교는 좀 낫다.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것은 시간과 돈, 자신의 역량을 총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한 기본조건은 4년제에 준하는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석사학위를 받아야 한다. 이 세월 동안 겪어야 하는 긴장감과 피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필자는 아직 박사학위를 받아보지 못했지만, 석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논문 제목을 정하고, 가설을 세우고, 반론을 가정하고, 내용을 수집하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정리하고, 내용을 검증하는 과정만도 6개월이 걸렸다. 부수적으로 인쇄소를 알아보고, 부수를 정하고, 책 제본 모양을 선정하는 것도 일이라면 일이었다. 일반 수업을 제외하고도 논문을 수정 후 심사하는 기간도 3개월은 족히 걸렸다. 석사학위를 이렇게 받았으니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쯤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생각해 보면 학력위조는 세월을 날로 먹겠다는 것이다. 분명 사기다. 진짜 박사가 들으면 억울할 만하다. 여기에도 가짜가 자신의 진짜 모습인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 몇이다. 이 곳 한인사회는 학력이 중요하지 않은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위조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도 아직까지 학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거나 아님, 잘난 척에 취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제각각 재주를 갖고 태어난다. 어떤 이는 장사를 잘 하거나, 어떤 이는 서비스업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거나 숫자개념이 뛰어나 금융, 회계분야에 두각을 나타낸다. 각자가 가진 소질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대학교 졸업장, 박사학위는 한낱 종이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최근 박해춘씨 실종 사건으로 얼마나 많은 말들이 난무했는지 들을 때마다 놀랍다. 공신력을 가져야 하는 신문사들 조차 경찰과 검찰, 법원에서 배포된 정확한 자료를 배제하고,‘시체를 찾았다’라는 유언비어를 계속 남발하니, 사람들은 신문사에서 나온 얘기인 만큼 당연히 믿고 열심히 소문을 내러 다녔다. 정확한 사실만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사 조차 소문, 가짜를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신문사가 문제’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현실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지난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신문을 돌리러 갔더니, ‘박씨가 여행을 갔다가 살아 돌아왔다’면서 오히려 필자에게 사건이 마무리 되었다는 것을 일러주기도 했다. 대단한 추리력과 근거 없는 소문에 혀를 내둘렀다. 어떤 상황이 사실인지, 어떤 사람이 가짜를 우기는지 정도는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말 많은 한인사회에 살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을 의심하라’는 충고를 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삼자를 비하하고, 우기는 발언을 접할 때마다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필요 이상의 거짓말과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들뿐 아니라, 이를 따르는 사람들 또한 그들의 가짜 인생에 동참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듣고, 얻은 정보가 어느 정도의 신뢰도를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는 판단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목소리가 작아도, 남을 비방하지 않아도, 학력위조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아는 척 하지 않아도, 노력하는 자가 인정받는 사회가 하루빨리 만들어지길 바란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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