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이다. 누구에게나 12월은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기가 된다. 그리고 더 나은 날들을 위해서 과거를 돌아보고 내일을 계획한다.
덴버에서 기자 생활을 한지 12년이 지났다. 그동안 여러번의 협박 편지와 욕설 편지를 받았다. 대부분 남편과 자식까지 운운하면서 가정파탄을 예고하거나 아니면 한페이지 가득 읽기도 힘든 치졸한 욕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신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이런 편지를 거침없이 보낸 사람들은 늘 비슷한 부류였다는 것이다.

      지난 추수감사절 주말에 필자는 10여 통의 편지를 받았다. 필자에게 직접 보낸 것은 아니고 한인타운에서 식당, 마트, 미용실 등에서 이상한 편지가 왔다며 건네준 것들이었는데, 발신인이 없는 블랙메일이었다. 내용의 골자는 필자가 많은 남자들과 통정을 해서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상대 남자들의 실명도 세세히 거론해놓았다. 편지 속에 등장한 이들도 이 편지를 그냥 넘길 것 같지는 않다.
이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필자에게 전화를 하거나, 직접 찾아와 편지를 보낸 사람을 맹렬히 비난하며 혀를 찼다. 누가 봐도 모함인 편지이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필자는 지금까지 여러번 이런 일을 당해서 그런지, 이런 편지쯤은 가십거리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을 거론하면서 가슴에 묻은 자식까지 언급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절대해서는 안 되는 금기를 깨뜨린 짓이다. 이런 바닥까지 천박한 것들의 행태를 이제 더 이상 눈감아 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들의 자식은 얼마나 잘 사는지 지켜볼 일이다. 블랙메일의 글쓴이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아는 경찰은 시간이 걸릴 뿐이지 찾을 방법이 있다고 언질해주었다. 또 벌써부터 누가 썼는지 알고 있다면서 밝히는 이가 있는가 하면, 블랙메일 작성자와 접촉했던 주변의 인물들이 스스로 실토를 하고 있는 중이다. 마치 포커스 신문사에 제보라도 하듯이 말이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한 유력한 용의자는 아닌 척하면서 넌지시 접촉을 해오기도 했다. 이 편지가 마치 사실인냥 호들갑 떨며, 여러 사람한테 알리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이야말로 이 블랙메일의 작성자라고 충분히 의심받을 수 있다.  

      물론 이런 허무맹랑한 소설을 결코 신문에 게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름도 밝히지 못하는 것 자체가 지어낸 내용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지난 번에도 노인회에 관련된 블랙메일이 나돈 적이 있다. 이때도 저급한 내용들이었다. 남에게 해를 끼치기 위한 사악한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컴퓨터로 편지를 썼을 그 사람의 목적은 당연히 당사자가 한인사회로부터 비난과 수군거림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화살은 편지를 작성한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블랙메일 사건으로 인해 포커스의 아성(牙城)이 정말 무너뜨리고 싶을 정도로 높고, 깨고 싶을 정도로 굳건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필자의 칼럼을 읽고 있을 블랙메일 작성자에게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체포되기 전에 이같은 블랙메일 소설을 또 다시 쓰고 싶다면 일단 필자에 대한 욕설만 당부한다. 더 망신당하기 전에 자중하라는 마지막 경고다. 편지의 거짓 내용보다도, 편지를 작성한 손이 더 추악하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만들테니까 말이다. 얼마전 바이올린 연주의 거장 이츠하크 펄먼이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자유훈장을 받았다. 칠십 평생 기여한 업적을 토대로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이다. 이스라엘 출신의 그는 어릴 적 음악 ‘신동’에서 오늘날 자유훈장을 받기까지 음악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천천히’라고 밝혔다. 그는 “연습은 항상 천천히 해야 한다. 무엇이든 천천히 배우면 잊어버리는 것도 천천히 하게 된다.” 고 말하곤 했다.

     그의 인생은 ‘천천히’일 수 밖에 없었다. 아주 어릴 적에 소아마비를 앓고 다리를 심하게 절게 된 그는 5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1950년대 말 그가 중학교 1학년일 때 미국 최고의 인기 TV 쇼였던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면서 바이올린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리를 저는 연주자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높고 계단 많은 무대를 돌아서 올라가야 했고, 목발을 짚고 무대 중앙까지 가는 것도 공연 때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면서 그의 음악의 깊이도 함께 깊어졌다. 지난 8월로 70세를 맞은 기념으로 그는 현재 세계 순회공연 중이다. 얼마전에는 서울에서도 공연을 했다. 그는 16번의 그래미상, 3번의 에미상에 더해 국립예술 훈장도 받았다. 음악인으로서 이룰 만한 것은 다 이룬 지금 그에게는 여전히 목표가 있다. 그것은 항상 처음처럼 연주를 하며 끝까지 청중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다.

      내년에 포커스 신문은 벌써 10주년을 맞는다. 새삼 이츠하크 펄먼씨의 소망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온갖 모함과 욕설을 지금까지 견디며 천천히 그리고 굳건히 걸어왔기에 포커스의 오늘이 있었다. 고작 몇 마리의 물 흐리는 미꾸라지가 해대는 비난에 흔들릴 신문사였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장구한 세월이 이어진다. 포커스는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찌라시 신문이 아니라 ‘평생 업적상’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지난 세월 한인사회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중재하며, 다독이며 함께 울고 웃었다. 필자는 그 세월 동안에 이츠하크 펄먼씨와 같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라는 삶의 지혜를 터득했다. 이 비결이 많은 독자들에게도 와 닿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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