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가장 부유한 미국인 400명을 발표했다. 빌 게이츠는 올해도 최고부호의 자리를 지켰으며 그의 절친 워렌 버핏도 2위에 올랐다. 올해는 아마존닷컴의 최고경영자인 제프 베조스와 페이스북 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처음으로 상위 10위 안에 들어왔다. 그런데 부호 400명 중 상위를 살펴보면 부모의 덕을 본 ‘금수저’가 꽤 많다.

      미국 부자 1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알고보면 아버지는 유명 변호사에 어머니는 은행과 비영리 단체 이사, 외할아버지는 국립은행 부은행장이었다. 버크셔 해서웨이 CEO인 워렌 버핏의 아버지는 사업가에다 투자자, 네브래스카주 하원의원이었다. 석유재벌이자 공화당의 큰 손 중 한명인 찰스 코크의 아버지는 정유공장 사장이었다. 물론 금수저라고 말하기 애매한 사람들도 있다. 마크 저커버그의 경우 아버지는 치과 의사였고, 어머니는 정신과 의사였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의 경우 아버지와 어머니는 미시건 주립대 교수들이었다. 매년 포브스는 부호들의 상속 재산 액수나 집안 배경,  재산 증식 정도 등을 따져 이른바 자수성가지수(Self-Made Score)를 매기고 있는데, 상위 25명 중 가난한 환경에서 성공한 입지적인 인물은 고작 3명 밖에 없었다.

      이처럼 좋은 환경에서 자란 부호들이 늘어나면서‘개천에서 용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을 생각하면 때론 힘이 빠질 때가 있다. ‘열심히 해도 우리는 안될거야, 부와 가난은 대물림 된다, 돈 있는 집 자식이 공부도 잘한다.’ 십중팔구 이런 탄식이 나오게 되어 있다. 하지만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대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최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세계 축구선수왕을 보면서 개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얼마 전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전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23명의 선수 중에서 세 사람을 ‘발롱도르’상 후보로 선정해서 발표했다. 호날두, 메시, 네이마르가 바로 그들이다. 스포츠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 상은 그 이듬해 1월 초에 수상자 발표를 한다. 이들 중 호날두는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호날두는 포르투갈 출신이다. 그의 어머니는 서른 살에 그를 임신했는데 낙태를 하려고 따뜻한 맥주를 마시고 실신할 때까지 달렸다고 한다.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였고 한 달 50만원 정도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죽지 않고 태어난 아이가 바로 호날두다. 어린 시절 그는 가난해서 가지고 놀 공이 없어 양말 뭉치를 공 삼아 찼고, 빈 깡통으로 공놀이를 했다. 부정맥이 발견되어 수술까지 받았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그는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되어 이미 발롱도르를 두번이나 거머쥐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메시의 환경도 따져보면 개천이었다. 어릴 때 우연히 부모로부터 받은 공으로 놀다가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선천적으로 키가 자라지 않는 성장 호르몬 분비 장애로 열살 때 키가 겨우 127센티 밖에 안 되었다. 그는 밤마다 호르몬 주사를 맞으면서도 열심히 연습해, 결국 명문 리베르 풀레테 청소년에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그 구단은 한 달에 100달러 정도 하는 그의 주사값을 감당할 수 없다는 통보를 해왔고 메시는 절망적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스페인 축구 명문 바로셀로나의 남미 담당 스카우터가 그의 가능성을 보고 그의 아버지를 만나 레스토랑에서 냅킨에다 계약서를 쓰고 메시를 스페인으로 데려갔다. 가난해서 아들의 병을 치료할 수 없었던 그의 부모로서는 천사를 만난 셈이었다. 그 냅킨 한 장이 세계의 축구 역사를 바꾸게 될 줄이야 그 누가 짐작했을까. 스페인에서 치료를 받은 메시는 그 이후 키가 169센티까지 자랐다. 이미 메시는 마라도나의 뒤를 잇는, 아니 마라도나를 뛰어넘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되어 발롱도르를 네 번이나 수상했다. 물론 올해도 제일 유력한 후보이다. 그는 자그마치 600경기에 출전해서 470골을 터뜨렸다. 그가 주급으로 받는 돈만 해도 한국돈으로 10억 원이다. 축구 전문가들이 그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신계의 선수라고 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이 용들의 홈타운은 개천이었다. 분명 개천에서 용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개천이라는 환경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며 자수성가한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성공한 세일즈 우먼이자 기업가인 다니 존슨이 떠오른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 양아버지의 성적학대를 받아 임신을 하고 집을 나와 노숙자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희망없는 인생이었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다. 고작 2달러 밖에 없는 상황에서 차에서 다이어트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곤경 속에서 배운 인생의 교훈이 사람들의 공감을 사면서 그녀는 곧 회사의 판매왕으로 등극했다. 17세에 임신, 21세에 노숙자, 23세에 백만장사 그리고 다섯 아이의 엄마로서, 할머니로서, 경영자로, 작가로, 라디오 토크쇼 호스트로 성공했지만 여전히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서 주위의 귀감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 재테크의 여신이라고 칭송받는 수지 오먼도 자동차에서 노숙자처럼 살던 때가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시간당 3.5달러짜리 아르바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며 5만 달러의 돈을 모아 증권사 브로커에게 맡겼지만 석달 만에 몽땅 날렸다.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증권 브로커가 무슨 일을 하기에 석달 만에 5만 달러를 날릴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금융 공부를 시작했고, 월급 1500달러를 받는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얼마 뒤 메릴린치에서 가장 수익을 많이 올리는 브로커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 개천에서 일어선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이 처한 어려운 환경을 보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있다. 때론 지금 이순간 주어진 시간에 집중하며 사는 것이 최선일 때가 있다. 단 이러한 개천도 사기와 거짓말로 얼룩진다면 늪보다 못한 곳이 된다. 용의 홈타운은 늪이 아니고 개천이다. 작지만 희망이 넘치는 개천의 신화가 계속 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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