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따뜻한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의 이유가 TV 드라마여서 누가 들으면 비웃을만도 하다. 하지만 지난주에 종방한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우린 참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응답하라 1988’, 줄여서 ‘응팔’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안본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인기 드라마였다. 딱히 꼬집어서 1980년대 세대가 아니어도 그 시대를 보냈던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어 ‘참 잘 만들어진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다.

      주인공 덕선의 아빠인 성동일씨가 ‘꽃잎이 떨어지는 것만 싫어했다, 꽃잎이 지면 열매가 생긴다는 것을 깜빡해부렀어” 라는 대사를 했을 때, 필자는 가벼운 솜망치로 기분좋게 한대 얻어 맞은 느낌이 들었다. 이 ‘응팔’이라는 드라마 전체가 그랬다. 우정과 사랑, 그리고 감동이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강하게 계속해서 가슴을 두드린다. 특히 종방연은 눈물의 종합선물세트였다. 좋은 친구가 있었기에, 다정한 이웃이 있었기에, 사랑 깊은 가족이 있었기에 이 ‘응팔’은 누구에게나 감동적일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필자는 드라마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울고 짜고 하는 것이 싫어서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더불어 가슴이 따뜻해지는 드라마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이 ‘응팔’이라는 드라마에 대해 한국의 언론은 신드롬이라는 말로도, 열풍이라는 말도 부족하다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출연자들은 모두 대세배우가 되었고, 응팔의 주연 배우들은 지금까지 55개의 광고를 찍었고, 간접광고로 등장한 제품은 매출이 급상승했다. 배경 음악은 음원차트를 점령했으며, 매회 방송이 끝날 때마다 분석기사가 쏟아졌다. 현역 국회의원이 드라마의 결말과 관련된 촬영상황을 트위터에 올렸다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시청자들이 이렇게까지 ‘응팔’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6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왜 이토록 1988년에 사로잡힌 것일까.

       우선 서열없는 ‘응팔’의 세계에 힐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언제부턴가 대한민국 드라마에서는 평범한 아빠 엄마가 사라져 버렸다. 대부분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아빠 엄마는 재벌 회장과 사모님 아니면 아들 딸 등쳐먹는 무능력한 부모들로 양분된다. 금수저, 흙수저 등 계급 논란이 끊임 없이 나오고 있는 요즘, 이 피곤한 우리의 현실을 서울 쌍문동의 한 골목 평상위에 편안히 앉혀 놓았다. 다섯 친구와 각기 사정이 다른 가족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시절의 추억과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은행에 다니면서 친구의 빚보증을 잘못 서서 온 가족이 셋방살이를 하는 신세가 되게 한 가장 성동일. 그런 아빠를 원망하지 않고 구김살없이 자라나는 자녀들. 주인집 아들이라고 반지하 셋방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로서 우정을 나누는 정환이.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엄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분에 공부를 잘해서 의대에 갈 실력을 가진 선우. 학생주임의 아들이지만 공부와는 담을 쌓고 아예 대학 진학조차 하지 않는 동룡이. 천재 바둑 기사 택이 등. 다양한 성격과 배경을 가진 친구들이 서로에 대한 아무런 이해득실 없이 형제 이상의 돈독한 정을 나누고 산다. 이웃의 아픔을, 이웃의 걱정을 함께 하며 담장 정도는 정을 나누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는 그야말로 가족 같은 이웃들이 산다.

       또 흥미로운 것은 ‘응팔’의 등장인물 중에는 나쁜 사람, 악한 사람, 잘난체 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TV 보기가 괴롭지 않다는 것이다. 복권에 당첨되어 벼락부자가 된 집도 친근한 이웃이고, 전교 1등 아들 선우도, 사법고시에 합격한 딸 보라도 부모들의 잘난체를 위한 설정이 아니었다. 조금의 다툼이 있을지언정 분란이나 싸움은 없고, 말대꾸 정도는 하지만 부모에게 대들고 위해를 가하는 자식들도 없다. 입시와 오랜 시간의 자율학습으로 다소 불만을 가지고 일탈을 꿈꾸는 귀여운 악동들은 있지만 선생님께 노골적으로 대들고, 오히려 선생님께 몽둥이를 들고 구타를 가하는 패륜 학생들은 없었다. 또 선생님과의 면담에서도 자식의 미래를 함께 걱정하며 자식의 성적이 낮은 것을 마치 자신의 잘못인양 선생님께 머리를 조아리며 부탁하는 학부모는 있을지언정 돈 좀 있다고, 권력 있다고 선생에게 대놓고 뺨을 때리거나 폭행을 휘두르는 못되먹은 학부모도 없었다. 매회마다 속고 속이고, 복수와 내연관계, 재산싸움 등과 같은 막장이 아니어서 더욱 좋았다. 열등감과 불안, 외로움,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가 꼭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 같았다. 배우들의 평범한 외모도 큰 몫을 했다. 응팔에는 조각같은 성형 미인이 없었다. 아침 밥상에 계란 후라이를 먹고 싶어하는 소박한 희망사항들은 모두 옛날 우리들의 이야기 같아 감정이입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적재적소에서 흘러나오는 OST의 역할도 컸다. 감성을 자극하는 당대 최고의 발라드가 다 모였다. 덕분에 지금 한국에서는 1980대 불려진 가요는 물론 팝송까지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1987, 88년의 대한민국은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민주화가 무르익었고, 올림픽을 치르면서 대한민국도 선진국 대열에 들 수 있다는 희망찬 시기였다. 그 시기에 학창시절과 청춘을 보낸 ‘응팔 세대’는 현재 40대 중반이다. 이제 사회의 주축이 된 사람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으니 화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응팔’은 시청자 각자가 자신의 과거 기억을 훈훈하고 따뜻하게 재구성하도록 도와줬다는 데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 과거가 어떠했느냐보다도 각자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실제보다 더 나쁘게 기억하고, 나쁜 기억을 더 강하게 떠올리면서 평생의 트라우마를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사실은 과거를 미화시키는 것이 현재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콜로라도 한인타운도 1988년도의 쌍문동의 한 골목처럼, 사람 사이의 소통과 배려가 곳곳에 스며든 곳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20년이 지난 후에 2016년을 떠올리면서 가장 즐거웠던 해, 따뜻한 사람을 가장 많이 만난 해,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해가 되어 자신있게 ‘응답하라 2016’ 을 외쳐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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