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저의 친구 중에서 가장 돈이 많은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500억 원 정도의 자산가일 것입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1986년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M그룹 홍보실에서 광고를 담당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옥외 광고물을 우리 회사에 판매하기 위해서 왔고 저는 그 옥외 광고물이 회사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심사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한 건도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업무상 만난 사람과 친구 되기가 쉽지 않은데 그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와 사귄지가 벌써 30년이 되어 갑니다. 친구가 된 이유를 굳이 찾아본다면 서로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과거를 묻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과거를 자세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의 언행을 보면 주먹생활을 해온 것 같았습니다. 남성다운 박력이 있었습니다. 학력도 모릅니다. 지식은 부족한 것 같으나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를 사귀면 끝까지 친구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누구누구 덕분에’ 잘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를 알게 된지 3년 후에 저는 미국 뉴저지 지사에 상사주재원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는 저를 보고 싶다고 미국에 왔습니다. 그 때 그는 그의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할 때였습니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기모노 원단에 수를 놓아 일본에 수출하는 회사였습니다. 수를 놓는 기술자가 약 250 여 명이 있었습니다. 그는 옥외 광고 분야를 담당했습니다. 그의 직함은 이사였지만 부하직원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주력사업인 기모노 사업은 점점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기모노를 특별한 날만 입기 때문이었습니다. 옥외 광고 사업은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흑자를 내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본사로 돌아왔을 때 그는 새로운 광고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광고 전문용어로 ‘샘플링 광고’라고 부릅니다. 일명 ‘맛보기 광고’ 입니다. 사업이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다국적 기업인 YK사의 휴지, 기저귀, 물휴지, 생리대와 같은 제품을 받아와서 샘플용으로 포장하여 나누어주는 단순한 광고업이었습니다. 제품을 공급받아 나누어주고 광고비를 받는 ’봉이 김선달‘ 과 같은 사업이었습니다.
YK사의 마케팅 담당 대리에게 샘플링 광고를 제안하였고, 그 담당자는 회사에 사업계획을 품의하여 통과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한국에서 샘플링 광고를 전문적으로 실시하는 회사는 없었습니다. 다국적 회사인 한 회사가 샘플링 광고를 하고 있었지만 제 친구가 제시한 광고비의 10배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담당대리였던 분은 샘플링 광고 업적이 발판이 되어 나중에 사장까지 올랐습니다. 친구도 다니던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친구와 담당자는 서로 상생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뭐가 고맙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저 때문에 광고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를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오면서 비행기에서 포장된 물휴지를 받을 때 샘플링 광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듣고 보니 사업 아이디어와 저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저를 만나기 위해 미국에 오다가 생각했기 때문에 제 덕분에 사업에 성공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나갈 때마다 빳빳한 새 돈으로 큰 액수의 돈을 주면서 고마운 마음을 표했습니다. 제 딸이 결혼할 때에는 부부가 함께 미국까지 와서 축하해 주었습니다. 한 번은 인천공항에 마중을 나오기로 했는데 부인만 나왔습니다. 갑자기 문교부 장관이 저녁을 같이 하자는 연락이 와서 공항에 나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부인이 대신 사과를 했습니다. 저는 친구가 장관이 인정하는 정도로 성공했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그는 경기도 K시 배드민턴 연합회 회장을 하다가 경기도 회장을 거쳐 나중에는 전국 회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생활체육 종목 중에 회원 수가 가장 많은 종목이 배드민턴 연합회입니다. 그는 전직 대통령과도 배드민턴을 치기도 했습니다. 회원 수가 많으니 당시 여당에서 K시의 국회의원으로 출마해주면 좋겠다는 제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부인과 저는 그가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도록 진지하게 말렸습니다. 그는 돈도 벌었고 학력에 대한 열등감도 털어보고 싶었는지 한동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망설였습니다. 그는 3년 전에 편도선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토모세라피(Tomotherapy)를 33일 동안 받았습니다. 작년 말 2달 동안 병원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암 판정을 받은 후 술과 담배를 끊었다고 합니다. 전국 배드민턴 연합회 회장 직도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너무 허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위해 우리 부부가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친구이지만 기도 덕분에 사는 것 같다고 고마워했습니다. 몇 년 전에 그는 제가 부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YK사 사장과 ‘누가 가장 잘 사는가?’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다가 ‘임 목사가 가장 잘 살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웃으면서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음을 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만 친구들이 그렇게 인정해주니 새삼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성공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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