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에는 두 가지 실존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에서 육체의 때에 할 수 있는 ‘우리가 어찌할꼬?’(행2:37) 다른 버젼으로 하면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행16:30)라는 질문이고, 또 하나는 잠시 후 영혼의 때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질문으로. ‘너 세상에서 무엇하다 왔느냐?’입니다.(마25:31-46) 첫 번째 질문에는 성경이 간단하게 말씀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예수를 나의 그리스도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인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믿어지면’입니다. 수동태입니다. 그래서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이지요. (엡2:8)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구주)로 믿어집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질문 앞에는 많은 고민이 있습니다. 믿음과 구원 사이에 있는 “상반(相反) 됨의 갈등” 때문입니다. Already와 Not Yet의 갈등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위대한 <사도 바울>도 그렇게 토로했습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4) 이 세상에 사는동안 우리는 매순간 선한 양심과 죄가 피터지게 내 속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갈등합니다. 그러면 잠시 후 영혼의 때에 하나님 앞에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저 갈등했는데요, 고민하면서 죄졌습니다’ 아니면 ‘정신없이 살다가 왔습니다’ 그러겠습니까?

    세상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뭘까요? 도대체 성공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척도와 기준은 무엇일까요? 최근 우리 대한민국 국민에게 잔잔한 감동과 잃어버린 정을 새롭게 했던 한국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결국 정팔이는 택이에게 덕선이를 빼앗긴 다음 차안에서 가슴을 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운명이란 가차 없는 포기와 망설임 없는 용기이다’ 바둑천재 택이는 그 날 있는 중요한 대국도 포기(기권)하고 덕선이에게 달려갔고, 정팔이는 갈등하고 망설이다가 택이보다 한걸음차이로 덕선이에게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지요. 그가 말없이 그 둘을 등지고 돌아오는 그 길에서 웬 비는 그렇게 쏟아지는지...

    이 세상에 두 평생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평생을 바람처럼 살다가 바람처럼 갑니다. 시인<서정윤>은 <바람이여>라는 시에서 역설적으로 이렇게 읊고 있습니다. “바람이고 싶어라/ ...중략.../ 목숨을 거두는 어느 날/ 내 가진 어떤 것도 나의 것이 아니고/ 육체마저 벗어두고 떠날 때/ 허허로운 내 슬픈 의식의 끝에서/ 두 손 다 펴보이며 지나갈 수 있는 바람으로 살고 싶어라/ 너와 나의 삶이 향한 곳/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슬픈 추억들 가슴에서 지우며/ 누구에게도 흔적 남기지 않는/ 그냥 바람이어라 바람이어라”

    바람같은 인생이기에 우리의 삶이 향한 곳,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슬픈 추억들 가슴에서 지우는, 영원한 그곳을 향해 가는 바람으로 살고 싶다는 시인의 간절함 이지요. 이 간절함이 있는 한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가난하면서도 딸 덕선에게 호랑이표 운동화를 사주며 행복해하는 엄마 아빠를 보면서 덕선이 언니 <성보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이란 줄 수 있는 넉넉함이 아니라 줄 수밖에 없는 간절함이다’ 그 간절함이 슬픈 추억들 다 가슴에서 지우는 그 영원한 나라에 까지 미쳐 있고, 또 그 나라가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 행복한 삶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을 잘 산 사람만이 영위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 세상을 잘 살았다는 것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처럼, 하나님의 면전(코람데오)에서 살다가 저 세상으로, 곧 주님 앞으로 나아갔다는 뜻이지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장)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하셨는데, 우리가 이런 세상을 더러운 죄를 가득 짊어지고 살면 되겠습니까? 죄는 우리가 없애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 죄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구주가 없는 삶이 곧 죄이기 때문입니다.(요3:19) 나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면 죄는 깨끗하게 사라집니다.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죄)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하고 토로했던 <사도바울>은 이렇게 답하며 마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7:25)
‘너 세상에서 뭐하다 왔느냐?’하는 하나님의 질문 앞에 ‘예, 세상을 하나님나라처럼 살다가 왔습니다’ 그렇게 대답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순절(四旬節, 예수님이 겪으신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기 위해 부활절 전 성 토요일까지 40일간을 경건하게 지내는 기간)기간에 3월13-16일까지 제16회 성경통독세미나가 있습니다. 주님이 초청하십니다. 와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십시오. ‘운명은 가차 없는 포기와 망설임 없는 용기’입니다. 운명은 나의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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