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신년계획을 세운 것 같은데 벌써 봄바람 살랑살랑 부는 3월이다. 뒷마당 그늘진 곳에 꽁꽁 얼어있던 눈도 다 녹아 버렸다. 유난히 겨울이 긴 콜로라도도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면서  바야흐로 골프의 계절도 돌아왔다. 이렇게 따뜻한 봄바람을 맞으면 냉기가 돌던 마음까지 녹아내리는 듯하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는 이 봄바람 같은 것은 세계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특히 국제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이 봄바람은 아무리 철벽을 치고, 이념으로 막아두어도 가지 못할 곳이 없다. 우리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무언가를 꿈틀거리게 만들고, 때로는 달콤한 맛으로, 때로는 자유의 표상으로 나타나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몇해전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에서 한국의 초코파이에 대해 적은 글을 본 적이 있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들어간 초코파이가 ‘황색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황색바람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문화를 뜻하는 것으로, 이 초코파이가 얼어붙은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대표적인 식품이라고 소개했다. 하얀 머시멜로와 촉촉한 초콜릿의 맛이 북한 사람들에게 자유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서구적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개성공단 입주 이후 북한에서 가장 인기있는 간식은 오리온에서 생산하는 초코파이였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이 4만6000명의 근로자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나눠주었다. 간식으로 제공된 이 초코파이는 암시장을 통해 유통되면서 북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암시장에서 거래되던 초코파이 한개 가격은 쌀 1kg 가격과 비슷하다고 한다. 개당 4∼5달러, 비싸게는 북한 노동자 월급의 10∼20분의 1수준인 10달러에 유통되기도 한다. 식량난이 심각한 북한 사정을 고려하면 무척이나 비싼 가격이다. 특히 환갑이나 생일날 잔칫상에 남한 초코파이를 풍성하게 올려놓는 것이 부의 상징으로 통할 정도였다니 그 인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때 북한의 화폐로 통용될 정도로 이 초코파이의 열풍은 실로 놀라왔다. 이쯤 되자 북한 당국은 초코파이 통제에 나섰다. 체제유지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남한의 주민들이 북한보다 헐벗고 굶주린 삶을 살고 있다고 선전해 왔다. 그런데 초코파이를 맛본 북한 주민들은 더이상 이런 거짓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2년전쯤 북한 측이 초코파이를 간식으로 지급하지 말 것을 한국 정부에 요청하면서 초코파이의 공급은 중단됐다. 대신에 라면이나 소세지, 커피 믹스와 같은 다른 간식을 제공받았다. 북한은 자유주의 바람이 무서워 먹거리 단속까지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규제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계속 늘자 북한에서는 북한 초코파이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이름은 ‘초콜레트 단설기’다. 하지만 우리의 초코파이보다 크기도 작고 초콜릿도 제대로 안 발려 있어, 오히려 오리온 초코파이를 더욱 그리워하게 되는 발단이 되었다.

       과거 소련 등 공산국가에서는 맥도널드 햄버거와 코카콜라가 자국 내에 진출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방어했다. 이유는 코카콜라와 햄버거가 미국의 자본주의를 상징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천상의 맛이라는 코카콜라와 이와 함께 먹는 햄버거 맛에 공산국가의 젊은이들은 푹 빠지게 되었다. 실제로 헝가리 부다페스트,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 등 동유럽 공산국가의 도시 중심, 가장 알짜배기 노른자 땅에 맥도널드가 들어서 있다. 거기에는 이들 국가가 언제 공산국가였는지, 그 잔재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매일같이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100년 넘게 세계 청량음료계의 황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코카콜라와 패스트푸드의 지존이라고 할 수 있는 맥도널드 햄버거의 힘이다.
청바지도 한몫을 톡톡이 해냈다. 자유와 저항의 아이콘이었던 청바지는 그들에게 미국식 자본주의의 퇴폐적 생활풍조라 규정되어 착용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냉전시대에 청바지가 지닌 정치적 의미는 대단했다. 89년 서방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서독의 록그룹 ‘스콜피언스’가 모스코바 레닌그라드 광장에서 ‘Wind of Change(개혁의 바람)’라는 곡으로 공연을 했을 당시 26만에 달하는 소련의 군중들은 청바지를 입고 환호했다. 그리고 2년 뒤인 1991년 구소련은 결국 해체되었다. 이 시대 청바지는 단순한 의류가 아니라 코카콜라와 더불어 서방으로부터의 자유와 개혁의 의지를 전달하는 매개체였다. 한때 격동의 시기에 20대의 혈기왕성한 시절을 보냈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60대가 되어 스콜피언스의 러시아 공연을 보면서 당시 맨 앞 줄에 서서 청바지를 입고 관람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어 화제가 될 정도로 공산국가에서 청바지는 변화의 바람이었다.

       최근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으로 인해 전세계가 지금까지 없었던 초강경 대북제재에 동의했고 이에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라는 일대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면 북한에서는 당분간 초코파이의 달콤한 맛을 보기 힘들어질테니 초코파이의 역할은 잠시 주춤할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모를 일이다. 미국의 자유를 상징하는 코카콜라와 청바지가 냉전시대의 소련을 변화시켰던 것처럼, 남한의 풍요로움를 상징하는 초코파이가 조만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낼지 말이다.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그 맛이, 딱딱하기 그지없는 정치의 변(辯)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분단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갖가지 정책으로 북한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초코파이의 효과보다는 못해 보인다. 영국의 한 일간지가 “머시멜로로 채운 작고 동그란 파이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을 서서히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견했듯이 말이다. 살다보면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 많다. 공산국가와는 달리 억압과 강요가 존재하지 않는 이 자유 민주주의 땅에 살고 있지만,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는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도 많다. 생각해보니 이런 사람들에게 초코파이와 같은 존재를 찾아주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같다. 한국에서 초코파이 광고의 주제는 마음을 힐링하면서 따뜻함을 함께 나누자는 의미의 ‘정(情)’이다. 이런 의미를 지닌 초코파이가 북한 뿐만 아니라 이곳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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