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그레함 목사의 외손자이며 플로리다 코럴릿지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인 튤리안 차비진(Tullian Tchividjian) 목사가 쓴 책 중에 ‘The Christian’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크리스찬의 정체성을 잘 설명하고 있는 책이며, 무엇보다 세상과 구별됨이 없이 세상과 똑같아져 버린 크리스찬의 삶의 모습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책입니다. 이 책에 이런 글귀가 나옵니다. ‘크리스찬이라 써놓고 구별이라 읽는다!’ 무슨 의미일까요? 크리스찬은 세상과 다르게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살되 세상에 속할 수 없는 존재가 크리스찬입니다. 크리스찬으로서의 구별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지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크리스찬으로서 구별됨이 없다면 그 사람은 이미 세상과 동화되어버리고 말았거나 아니면 물위를 속절없이 떠내려가는 죽은 고기 같은 존재일겁니다. 살아있는 고기는 도도히 흐르는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 법이지요. 그것으로 고기는 살아있음을 그리고 자신의 존재됨을 증명합니다. 영향력도 잃어버리고 생명력도 없는 무늬만의 크리스찬들로 주변이 넘쳐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크리스찬다운 삶일까요?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구별시키고, 세상 속에서 살지만 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님을 증명해 내는 삶의 원리, 신앙생활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아브라함이라는 성경의 한 인물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브라함을 우리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첫 발을 내 딛는 아브라함의 믿음 생활의 여정과 행적 속에서 세상과는 구별되게 살아가는 크리스찬의 삶의 원리를 찾아 볼 수 있을 겁니다. 아브라함의 처음 믿음의 여정을 기록한 창세기 12장은 그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창세기 12:4)라고 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무엇을 따라가느냐가 그 사람의 정체성과 삶의 모습을 결정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따라가고 세상 권세를 따라갑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 놓습니다. 좀 더 힘 있는 세상 권세 앞에 줄을 서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진정한 크리스찬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말씀이 가라고 하면 가고 서라고 하면 서는 사람입니다. 말씀 한 마디 순종하는 일에 목숨을 거는 사람입니다. 왜 크리스찬들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지 않습니니까? 말씀 따라 살아가는 삶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듣고 알고 있는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내는 삶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별로 다른 것이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창세기 12:7)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창세기 12:8)라고 했습니다. 제단을 쌓았다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드렸다는 말입니다. 크리스찬에게 있어서 자신이 세상과 구별된 존재임을 드러내는 가장 분명한 표지는 예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크리스찬들이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행위는 자신이 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님을 몸으로 고백하고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 마다 제단을 쌓았던 것처럼 내가 일하고 살아가는 삶의 자리가 어디든 그곳이 예배의 자리가 되는 사람이 크리스찬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땅은 가나안이었습니다. 그가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곳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창세기 12:6)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셋째로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창세기 12:8)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거처를 옮길 때마다 장막을 쳤습니다. 장막은 임시처소입니다. 크리스찬은 세상을 장막 생활의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크리스찬에게 있어서 세상은 임시처소입니다. 크리스찬은 세상이 최종 목적인 것처럼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상 속에서 살되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찬들에게는 언젠가는 이 세상 것들 다 놔두고 가야할 본향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하루종일 밖에서 재미있고 신나게 놀다가도 해가져서 엄마가 부르면 가지고 놀던 것들 다 놔두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크리스찬에게는 돌아가야 할 본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렇게 정의 합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브리서 11:16) 장막 생활은 불편합니다. 세상 속에서 장막 생활을 자처하며 살아가는 크리스찬은 편안함과 안락함만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좀 불편하게 살 것을 각오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과 다르게 자신을 분명하게 구별 지으며 살아가는 크리스찬의 삶은 어떤 모습입니까? 아브라함이 믿음의 첫 발을 내 딛었을 때의 모습처럼 ‘말씀 생활’ ‘예배 생활’ ‘장막 생활’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튤리안 차비진 목사님이 고민했던 것처럼 ‘세상에서 사는 것’과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 이 두 사이의 미묘한 균형점을 찾는 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크리스천들의 정체성을 찾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세상 속에서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참된 크리스천의 삶을 한번쯤, 아니 늘, 심각하게 고민해 봄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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