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대표해 구글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에 맞선 이세돌 9단이 마지막 경기에서 5시간의 혈투 끝에 1집반 차로 석패했다. 이로써 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인간과 기계의 맞대결은 1승 4패로 기계의 승리로 막을 내렸고, 알파고는 이세돌을 제치고 세계바둑 4위에 랭크되었다.  4국에서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묘수로 승부를 뒤집었던 이 9단은 마지막 대국에서는 알파고에게 유리한 백을 양보하고 대국에 임했다. 이는 자신를 향한 도전이었다. 이 9단이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4번째 대국은 3판 연속 불계패한 뒤, 5 대 0의 예측이 무성한 가운데 거둔 값진 승리였다. 한국기원 등 일각에서는 이번 대국이 인간 한 명과 컴퓨터 1202대 간의 불공정 대결이라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이세돌에게는 의미 없는 논쟁거리였다. 오히려 그는 “제 능력이 부족해서 패한 것”이라며 남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9단은 아무도 예측 못한 묘수로 알파고를 눌렀다. 연속된 패전에도 밤을 새우며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이 9단이 보여준 불굴의 도전 정신, 패했을 때 핑계 대지 않고 깨끗하게 승복하는 용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끊임없는 연구하는 자세 등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걸핏하면 반칙이나 술수에 기대려는 한국 사회 풍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무기력에 빠져 자포자기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나아가 인간의 지력(智力)과 노력(勞力)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도 새삼 일깨우고 있다. 이세돌의 1승을 가져다 준 4번째 대국은 역사에 남을 만 하다. 처음 세번의 대결에서 알파고는 세상에 없는 파격수를 선보이며 인간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처럼 난공불락 같았던 알파고는 아무도 예측못한 이세돌의 한 수에 실수를 연발하며 무너졌다. 이 9단은 4국을 180수(手)만에 불계승으로 이끌어, 알파고가 인간 바둑기사들을 상대로 이어온 전승 행진을 중지시켰다. 완전무결해 보이는 알파고를 상대로 한 이번 대결은 분명 인간에게 있어서 ‘소중한 패배’이다.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파고들기 전 몇수 앞서 그 미래를 고민해 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대국을 지켜보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무력감과 야릇한 공포감을 가지게 되었다. 대국 후 한 외신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여태까지 알파고가 실수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따져보니 묘수였다. 한데 알파고를 만약 의학에 적용한다면 어떻까? 의사가 볼 때는 오류였는데 알고보니 생명을 살릴 묘수였다면 혼란을 초래하지 않을까.” 미래에 인공지능이 의료분야에 투입된다면, 과연 우리가 인공지능을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알파고의 아버지인 데미스 하사비스는 인공지능이 의료부문에 사용되려면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답했다. 인공지능이 아직까지는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구글에서 추진 중인 자율주행차나 의료부문에서 실수가 나오면 치명적이다.  지난달 캘리포니아에서 구글 무인차가 도로에 떨어진 모래주머니를 피하다가 뒤따라오던 버스와 충돌한 일이 있었다. 무인차는 버스가 속도를 줄일 것으로 판단했지만, 버스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사고로 이어졌다. 인간의 생활 속에서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인공지능에는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탑재되어 있지 못하다. 만약 무인차는 10명의 보행자와 다른 1명의 보행자 중 누구를 살릴 것인가, 10명의 보행자와 1명의 탑승자 중 어느쪽을 살릴 것일까. 전자의 경우 1명을 피해 자동차 주행 방향을 돌리면 다른 보행자 1명과 충돌할 것이고, 후자의 경우 보행자 10명을 피해 방향을 돌면 벽에 충돌해 탑승자가 사망할 것이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위급한 상황에서 인공지능이 어디에 우선순위를 둬야하는지는 항상 논란거리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영화에서처럼 컴퓨터나 로봇에 의해 인간이 지배받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우선순위를 주입하는 것 또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세돌의 첫승 직후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 데미스 하사비스와 알파고 개발을 총괄한 데이비드 실버 박사는 “알파고의 한계를 파악했다. 약점을 보완할 것”이라고 밝혔다. 머지않아 알파고의 인공지능은 이세돌에게도 완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또 진화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또한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충분히 이에 맞설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과 AI 간 ‘세기의 대국’이 중국이나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열린 것은 우리에게 큰 행운이었다. ‘한국인’ 이세돌이 인류의 저력을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파고의 연승을 지켜보면서 전대미문의 기발한 착상과 엄청난 계산 실력에 전율을 금할 수 없었다. 이제 바둑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의 수준을 넘어섰고, 더 이상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은 무의미한 것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감정적 동요나 두려움 없이, 1천대가 넘는 CPU로 구축돼 과학자 100여명의 돌봄을 받으며 24시간 바둑만 공부하는 알파고를 이세돌이 한번이라도 이긴 것에 대해서는 구글측에서도 당황을 금치 못했다.  바둑 역사에 남을 ‘신의 한 수’로 평가받으며 알파고에 결정타가 된 4국에서의 이세돌의 78수는 지력과 노력의 결과임은 분명하다. 그는 3패 후에도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며 전혀 좌절하지 않고 동료들과 밤을 새워 반격을 준비했다. 연이은 패배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패배를 통해 배우며 철옹성 같던 알파고의 약점을 분석해서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그것은 ‘인간의 승리’였다. 불굴의 도전정신이야말로 인류의 소중한 덕목이며 오늘날 알파고를 만든 원동력일 것이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을 계기로, 인공지능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 부쩍 늘고 있다. 지난달 100년 만에 실체가 확인된 아인슈타인의 중력파에 대중의 큰 관심이 쏠렸다. 과학계는 중력파에 이어 알파고까지 과학 이슈가 대박을 터트리자 한껏 고무된 모습이다. 상대성 이론과 중력파 등 어려운 물리 이론을 대중매체가 집중 보도하면서, 평소 딱딱하게만 느껴지던 과학이 성큼 대중 속으로 다가서고 있다. 이번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은 각자의 패배를 통해 인공지능의 현재와 미래, 긍정과 부정 등 다양한 과학적 시각을 제시했다. 세기의 대결에 그칠지, 과학기술 발전의 새로운 기회가 될지 진정한 승부는 지금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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