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경은 단정적으로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약3:2). 말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침묵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든 친구든 어느 자리에서든 우리는 말을 한다. 하지만 대화라는 것이 항상 좋은 분위기에서만 펼쳐지지 않는다. 어떤 때는 상대방이 한 말이 상처가 되어 원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또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제3자에 대한 비난이나 인신 공격을 하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그러면 괜히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뛰기도 한다. 남의 말을 듣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내가 한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미 입 밖으로 나온 것을 주어 담을 수 없어서 후회를 하기도 한다. 너무 말을 많이 해서 후회하기도 한다. 돌아서서 잘했다고 하는 말보다 오히려 후회하는 말들이 많다. 한 번 던진 말은 어디든지 날라간다. 들은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나중에는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다시 큰 상처로 돌아올 때도 있다. “말은 한 번 밖으로 나오면 당신의 상전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말은 더 이상 내 말이 아니다. 입 안에 있을 때는 얼마든지 조절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 결국 나에게서 나온 말은 나의 주변을 돌고 나를 감싸기도 하고 나를 궁지에 몰기도 하는 상전 노릇을 하는 것이다. 말이란 밖으로 나오면서 바로 내 자신의 상전으로 군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이 입 밖으로 나온 후에 후회한 들 아무 소용이 없다. 말을 한 후에 돌아서서 후회할 말들을 미리 알고 조심하는 방법 밖에 없다.

         돌아서서 후회할 수 밖에 없는 말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 하는 말이다. 어떤 일이든 무작정 반대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편은 오래도록 생각한 끝에 모처럼 하는 말이다. 그런데 즉흥적인 판단으로 반대를 한다. “아니죠.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몹시 불쾌해진다.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자기의 의견을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말을 하는 도중 상처를 입은 사람은 그 모임 자체를 멀리하게 된다. 결국 그 부담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상대방의 주장이나 의견을 아예 듣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공격하듯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도대체 그런 발상이 어디서 나오는 거죠?” 이렇게 말을 하면 감정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이것은 의견 교환이 아니다. 멱살을 잡고 싸울 준비를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밀고 나가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글쎄 그것보다는 이것이 훨씬 좋다니까요. 그건 이미 다 해본 것입니다.”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는 고집불통과는 더 이상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처럼 자기 의견을 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말을 끝내자마자 반대에 부딪치면 화가 난다. 반대를 한 사람과 더 이상 나눔도 깊은 교제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자주 관계가 끊어지고 나를 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반대만 하지는 않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돌아서서 후회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지나치게 상대방의 동정을 구하는 말도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상대방에게 동정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사랑과 격려의 눈길이 필요하다.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솔직하게 호소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자세는 지금의 힘든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나친 겸손이나 연민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상대방도 거북스러워할 것이다. 상황이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아주 어렵다. 아무 것도 없다”라는 표현을 자주하면 듣는 사람은 그만큼 불편해진다. 자꾸 피하려고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2-13). 사실 내 이야기를 다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이미 아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당당해야 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도움도 격려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세 번째 돌아서서 후회하는 말은 잘난 척하는 말이다. 사람들이 대화 중에 자주 저지르는 실수가 상대방의 사소한 실언이나 단점을 덮어주는 대신 자신의 우월감을 돋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말이나 행동이 상대방을 위해서라고 항변도 한다. 하지만 자기 만족 때문이다. 정작 많이 아는 사람은 결코 말로 떠들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을 추켜 세워준다. 잘난 척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결코 얻을 수가 없다. 말을 해놓고 돌아서서 가장 후회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내가 너무 내 자랑을 하지 않았나? 혹시 잘난 척을 한 것은 아닐까?’이다. 특히 자랑거리가 자신에 관한 것보다 가족이나 친구, 친척, 이웃에게로 확대될수록 더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만다. 자랑이나 잘난 척보다는 내 아픔이나 실수했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네 번째 상대방을 지나치게 판단하는 말도 돌아서서 후회하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할 때 그 내용이나 의도를 신중하게 관찰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근거로 쉽게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어떤 말이나 행동에 대한 판단은 아주 신중해야 한다.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에 어느 젊은 아빠가 어린 딸을 데리고 올라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아빠는 그 아이를 달래 생각도 하지 않았다. 참다 못한 승객들이 아빠에게 항의를 했다. 그러자 아빠는 이렇게 말을 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지금 딸 아이를 달랠 기운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조금 전 기차를 탄 마을에 아이 엄마를 장사 지내고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들은 승객들은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오히려 아기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 기차에 탄 부인들이 그 아이를 번갈아 가며 돌보아 주었다. 무엇보다도 상대방 입장을 알기 전까지는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좋다. 쉽게 판단을 해서 결론을 내리면 후회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돌아서서 후회하는 말은 상대방의 말꼬리를 자르는 말이다. 만약 상대방에게 아주 나쁜 인상을 주고 싶다면 그가 말하는 도중에 무작정 끼어들면 된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말하는 도중 수 차례 반복을 하면 효과는 아주 클 것이다. 대화 도중 너무 쉽게 실수를 하는 것이 다른 사람 말을 도중에 자르는 것이다. 그 말은 상대방의 말에 경청하는 않는다는 뜻이다. 내가 할 말만을 생각한다. 언제 내 말을 할 것인가를 준비하고 있다. 남의 말을 들어줄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나도 말하고 싶다”는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다. 더구나 들어야 할 말이 지루하고 관심이 없는 이야기라면 그런 유혹은 더욱 강해진다. 상대가 이야기 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중간에 끼어드는 것은 자기 이야기가 더 재미있고 훌륭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도 자신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을 하고 난 다음 돌아서서 후회할 말은 처음부터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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