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새누리당의 참패다.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을 눌렀다. 이건 보통 현상이 아니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의 최초의 패전이면서도, 16년 만에 열리는 여소야대(與小野大)로서 일종의 선거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4·13 총선 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두 야당은 정부·여당을 견제하는 수준을 넘어 입법권을 행사해 나라를 끌고 갈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을 얻었다. 국민은 여당을 심판하는 동시에 두 야당에 국가 경영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안긴 것이다. 투표 전날까지만 해도 신문, TV 모두가 새누리당이 최소 145석에서 175석을 확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개표결과는 이변이었다. 더민주당도 이와 같은 결과에 놀랐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제19대 총선에서 얻었던 152석보다 30석이나 줄어든 122석을 얻었다. 과반에서 한참 미달됨은 물론 123석의 더민주당에 원내 1당 자리도 내주면서, 이번에는 야 3당에 비해 45석이나 부족하다. 무소속 영입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재외국민들의 선택도 새누리당을 빗겨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4일까지 113개국 198곳에서 실시된 재외국민 투표 결과 등록 유권자 15만4217명 중 6만3797명이 참여해 투표율이 41.4%를 기록했다. 주요 국가별 투표율을 살펴보면 미국 36.8%, 중국 38.3%, 일본 27.6% 순으로, 이번 총선에 투표한 재외유권자 중 60%가 더민주당 후보를 찍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한국내 표심보다 훨씬 준엄한 잣대로 집권 여당을 견제하고 야당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총선 기간 동안 더민주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심판론, 새누리는 발목만 잡는 야당 심판론, 국민의 당은 싸움만 하는 양당 심판론을 내걸었다. 그런데 국민은 박근혜 정권을 심판한 것 같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의 참패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까. 사실 문재인과 안철수 등 야권이 분열되어 표가 쪼개질 것이라는 생각이 대세를 이루었기 때문에 새누리가 다소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문재인에 대한 호남세의 거부반응으로 더민주가 수도권에서도 새누리에 참패하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분석마저 먹혀들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더민주에서 안철수의 국민의 당을 지지한 표가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고, 새누리를 지지하던 젊은 층이 안철수를 지지한 것이다. 또, 보수 장년층에서 새누리의 후보 공천 과정에서 실망이 커지자 투표를 기권하거나 마음이 돌아선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자신들이 찍지 않아도 야권분열로 새누리의 승리가 명확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새누리는 이번 총선에 패하면서 보수세력 결집에 실패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이 더민주가 잘해서, 김종인이 믿음직스러워서 지지한 것은 아니다. 표심이 야당 중에서도 특히 더민주당 후보에게 쏠린 것은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을 저지하고 제1야당에 힘을 실어주려는 ‘전략 투표’에 따른 것이다. 국민들이 안정보다 견제를 택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새누리의 대패는 누구의 책임인가. 김무성 대표 아니면 이한구 공천위원장일까. 이 두사람을 향한 심판론이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지만 이들은 결국 새누리당의 소속된 정치인일 뿐이다. 따라서 선거참패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고 보는게 맞다. 박 대통령이 인심을 잃은 것이다. 부산에서 더민주당의 후보가 5명이나 당선된 것은 영남에서도 반 박근혜 정서가 일어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박근혜 키즈’ 라고 불리던 부산의 손수조마저 선거사무소 대형 플래카드에서 박 대통령의 이름과 사진을 뺐고, 대구 수성갑 김문수 후보 측도 고심 끝에 현수막에서 박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뺐을 정도다.

        이번 총선에서 스타로 떠오른 인물은 국민의당의 안철수다. 녹색바람을 타고 하루아침에 호남의 맹주로 떠오른 것이다. 그가 호남의 맹주가 되었다는 것은 좀 어울리지 않지만 좌우간 그는 제3당 구축에 성공해 캐스팅 보트를 쥠으로써 정국을 리드하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포지션을 마련해 대선주자의 터를 닦아 놓았다. 총선 후 김종인 더민주 대표는 “민심을 받들어 더민주를 수권(受權) 정당으로 만들고 최적의 대선 후보를 만들어 유능한 정부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캐스팅 보트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정치와 정책을 주도하는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과거와는 다른 정치를 해보겠다는 각오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정치인들의 사탕발림에 한두번 속은 것이 아니기에 잘 지켜봐야 한다. 앞으로 두 야당이 정말 과거와 다른 정치를 하고 싶다면 우선 사사건건 반대하며 정부·여당의 발목부터 잡고 보는 무책임한 정쟁 체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북의 핵실험으로 안보가 위협받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사회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 두 야당은 이런 현안들에 대해 정부 대책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으로 역할이 끝난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대화를 통해 국정을 끌고 갈 일차적 책임은 정부와 여당에 있다. 하지만 의회 권력의 중심축은 두 야당에 넘겨졌다. 국회 선진화법이 위헌 결정을 받을 경우 두 야당이 손을 잡으면 언제든 새 법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법을 통과시켜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어떤 법도 발효될 수 없다. 두 야당 역시 정부·여당의 협조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두 야당이 국정의 공동 경영인으로서 주인 의식을 갖고 제대로 된 처방을 내놓는지는 내년 대선에서 국민이 냉정하게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이번 참패가 야당과의 대화를 통해 소통하고 정치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번에는 정당도, 미디어도 제대로 민심을 읽지 못했다. 하지만 민심은 늘 정치를 지켜보고 있다. 재외 국민들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는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이상 한국의 정치를 주시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관심만큼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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