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 내에서는 20달러 지폐의 얼굴을 바꾸는 것이 큰 화제가 되었다. 연방 재무부는 오는 2020년을 기해 지금의 앤드류 잭슨 7대 대통령 얼굴을 뒷면으로 옮기고 노예해방 운동가였던 흑인 여성 해리엇 터브먼의 얼굴을 앞면에 담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백인남성 일색인 달러 지폐에 여성이, 그것도 흑인이 등장하는 것은 ‘역사적’ 사건이 될 수 밖에 없다. 미국 화폐 가운데 1달러짜리 기념 동전에 여성이 등장한 적은 있지만 일상적으로 늘 쓰이는 지폐에 등장하는 것은 처음이고, 더구나 흑인 얼굴은 건국 이후 처음이다.

       상징성 또한 크다. 잭슨은 백인우월주의자로서, 터브먼은 흑인노예였기 때문이다. 잭슨은 인디언 토벌영웅이자 흑인노예를 부려 부를 축적한 농장주였다. 노예로 태어나 노예해방에 앞장 선 여성이 노예소유주를 밀쳐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역사적 발전을 상징한다. 재무부는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 보장 100주년이 되는 2020년 발행을 목표로 10달러권에 들어갈 여성 모델을 물색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여성단체들의 투표에서 터브먼이 가장 적합한 인물로 선정되었다. 즉 원래는 10달러 지폐의 모델인 알렉산더 해밀턴 초대 재무장관 대신 여성 모델을 넣을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해밀턴을 주인공으로 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2016년 퓰리처상까지 수상하게 되자 재무부는 해밀턴은 계속 10달러 모델로 두고 대신 미국 인디언들을 탄압한 전력이 있는 20달러 지폐의 모델 잭슨 전 대통령을 퇴출시키기로 계획을 변경하게 되었다. 그런데 찢어지게 가난해서 돈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던 해리엇 터브먼이 죽어서 지폐의 얼굴이 되니 참 아이러니하다. 아라민타 로스라는 본명을 가지고 노예로 태어난 터브먼은 1850~1860년 사이에 ‘지하철도’라는 반노예 운동 네트워크를 통해 노예해방 시설을 설립했고, 수천 명의 남부 흑인 노예들을 북부로 탈출시켜 자유인이 되게 만든 ‘노예들의 모세’였다. 당시 노예 탈출을 주도한 비밀조직의 리더였던 퀘이커 교도 토마스 게렛은 “터브먼이 백인여성이었다면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여성으로 칭송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1820년대 초 매릴랜드에서 태어난 터브먼은 노예로 살다가 20대 후반에 ‘지하철도’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필라델피아에 도착해 자유의 몸이 된 그는 숨 쉬는 공기마저 맛이 다른 자유를 혼자 편하게 누릴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가족들을 데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문제였다. 그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호텔에서 일하며 경비가 마련될 때마다 매릴랜드로 내려가 부모형제를 비롯, 노예들을 탈출시키기를 13번이나 했다. 한번 경비를 모으려면 수개월이 걸리니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쓸 수가 없었다. 남북전쟁이 터지자 그는 북군에 합류했다. 간호사로, 조리사로 일하고, 정찰병이나 정보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노예는 해방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돈이 필요했다. 자유인이 된 노예들,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을 돌보느라 항상 돈에 쪼들렸다. 은퇴 후 그가 받은 연금은 월 8달러. 남북전쟁 참전용사였던 남편 사망 후에는 배우자 자격으로 약간의 연금을 더 받았다. 터브먼은 자신이 북군 소속으로 일한 데 대한 연금신청도 했다. 수년 걸려 겨우 나온 돈을 합친 연금은 월 20달러, 이제 그의 얼굴이 새겨질 지폐의 액수다. 하지만 20달러 지폐에 흑인여성 얼굴이 들어간다고 당장 평등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의 장벽이 좀 낮아지는 것, 경제적 불평등이 해소되는 것이다. 지난 주말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는 부에 따른 계층화가 심해지면서 기업들이 부자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를 공항, 여객선, 놀이공원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노르웨이 크루즈 라인에는 4천200명의 승객 중 275명이 이른바 ‘안식처’(Haven)에 여행 내내 머문다. ‘배 안의 배’로 불리는 안식처에는 일반 승객의 출입이 금지되며 별도 수영장과 식당 등이 있다. 안식처 승객은 골드 키를 가지고 있어 공연을 볼 때도 가장 좋은 자리에서 즐길 수 있으며, 항구에 돌아왔을 때도 다른 승객보다 먼저 내린다. 놀이공원인 디즈니월드는 지난달부터 일반 승객의 방문이 끝난 이후에도 특별 손님만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 일반 개장 시간의 혼잡을 피해 여유롭게 즐기려고 기꺼이 비싼 요금을 지불하는 부자들이 주고객층이다.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는 1천800달러를 내면 줄을 서지 않고 출국 수속을 밟을 수 있다.

       캘리포니아의 대표적 부촌인 벨에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그곳에 갈 기회가 없기 때문에 그 으리으리한 동네 구경을 할 일도 없다. 소득에 기준해 끼리끼리 모여 살다보니 소득 하위 ‘99%’가 최상위 ‘1%’와 자기 동네에서 마주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법보다 강력한 ‘집값’이라는 장벽 앞에서 거주 이전의 자유는 의미가 없다. ‘돈’의 허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다녀온 멕시코 칸쿤에서도 느낀 부분이다. 최고급 리조트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웨이터는 하루에 1달러를 호텔로부터 받는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주는 팁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런 팁도 요즘에는 기꺼이 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했다. 관광객의 절반이 미국인일 정도로 칸쿤은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이다. 관광객들은 수천불 들여 먹고, 자고, 마시고 종일 마음껏 즐기지만, 관광객들의 세세한 기분까지 맞춰야 하는 웨이터들은 하루에 달랑 1불만을 보장받고 있었다. 빈부의 격차가 너무나 확연한 곳이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평등이 진짜 평등이 되려면 경제적 평등이 필수라고 말했다. 식당에 인종차별이 없다고 해도 햄버거와 커피 한잔 살 돈이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터브만도 돈이 있어야 자유를 살 수 있다는 현실을 알았다. 노예로 살다가 탈출해 노예 해방에 평생을 바친 그녀가 이제 20달러의 지폐 속에 자리잡는다고 하니, 백인과 남성 우월주의가 팽배해져 있던 미국의 달러에도 분명 새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 개혁의 바람이 저소득층 가구들에도 골고루 스며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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