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016년) 미국 동부지역을 다녀왔습니다. 워싱턴DC, 메릴랜드, 뉴저지, 뉴욕, 린치버그 그리고 버지니아 비치를 들렸습니다. 에콰도르에서 신학대학원을 세우기 위한 준비 여행이었습니다. 학위수여, 강사 모집, 수업 방법 그리고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일 등을 상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워싱턴까지는 비행기를 이용했습니다. 렌터카를 사용해서 여러 도시들을 다녔습니다. 하루 평균 2가정을 만나는 10일간의 강행군이었습니다. 강행군을 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성과주의’가 깔려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덴버에서 ‘포근한 교회’를 개척하고 4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심각한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인물도 훤하고, 설교도 잘하고, 성품도 좋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교회가 성장하지 않소? 하나님과 당신만 아는 죄가 있는 것 같소! 지금 사실대로 고백하시오!” ‘포근한 교회’를 12년 9개월간 목회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성공적인 목회’를 하지 못했습니다. 친구 목사님들 중에는 작게는 100여명 많게는 6,000여명이 출석하는 ‘성공적인 목회’를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친척 중 한 분은 저에게 ‘목사질 그만하고 사업이나 하라!’는 분도 계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목회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그래야 전도하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교회는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활발한 대화(부부싸움)’를 할 때 아내가 “목회를 죽 쑤어놓고…….”라고 한 마디 하면 즉시 상황이 끝나버립니다. 성과주의에 빠져있으면 목회의 과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과가 있어야 합니다. 일단 성도가 많아야 합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목회해도 성과가 없으면 실패자로 여깁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변치 않도록 기도하고 노력해 왔습니다. 성도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성도)숫자에 대해 초연해야겠다고 노력해왔고 초연해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비교될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 있게 되면 마음이 다시 우울해 졌습니다. 교단 목회부에서 주관하는 ‘목회자 부부세미나’가 2014년 2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습니다. 규모가 작은 교회를 목회하시는 목회자 부부를 초청해서 목회 노하우를 나누고 격려하는 성격의 세미나였습니다. 목사님이 80여분 사모님이 50여분 참석하셨습니다. 주 강사 한분 다섯 분의 세션(Session)강사로 강사진이 구성되었는데, 세분의 강사님들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참석하시지 못했습니다. 졸지에 제가 대타로 강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미나 참석 전에 하나님께서 숫자(성공신화)를 벗어나는 체험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마치 체증으로 고생하다가 펑 뚫리는 것 같은 체험이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느끼는 체험이 아니라 피부 적으로 느끼는 체험이었습니다. 시원했습니다. 강의할 때 자유 함을 느꼈습니다. 많은 분들이 위로를 받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교민구역을 담당(2000년)했습니다. 그 분들에게 지금도 설교 CD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격주로 200여 장의 전도지를 인쇄하고 70여장의 CD(설교 2편)를 제작하여 우송해 왔습니다. 한 달에 200불정도 우송료가 들었습니다. 과연 계속 우송해야할 가치가 있는 지 궁금했습니다. 린치버그에 들렸을 때 꼭 만나보고 싶은 분들 중에 한 분이 안경애 권사님입니다. 안 권사님 댁에 들렸습니다. 남편 이영희 장로님(89세)과 따님 그리고 안 권사님과 앞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장로님은 운전도 못하시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유일하게 외부와 연결되는 것은 제가 보내드리는 주보(전도지)와 설교CD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주일이 되면 제가 보내드린 주보를 보고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하루에 제 설교를 5번 이상 들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일주일 동안에 제 설교를 30번 이상 듣게 되어 설교를 다 외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집을 청소하면서 CD를 다 버려서 너무 안타깝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제발 부탁이니 지난 설교CD가 있으면 ‘하나’라도 좋으니 꼭 보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셨습니다. 듣기에 좋으면서도 쑥스러운 말씀도 하셨습니다. 제가 제일 훌륭한 목사라고 추겨주셨습니다. ‘죽을 쑨 목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아닌가? 라고 저에게 좋은 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내도 많은 위로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바쁜 일정이었지만 이 장로님 댁을 방문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요즈음 교회들도 세상적인 가치관에 깊이 젖은 것 같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성과주의’라고 봅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 전력질주를 합니다.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쉬지 못하게 합니다. 쪼가리 시간도 아껴서 성과를 내려고 합니다. 결국 쓰러질 때까지 달립니다. 쉬어야 할 시간에 쉬어도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하나님 앞에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일하지 않는 시간이 조금만 있어도 안절부절못합니다. 한 철학자는 이러한 사회를 ‘피로 사회’라 불렀습니다. ‘피로 사회’를 벗어나는 길은 ‘심심하게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할 수 있다!’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하지 않겠다!’는 것이 ‘피로 사회’를 극복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의 뜻은 ‘그만 둔다!’는 것입니다. 즉 ‘목적 지향적 행위’에서 해방되는 날입니다. 식탁에서 목적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초조하지 않는, 나아가 일상적인 대화를 즐길 수 있다면 ‘진정한 성공자’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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