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본 미쓰비시(三菱) 머티리얼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동에 동원된 3000명 이상의 중국인 피해자들에게 사죄금을 지급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미쓰비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연행돼 노동력을 착취당한 중국인들에게 ‘사죄’를 표명하면서 피해자 1인당 10만위안(약 1805만원)을 지급하는 화해안에 서명했다. 교도통신은 이 돈을 ‘보상금’으로 표현했고, 아사히신문은 ‘사죄금’으로 평가했다. 이번 화해안은 중국인 피해자 3765명에게 적용되며 총보상금은 한화로 752억원 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쓰비시는 “중국인 노동자의 인권이 침해된 역사적 사실을 성실하게 인정한다”고 밝히고 피해자와 유족에게 ‘통절한 반성’과 ‘심심한 사죄’를 전했다. 미쓰비시는 개인 보상금 외에 기념비 건립비 1억엔(약 10억7000만원)과 실종된 피해자 조사비 2억엔도 각각 내기로 했다. 전후 최대규모이다. 이번 화해는 전후 배상과 관련한 일본 정부 입장을 떠나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피해자들과 합의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일본 정부는 ‘1972년 중·일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 측은 국가 대 국가 뿐만 아니라 개인의 배상 청구권도 포기했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에 일본 최고재판소인 대법원도 중국인 피해자들이 미쓰비시 등에 대해 제기한 배상청구를 인정하지 않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 이번 화해는 최고재판소가 배상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던 중국인 피해자에게 민간기업이 자발적으로 사죄하고 금전보상에 응한 역사적 합의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미쓰비시는 식민지 시기 조선인 강제징용은 국제노동기구가 금지한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으며 ‘한국인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한일협정에 의해 종결됐다’는 일본정부 입장을 따르겠다는 입장이어서 한국의 심정은 불편하기 그지 없다. 이미 한국인 피해자 5명이 미쓰비시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청구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미쓰비시와 중국 피해자들간의 화해로 인해 한국인 징용자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도의적 책임론은 또다시 도마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협상에서 중국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지만, 중국인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소송을 할 때 중국 외교부가 외교부 성명을 내서 강도높게 일본 정부에게 배상하라고 수차례 성명을 낸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외교부의 그간의 행보와는 사뭇 큰 차이를 보인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배상판결을 얻었을 때 우리 외교부는 이것은 개인과 일본 기업간의 사적인 소송이고 이 사적인 소송에 대해서 정부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견지했었다. 정신대 할머니들의 문제가 결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소송이 어째서 사적인 소송이라고 치부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중국 정부가 외교부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와 기업에게 배상을 촉구한 반면 우리 외교부는 개인사라고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

        사실 미쓰비시와 중국의 보상합의는 한국 케이스가 시발점이었다. 2012년 5월에 한국의 대법원이 일제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서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고 하는 파기환송 사건이 있었다. 그것에 용기를 얻어서 그동안 잠잠해 있던 중국인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국에서도 저런 소송이 있었으니까 우리도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자면서 소송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미쓰비시가 협상에 나선 것이었다. 그리고 소송없이 중국인 피해자 모임과 미쓰비시 측은 바로 협상에 들어갔다. 중국 피해자들은 소송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타결이 된 반면, 지금 한국은 이미 배상명령이 수차례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진척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피해자들을 위해 힘써온 중국의 단체들은 미쓰비시가 전달한 사죄문과 보상금에는 만족하지 않지만, 생존자들이 고령인 점과 생전에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피해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화해안을 받아 들이기로 한 것이다. 일본에 의해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140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주로 탄광이나 금속광산, 토건공사, 군수공장에서 가혹한 노동조건 아래 혹사를 당했다. 1944년에는 ‘여자정신대근무령’를 발표해 12세에서 40세까지의 여성 수십만명을 강제징집해 군수공장에서 일하거나 군대 위안부로 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공사후 기밀유지를 이유로 집단 학살을 당한 경우도 있었는데, 평양 미림 비행자 노동자 8백여명, 지시마열도 노동자 5천여명이 집단학살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1990년 일본정부는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이 66만7천48명으로 공식발표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까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미쓰비시는 미국, 호주, 중국 강제 노동자들에게는 화해와 보상을 약속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번에도 한국을 외면했다. 전세계가 전범 일본의 만행을 알고 있고, 가장 고통받았던 한국의 처지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열세살 소녀를 끌고 가 강제노역을 시킨 최악의 전범기업으로 꼽히는 미쓰비시는 항공, 전자, 부동산, 중공업, 자동차, 니콘 등 60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재벌그룹이다. 일본의 상징적인 기업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기업 중 하나이다. 얼마전 한국의 배우 송혜교씨는 이런 미쓰비시가 전범기업으로 아직 책임있는 행동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광고를 거절해서 화제가 되었다. 요즘은 연예인의 파워가 정부의 힘보다 그 효력이 클 때가 많음을 볼 때 송씨의 이런 결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탄광으로, 조선소로 미쓰비시에 강제징용된 한국인 피해자는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일본은 이들에게 여전히 사죄하는 법을 모르고 있다. 아니 그들은 알고 있다. 단지 한국인에게만 사과하는 법을 모를 뿐이다. 한국만 만만하게 본 미쓰비시를 위해 무엇으로 되갚아주어야 할까 고민해 봐야 한다. 그리고 미쓰비시는 빠른 시일 내에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도 적극적인 답변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의 강력한 성명이 우선되어야 하며, 해외 동포들 또한 언제 어디서나 한명한명이 대한민국의 대변인임을 잊지 말고, 생활속에서 미쓰비시 제품 불매운동이라도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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