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브렉시트(Brexit)이다. Britain과 Exit 의 합성어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일컫는 말인데,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일컫는 그렉시트(Grexit)에서 따온 단어다. 영국 브렉시트의 1등 주범은 역설적으로 캐머런 총리가 되었다. EU 잔류를 호소한 그가 브렉시트를 현실로 만든 장본인이 된 것은 해서는 안 될 국민투표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순진하게도 영국 국민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캐머런의 이 오판은 21세기 최악의 정치적 판단으로 남게 되었다.

        브렉시트의 뿌리는 빈부 격차다. 저소득, 저학력층이 압도적으로 EU 탈퇴를 지지했다. ‘EU가 내게 해준 게 뭐냐’는 불만이 브렉시트를 통해 폭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영국은 왜 EU에서 탈퇴하려고 했을까. 첫번째 이유는 부담금이었다. EU 회원국은 공동 정부 운영을 위해 경제 규모에 따라 부담금을 내는데, 영국의 부담금은 49억 유로로 독일, 프랑스에 이어 3번째로 많다. 반면에 영국이 EU로부터 받는 예산 규모는 회원국 중 12번째로, 독일, 프랑스와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즉 내기는 많이 내는데 정작 받는게 적으니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었다. 두번째는 EU와 한몸이 되면서 동유럽 이주민이 늘었고 그 결과 영국인들의 실업률이 높아졌다. 여기에다 최근엔 시리아 난문 문제와 이슬람국가 테러위협도 커지면서 악재가 겹쳤다. 다시 말하자면, 자유무역의 단물이 국민들에게 골고루 퍼지는 게 아니라 소수에게만 돌아가는 현실, 그리고 문호 개방으로 인해 지금까지 몰려들어왔고 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몰려들 이민자들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사실 EU를 탈퇴하려고 했던 나라가 영국뿐만은 아니었다. 지난해 재정위기를 맞은 그리스가 만기가 돌아온 국채를 갚지 못하면서 EU가 구조조정을 전제로 구제금융안을 제안했지만 국민들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자 이 또한 국민투표에 부쳐진 적이 있었다. 그리스 국민들은 EU가 제시한 구제안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스 국민의 61%가 탈퇴를 반대했고, EU 또한 한발 양보해 새로운 구제금융안을 제시하면서 그렉시트는 실현되지 못했다. 브렉시트와 그렉시트는 상황만 놓고 본다면 비슷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성격은 판이하다. 그리스는 EU로부터 도움을 받아야하는 상황이었고, 영국은 상대적으로 EU에 기여하는 바가 컸다.

         그러나 영국의 EU 탈퇴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영국 경제 자체에도 악재라는 의견이 대세이다. 영국은 EU 탈퇴로 인해 관세와 각종 규제가 전혀 없던 EU내 무역에서 뿐만 아니라, EU가 세계 각국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에서도 제외되기 때문이다. 또, 수입물가는 오르고 수출량은 줄 수 밖에 없으며 경제 성장률의 하락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3~5년 동안 영국 경제는 투자 감소로 인한 충격도 받을 것이다. EU 탈퇴 절차와 관련된 불확실한 상황 때문에 기업들이 영국에 대한 투자 결정을 늦추고, 외국인 직접투자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EU에도 심각한 문제가 예상된다. EU는 출발부터 불완전했다. 개별 국가가 처한 상황이 각자 다른데 단일 통화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회원국 하나가 탈퇴하면 불만을 가진 다른 국가들이 줄줄이 탈퇴할 수 있다. 그래서 지난해 EU가 한발 물러서 그리스의 탈퇴, 즉 그렉시트를 막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가 아닌 EU의 주축국인 영국이 탈퇴를 하게 되었으니, EU측으로서는 난감할 수 밖에 없다. 영국이 탈퇴하자마자 당장 EU의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는 등 EU도 타격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게 되었다.
영국의 탈퇴는 한국에도 악재이다. 특히 금융시장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영국 자금은 한국 주식 시장의 큰손 중의 하나이다. 올 상반기 영국이 사들인 한국 주식의 규모는 4200억원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는 전체 외국인 자금의 15%를 차지한다.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상 영국 자금 뿐만 아니라 아일랜드, 네덜란드 같이 영국과 밀접한 유럽 자금도 본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지면서 주식 시장의 급락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출에도 좋을 건 없다. 한국은 영국의 FTA 체결국 중 수입 규모가 4번째로 크다. 영국이 한국 물건을 그만큼 많이 수입한다는 얘기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영국은 무역흑자국인데, 브렉시트로 관세가 생기면 득보다 실이 클 수밖에 없다. 

        영국의 캐머런 총리는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EU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지난 23일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잔류가 48%, 탈퇴가 52%로, 결국 탈퇴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영국은 탈퇴를 결정해놓고도 스스로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잘사는 사람보다 못사는 영국인들, 실업자 영국인들, 소득 양극화로 절망에 휩싸인 영국인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는 타당하다. 그리고 정치권이 그런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것도 타당하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선택한 브렉시트는 결국 영국 경제를 위축시킬 것이고, 경제가 위축되면 이민자가 더이상 유입되지 않더라도 일자리가 늘지 않을 것이다. 그 피해는 누가 볼까? 당연히 잘사는 소수가 아니라 위에 언급한 모든 사람들, 브렉시트에 표를 던진 사람들이다. 이번 국민투표 결과에 실망한 스코트랜드와 북아일랜드도 EU 잔류를 위해 독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 해체되고 대영국(Great Britain)이 소잉글랜드(Little England)로 축소될 위기에 놓여있다. 혹자는 영국 국민의 이번 결정을 대영제국이 몰락하는 분기점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국의 몰락보다는 포퓰리스트들의 승리, 다시 말해서 영국 정치의 몰락으로 보는 편이 옳다. 국민투표로 탈퇴 결정을 내린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400만 명에 육박하는 국민들이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하는 자조 섞인 한탄에 서명한 것이 그 증거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보수당마저 중립을 선언한 사실도, 그동안 영국의 각 정당들이 브렉시트를 얼마나 우려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제아무리 과거 대영제국이라 하더라도, 경제선진국 모두가 참여하고 있는 세계화를 혼자 거부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지금으로 봐서는 대세는 전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브렉시트 결정은 ‘도끼로 제 발등 찍기’ 격이다. 이제 영국민들은 탈퇴 캠페인 당시 공식 케치프레이즈였던 ‘Vote Leave’를 버리고 잔류 캠페인이었던 ‘Britain Stronger in Europe’으로 갈아타려 하고 있다. 성질난다고 우루루 들고 일어났던 것이 후회막급인 모양새라서, 브렉시트의 여정은 아직도 멀고 험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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