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는 위대하다!’ 뒷마당에 있는 텃밭을 가꾸다 보면 절로 그런 말이 나옵니다. 몇일만 소홀해도 채소 틈새로 얼마나 많은 잡풀들이 가지가지 솟아오르는지요. 뽑고 또 뽑고 허리가 아프도록 뽑아대도 ‘아무리 뽑아봐라. 나는 나오리라!’ 조롱하듯이 잡초는 오늘도 또 솟아오릅니다. 도대체 밤사이 누가 잡초 씨를 이렇게 뿌려대는 걸까? 어떤 악한 존재를 향해 분개 해보지만, 내 마음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마음 밭도 한순간만 소홀히 하면 잡초가 금방 솟아오르지요.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마15:18-20)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깨트리고 더럽히는 소위 ‘카더라’도 다 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어쨌든 땅은 무엇이든 올라오도록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창1:11) 명하셨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땅은 무엇이든 올라오는 속성이 있는데, 그것을 관리하는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하면서 모든 창조물의 존재감이 동시에 떨어지고 그 떨어진 틈 사이로 악한 존재(사탄마귀)가 활동하는 것이니, 사람으로 말하면 미움, 시기, 질투, 살의, 생존경쟁, 음란 등이고, 동물로 말하면 약육강식이고, 땅으로 말하면 가시덤불과 엉겅퀴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저주(창3장)라고 말씀합니다.

         요즘 연일 테러, 지진, 화산, 홍수, 태풍, 산불, 총격, 부모 자식 간의 반목, 살인, 유기, 자살, 쿠테타, 폭염 등, 비극적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하기야 언제는 희망적인 뉴스가 있었던가요? 세상은 항상 복잡합니다. 내가 복잡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지요. 며칠 전 미국 텍사스에 사는 한 분이 흑인들과 백인경찰의 충돌을 피해 프랑스의 니스 해변으로 휴양을 떠났는데, 바로 그날 니스의 해변에 IS 테러리스트가 트럭을 몰고와 해변에 나와 불꽃놀이를 즐기고 있던 피서객들을 깔아 버렸습니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놀던 어린아이만도 수십 명 죽고 다쳤습니다. 구사일생으로 화를 면한 그분이 TV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하더군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내 마음이 안전하지 않은 이상, 이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불의와 비참함을 보고 묻습니다. ‘전능하고 선하신 하나님이 왜 이런 걸 내버려 두지? 하나님이 있다면 왜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구?’ 이런 질문을 신학적으로는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결론적으로 답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창조적 파괴론! Creative destruction theory!> 파괴해서 새로운 것을 건설한다는 말입니다. 쉬운 예로 이곳 오로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멀쩡한 건물을 다 때려 부숩니다. ‘아니 저 아까운 건물을 왜?’ 처음에는 의아하지만, 몇 년이 지난 후 그곳에 아주 훌륭한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 압니다. ‘아, 더 좋은게 들어섰구나’ 지구 구석구석에 엄청난 재앙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보면 그곳에 정의와 도덕이 살아납니다. 쓰나미로 뒤집어진 바다에는 그동안 쌓인 오염이 사라지고 건강한 새 생명이 넘치게 됩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하와이는 대 화산 폭팔 후 생긴 것입니다. 뒤집어지면서 바다가 살고 땅이 옥토로 변합니다. 성경 요한계시록(종말론)은 그렇게 말씀합니다. 엄청난 파괴(일곱인, 일곱나팔, 일곱대접의 재앙)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온다고... 그것이 바로 <창조적 파괴>입니다. 이 우주는 하나님이 설계해 놓으신 이 질서 속에 관리됩니다. 하늘, 바다, 땅이 ‘안되겠다’ 싶으면 스스로 뒤집어지면서 자가치료(Self-healing)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창조적 파괴입니다. 세상이 어지럽습니까? 하나님이 새 것으로 만드시는 작업입니다. 내가 힘드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고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성경적 질서의식으로 세상과 나의 환난을 보면 됩니다.

         내 마음안의 잡초와 알곡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은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도 저주를 받습니다. 알곡과 쭉정이는 뿌리부터 다르지만, 얼핏 보기에 헷갈릴 정도로 닮았습니다. 누가 줄기만 보고 뿌리를 알겠습니까?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 농부이신 하나님은 일꾼에게 잡초를 베지 말라고 하십니다. 함부로 잡초를 베다가 알곡을 다칠 수 있다구요.(마13:24-30) 좋은 일을 한답시고 함부로 낫을 휘두르면 오히려 악한 자의 뜻이 이루어지게 돕는 결과를 내고 맙니다. ‘자기만의 의로움’으로 가득한 분노를 끌어내 나쁜 것과 함께 좋은 것까지 파괴해 버리도록 하는 것이 바로 악한 자의 의도입니다. 그것이 테러의 배후입니다. 예수님은 잡풀의 저주 속에서도 우리 삶에 알곡을 내는 일을 도와주시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고 불꽃이 다시 살아나도록 사랑으로 복 돋아 주시는 분입니다. 참 농부이신 예수님이 내 마음 밭을 관리해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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