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곳 저곳에서 잭팟이 터졌다는 뉴스가 들린다. 지난주에는 50대 한인 여성이 라스베이거스 호텔 카지노에서 1000만 달러짜리 잭팟을 터트렸다고 한다. 물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귀가 솔깃하기는 하다. 하지만 일년에 극히 운이 좋은 몇 몇을 제외하고는 행운을 얻기는 힘들 뿐 아니라, 그 사람들이 잭팟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 부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현재 미주 코리아 타운에 사는 많은 노인들이 카지노 도박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오죽하면 주류언론에서 한인 노인들의 도박 중독에 대해 대서특필할 정도다. 콜로라도 역시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한인사회의 도박 문제도 만만치 않다. 특히 갈수록 노인들의 병적인 도박증세가 수면으로 부상하고 있어 커뮤니티 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도박은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식상한 얘기거리지만, 도박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인생이 걸린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센츄럴 시티와 블랙 호크에는 매주 5천여 명이 넘는 한국인이 방문하고 있으며 이중 절반이 노인들이라고 한다. 이번 주에는 긴 노동절 연휴가 끼었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을 듯 하다. 

        오로라 한인타운에 살고 있는 김모씨는 남편과 사별 후 혼자 살고 있는 70대 노인이다. 그는 “늘그막에 홀로 지내며 무료한 시간 때우기에 이만한 것도 없다. 이젠 그만 가야지 하는데도 자꾸 발길이 끌린다.”라고 토로한다. 일단 카지노 슬롯머신 앞에 앉기만 하면 영어를 잘 못해도 괜찮고 미국에서 일한 경험이 없어도 상관없다. 몇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첫 카지노 방문 당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짜릿하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은 이후로 김씨는 매주마다 혹은 매일 카지노 순례를 하는 일원이 됐다. 이들 대부분은 투명인간처럼 홀로 사는 저소득층이거나 가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 5만 달러 이상을 카지노에 쏟아부은 사람에게 부여되는 ‘에메랄드 클럽’ 멤버인 김씨는 ‘이제는 그만 가야지’ 하고 서너 주 동안 발길을 끊었다가도 카지노에서 공짜 뷔페 쿠폰 등을 보내오면 속절없이 다시 카지노행 버스에 몸을 싣게 된다. 김씨는 저금통장에 있던 수천 달러도 지난 수년 사이 슬롯머신에 탕진하고 이제는 매달 8백여 달러씩 나오는 사회보장연금 수표와 아들이 가끔 보내주는 용돈으로 간신히 생활한다. 처음에는 잭팟을 좀 터뜨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가물가물하다. 아들에게도 친구에게도 쉬쉬하는 떳떳치 못한 비밀이다. 3년 전 LA 한인타운에서 ‘경로당’으로 불리던 불법도박장들이 적발되었을 때 대다수 고객이던 노인들은 “갈 데 없는 노인들이 모여 소박하게 즐기는 오락”이라며 단속에 항의했었다. 도박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잠깐의 기분전환에 그치지 않는다. 마약 중독 못지않게 강한 것이 도박 중독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도박에 발을 들인 후엔 “돈을 잃으면 빌리고, 또 빌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웰페어를 도박판에서 다 날리고 사채를 얻어 쓰면서 생계를 위협받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고 경찰도 설명한다. “푼돈 쓰는 소일거리”라며 경계심 없이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오로라 한인타운에서도 도박은 매일 일어난다. 카지노를 향하는 사람도 있고, 가정집에 모여 불법 도박을 일삼고 있는 이들도 있다. 심심풀이로 시작했다고 하지만 목소리가 커지고, 몸싸움이 나면서 급기야 경찰이 출동하는 일들이 여러번 있었다. 콜로라도 한인 비즈니스 업계는 벌써 몇 년째 불황이라는 단어를 달고 살지만, 카지노 사업이 날로 번창하는 이유에는 한인들의 협조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씁쓸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망치는 일인 줄 뻔히 알면서 왜 도박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카지노나 경마를 레저로 생각하지 않고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데 그 이유가 있다. 외국인들은 놀이동산에 가는 것처럼 즐기러 카지노를 찾지만, 한인들은 돈을 따려고 달려들다 보니 중독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한국은 언제부터인가 세계 최고 수준의 도박중독 국가가 됐다. 국무총리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도박중독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무려 3백만명이라고 하니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6%는 영국의 2.9%, 캐나다 1.5%, 오스트레일리아 2%와 비교하면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주변에서 도박 때문에 망한 사람들을 망라하라면 밤을 샐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단 주머니에 100달러만 있어도 무조건 그 날은 산에 올라가는 날이라고 정하고 오후 스케줄을 제쳤던 사람을 알고 있다. 얼마 전 그 사람은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갔다. 가지고 있던 모텔, 집을 홀랑 날렸고, 타고 다니던 자동차도 페이먼트를 못해 은행에서 가져갔다. 시계, 반지, 카메라를 잡히면서 카지노를 전전하다가 이제는 아예 알코올 중독자까지 되어버렸다. 이웃에게 못 볼꼴 보여준 사람도 한 둘이 아니다. 나이 들어서 저렇게 산다고 손가락질 받고,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도박에 중독된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중독 과정은 대략 이랬다. 재미 삼아 가끔씩 도박을 시작한다. 흥분을 느낀다. 우연히 대박을 경험한다. 같은 흥분을 얻기 위해 도박 시간이 점점 늘고 거는 돈의 액수가 차차 커진다. 어제 잃었으니 오늘은 딸 것이라고 확신한다. 따고 나면 어제 땄으니 오늘도 딸 것이라고 다른 계산을 한다. 도박을 하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해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다.

         친한 사람들끼리 모이기만 하면 당연한 듯이 화투나 카드를 즐기는 습관 또한 도박문화를 확산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봐야 한다. 치매방지나 소일거리가 없어서 더러 도박장에 간다는 부모의 합리화에는 자식들도 속수무책이다. 도박중독의 피해는 누구에게나 심각하지만 정부보조금에 의존해 빠듯한 삶을 이어가는 노인들에게 그 피해가 특히 심각하다. 지난해 콜로라도 센츄럴시티에서 일하는 한 카지노 직원이 필자에게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그곳을 찾고 있는지 귀띔해준 적이 있다. 대책이 절실하다. ‘소박한 놀이’나 ‘가벼운 기분전환’이 될만한 노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노인센터 등이 늘어나면 노인들이 카지노에 기웃거리지 않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백세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누구나 노인의 세계로 곧 들어가게 될 것이며, 그 세계에 오랫동안 머물러야 한다. 우선 이들의 무료함과 소외감을 이해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뉴라이프교회와 제자교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실버 교육원과 같은 노인들의 취미 생활 프로그램이 번창하는 것을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말년의 패가망신을 초래할 도박의 위험성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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