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스승의 날에는 학생들이 선생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모습을 보기 어려울 듯 싶다. 일명 ‘김영란법’의 제재 대상으로 간주되어, 생화든 조화든 꽃은 한 송이라도 부정청탁금지법에 걸리기 때문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학생이 교사에게 꽃을 건네는 것은 ‘금품 수수’에 해당되며 김영란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교사와 학생은 ‘직접적 업무 관련자’에 해당된다. 따라서 생화는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선물이기 때문에 아무리 스승의 날이라도 교사는 이를 받아선 안 된다는 게 권익위의 해석이다. 돈 주고 산 조화도 마찬가지로 제재 대상이다. 단, 학생들이 만든 종이꽃은 허용된다. 한국에서는 요즘 김영란법으로 떠들썩하다. 지난 9월28일부터 시행된 ‘김영란법’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서 공식적인 약칭은 ‘청탁금지법’이다. 첫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의 이름을 따 ‘김영란법’이라 불리고 있다. 법 적용 대상은 공무원을 비롯해 공공기관·교육기관·언론계 종사자와 배우자까지 400만명이나 된다. 이 법에 따르면 식사비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등으로 접대비 상한액을 명문화했다. 접대골프의 상한선은 1인 5만원을 넘을 수 없다. 만약 이들이 5만원 이상의 선물을 받을 경우 대가성 여부와 상관없이 최대 5배의 과태료가 부과되거나, 최악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는 공직자, 기자, 사립학교 교원 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과잉입법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 말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판결이 내려져 지난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김영란법의 적용 기준 논란은 시행 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김영란법이 부정청탁 없는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순기능은 서서히 느리게 나타날 것이다. 모두 인내하면서 기다릴 가치가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역기능은 빨리 나타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캔커피 1+1 행사를 하기에 사서 우연히 만난 학교 교감 선생님께 드렸더니 ‘내게 사약을 주느냐’고 손사래를 쳤다. 필자의 지인은 작년 결혼할 때 친구에게 축의금 30만원을 받았는데 얼마전 그 친구의 결혼식에 10만원 밖에 줄 수 없다며 미안해했다. 친구의 신랑이 학교 선생님이어서 눈치가 보여 축의금을 10만원만 보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결혼식장에서는 공무원인 신부와 결혼하는 신랑 측 가족들이 축하 화환을 되돌려 보내는 소동이 벌어졌다. 무엇보다도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일이다. 자주 바뀌는 담당 부처 공무원들에게 밥도 사고 술도 사면서 친분관계를 유지하던 것이 관례였던 업계 사람들은 요즘 담당 부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졌다. 공무원들이 “만나지 맙시다. 연락도 하지 마세요”라며 연락자체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외부와 단절된 채 갈라파고스화하던 공무원들은 김영란법을 계기로 한층 더 고립 모드에 들어갔다. 예전처럼 업계 사람을 만나 ‘직무 관련’ 대화를 나누다가 자칫 범법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농가나 식당, 꽃집뿐 아니라 공연 업계도 타격을 입고 있다. 일부 공연 업체는 20만~30만원씩 하는 관람권 가격을 김영란법 선물 상한액인 5만원 이하로 낮춘 이른바 ‘영란 티켓’을 내놓고 있다. 오는 12월 세계적 지휘자인 마리스 얀손스가 이끄는 독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내한공연을 개최하는 기획사 ‘빈체로’는 최고 30만원인 2층 좌석 전체를 2만5000원짜리로 낮춰 팔았다. 부정 청탁 금지법의 불똥은 군(軍) 장병들에게도 튀었다. 휴가 나온 군인들에게 무료 이용 혜택을 제공해왔던 에버랜드가 김영란법에 저촉될 수 있다며 이를 잠정 중단한 것이다. 김영란법 실시 이후 가장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것은 단연 골프접대이다. 식사비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의 상한선을 놓고 볼 때 접대골프가 비용 면에서 가장 주목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골프는 사교적 목적이 주가 되지만 때론 민원이나 청탁의 자리가 되기도 한다. 주말골프 비용은 통상 100만원을 상회한다. 4명이 18홀 정규코스를 라운딩할 경우 회원제 골프장은 150만원 정도가 들고 대중 골프장은 1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 여기에는 그린피, 카트 이용료, 그리고 식사비가 포함된다. 지난 5월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골퍼들이 한 해 지출하는 캐디피는 1조원에 육박한다. 삼성, 현대차, SK그룹 등의 대기업 임원이나 홍보 담당자들은 10월부터 골프를 중단할 방침이다. 수도권 주말 골퍼의 대부분은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많아 골프업계가 위기의식을 느끼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접대 골프가 사라지면서 수도권 골프장 대부분의 주말 예약률이 30% 가량 떨어졌다. 하지만 김영란법으로 인해 과연 골프접대, 즉 골프장에서 기업 임직원과 이해당사자가 동반 라운딩을 하는 일이 사라질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법 시행 초기 ‘시범케이스’가 되는 것만은 피하자는 게 공통된 목소리다. 벌써부터 골프비 명목의 현금을 사전, 사후에 지급하거나, 담당 직원의 급여를 올리거나 혹은 개인이 각자 부담하는 방법 등을 고심하고 있다. 

            사실 법 하나가 이만큼 관심을 끌었던 예가 드물다. 김영란법은 쇼크 요법을 써서라도 국가 윤리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합의 아래 만든 것이다. 법으로 국민의 행동을 바꾸고 그것이 누적돼 관행이 변화도록 밀고 나가자는 의도가 깔려있다. 우리 사회는 뇌물·특혜 사건이 일상화돼 있다시피 하고 촌지와 떡값, 급행료가 붙어야 도장이 찍히는 악습이 구석구석 스며 있다. 부정부패가 없고 편법·특혜·특권이 통하지 않는다는 신뢰는 선진 사회의 필수 자산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결국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미국은 이미 1962년부터 ‘뇌물, 부당 이득 및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해 공직자들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을 1회 20달러, 연간 50달러까지로 제한해왔다. 일본 역시 공직자들은 1인당 50달러로 접대비 상한을 정해놓고 있다. 이로 인해 축적된 신뢰가 사회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그 혜택을 국민 모두가 보고 있다. 어떤 법이든 시행착오는 있게 마련이다. 수없이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관행을 이 법의 24개 조항만으로 규율한다면 부작용과 무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과도한 해석으로 분란이 생기는 것도 일종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법 해석이 모호해 자칫 일상 생활이 삭막해질 수도 있다. 또한 미풍양속과 충돌하는 부분들도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원래부터 대접은 공식적으로 한 적이 없다. 비밀리에 하는 것이 대접이었다. 이러한 지하 분위기를 김영란 법이 없앨 수 있다면, 이행해 볼 만한 법이다. 부작용 때문에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자체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법을 보완해서 완성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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