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에 보면 욕심 많은 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욕심 많은 개는 길을 걷다가 커다란 고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얼마나 신났는지 그 커다란 고기를 덥석 물고는 길을 가게 됐습니다. 길을 걷다가 냇가의 다리를 걷게 됐는데 우연히 다리 아래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아래의 개가 자신 보다 더 큰 고기를 물고 있는 다른 개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 욕심 많은 개는 으르렁 짖기 시작 했습니다. 더 크게 짖다가 그만 입에 물고 있는 고기를 냇가에 풍덩 빠뜨리는 이야기 입니다. 성경에 보면 “욕심이 잉태 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 한즉 사망을 낳는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 인간들이 죄를 짓는 가장 근본은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죄가 생겼으며, 왜 죄를 지을까요? 왜 우리 삶에 평안함과 안녕, 만족 이런 것보다 근심, 걱정, 염려 이런 일들이 더 많이 생길까요?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도, 세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도 다 아는데 왜 하나님께 더 나아가는 것이 힘들까요? 바로 욕심입니다. 욕심을 한자로 풀면 ‘욕심 욕’과 ‘마음 심’입니다. 마음에 욕심을 품는 것이지요. 또 그 뜻은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마음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이라는 동산을 창설하시고, 당신이 지으시고 심히 보기 좋으셨던 즉 많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그곳에 두시고 모든 것을 누리고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단, 동산 중앙의 선악과 만은 금하셨습니다. 말씀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먹어도 된다’로 끝난 것이 아니라 먹어도 되는데...... ’먹되’라는 단어의 뒷부분은 ‘제한,’ ‘금지,’ ‘불허’라는 말이 옴을 뜻합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관심을 거기에 두는 것 허용밖을 넘어 서는 것을 욕심이라고 합니다. 그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침범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주권아래 누리면 되는데 이 선악과를 먹는 다는 의미는 자신이 선과 악을 분별하려는 즉, 자신이 통치자가 되어보려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것이 욕심입니다.

         하와가 먼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게 됩니다. 하와는 아담에게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와는 선악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 관심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하신 말씀을 '죽을까 하노라'로 바꾸어 사단에게 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먹어도 안 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사단에게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미 하와의 마음에는 궁금함을 넘어 욕심이 생긴것입니다. 그 때!!! 그 기회를 사단은 절대 놓치지 않고 유혹으로 넘어뜨립니다. 이러한 방법이 죄의 시작이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대도 과거에 살았던 모든 세대들도 그렇게 넘어졌고 죄를 지었습니다. 성경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처음 시작하는 단어가 욕심입니다. 그렇게 우리 마음에 욕심을 품기에, 더 가지기 위해, 더 누리기 위해, 더 높아지기 위해, 더 편해 보려고…… 그 욕심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 보다 그것이 더 중요하기에…… 그 욕심에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계속되는 마음이기에 늘 불안하고, 염려가 있고 근심이 따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렇게 정의해 주십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앞으로 우리의 삶 속에 어떤 생각이 우리를 사로잡아야 하는지, 사망으로 가는 길인 육의 생각으로 채울지, 아니면 생명과 평안인 영의 생각으로 채울지, 선택은 우리 몫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 또한 우리 몫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 못하고, 욕심 때문에 하나님도 섬기고 이방 사람들이 풍요의 신이라 불렀던 바알도, 다산의 신이라 불렀던 아세라도 섬기는 마음이 바로 욕심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 왕도 욕심 때문에 다윗을 죽이려는 죄를 지었고, 성경 속의 모든 인물들의 죄의 원인이 욕심이었습니다. 죄의 근원을 깨달은 지금 이 시점의 우리의 선택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깨닫게 하심도 주님의 은혜이시기에 앞으로의 삶의 방향도 주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 인도하심 안에 거하느냐 거절하느냐는 우리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저와 우리 모두 안에 임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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