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 성적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 생활에서 아이들이 견뎌야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우리 아이들이 더욱 적나라하게 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바로 인종차별이다. 아예 대놓고 아시안들을 무시하는 백인 녀석들이 떼를 지어 다니며 우월감을 표시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드러나면서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피해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에 이 사실을 얘기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해결방법이 없다. 학교측에 불리(bully) 사실을 알리면 간단한 조사과정을 통해 삼자대면을 하고, 경중에 따라 하루 이틀 정도의 정학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그들의 계속된 괴롭힘은 막을 길이 없다. 뒤에서 수근되면서 놀리는 불리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어쩌면 학생주임에게 고자질했다며 더욱 지능적으로 놀려댈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은 인종차별에 관해서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얼마전에 샌프란시스코 교육원이 주관하고 통합한국학교에서 주최한 청소년 특강이 열렸다. 우주탐험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강의 내용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찾을 수 있는 겉도는 내용들이었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강의 방식은 지루한 시간만 보내게 했다. 강의 도중 자리를 떠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른들이 듣기에도 어설펐던 이번 강의가 아이들 귀에 들어왔을리 만무하다. 강사가 이번 주제와 관련이 있는 사람인지, 신문광고의 이력에 쓰인대로 실제로 로켓 연구에 관련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허술한 시간이었다는게 참석자들의 평가다. 힘들게 준비해온 이 청소년 특강이라는 프로그램이 이번 특강으로 인해 관심도가 떨어질까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청소년 특강이라는 것은 미국에 사는 한인 2세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성공 스토리를 전하고, 어려운 전공 분야를 알기 쉽게 일깨워 주면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해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강사 개인의 이름만 신문에 알리는 수준의 강의라면, 이는 처음부터 안하는 편이 나았다. 물론 콜로라도에서 능력있는 강사를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행사 취지에 맞게 강사를 정하고, 그사람의 이력을 꼼꼼히 살펴서 강의 수준을 미리 가늠하는 것은 주최측의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강사는 어떤 내용을 강의할지 정해야 한다. 이번 특강의 주제였던 ‘우주 탐험’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접근 방식이 틀렸을 뿐이다.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빈약한 콜로라도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특강이 열리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왕 할거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 맞다. 특히 지금과 같이 변화무쌍한 시대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주변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히 뿌리를 만들어 주는 내용이었으면 한다.
우리 아이들이 인종차별적 발언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 이민와서 진작부터 선거에 적극 참여해 정치력을 신장시켰더라면,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국의 경제력이라도 자랑할 수 있었더라면, 든든한 대한민국을 미리 만들어두었다면, 한국 문화의 위대함을 진작 세계속으로 널리 알렸더라면 우리 아이들이 지금 이곳에서 이런 마음고생을 겪지 않고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들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뿌리가 얼마나 견고했으며, 자랑스럽게 꽃을 피워왔는지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 역사상 최고의 왕이라고 칭송받는 세종대왕, 그 분이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은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한글은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의 문자 중 가장 발전된 글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의 문자 가운데 유일하게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려진 문자이기도 하다. 장영실은 노비의 신분으로 우리나라의 최초의 물시계인 자력루와 세계 최초로 비를 관측하는 측우기를 발명한 대표적 과학자이다. 제작과정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팔만대장경의 규모는 또 어떠한가. 대장경은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애국심을 담아 만든 것이다. 오늘날 남아있는 경판은 총 81,258판, 한 개의 경판은 가로 약 70cm, 세로 약 24cm, 두께는 평균 4cm이며 무게는 3~4kg이나 된다. 이렇게 큰 경판이 무려 8만 개가 넘는다. 더 놀라운 사실은 경판에 글자를 새기는 전문가들이 글자를 새길 때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절을 했다고 했다. 그 옛날 경판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서고는 현대의 과학 기술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더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 팔만대장경은 이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위대한 인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세계 4대 해신, 성웅 이순신 장군은 명량에서 울돌목의 특성을 이용하여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배를 물리쳤다. 그가 제작한 거북선은 불패신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위기때마다 위대한 시민들이 있었다. 임진왜란을 비롯한 전란 때마다 온 국민들이 합심하여 싸웠으며, 현대사에 들어 1960년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선거에 분노해 시민들과 학생들이 중심세력이 되어 4.19 혁명을 일으켰다. 무력에도 굽히지 않고 투쟁했던 시민들에 의해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승리를 보여주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주의 운동인 셈이다. 일제 강점기때 그 유명한 도시락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 삼일절 만세 운동으로 모진 고문 끝에 순국한 유관순 열사, 청산리 대첩의 김좌진 장군 등도 한국사에서 내세울만한 자랑스런 인물들이다. 불리를 가하는 아이들에게 일일이 맞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그들의 뿌리가 얼마나 대단한 한민족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일이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신은 위대한 민족의 후손이며, 자랑스런 한국인임을 새길 수만 있다면 그깟 놀림 정도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에게 그 당당함을 심어줄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인종차별의 분위기가 만연화되어 가는 지금,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한국인의 자긍심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만이 이 험한 이민사회에서 그들의 뿌리가 되어 줄 것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일반 국민들이 일어나 나라를 구했다. 굳이 한국학교나 단체에서 나서서 주관하지 않아도 좋다. 누구든지 뜻이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우리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고 그들의 미래를 비춰주기를. 그래서 다음 강의는 ‘한국의 위대함’이라는 주제로 진행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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