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은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녔습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은 요즈음 외국 유학길에 오르는 것과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돈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형님은 외삼촌댁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저의 기억으로는 한 달 유학비로 쌀 2말을 외삼촌께 드렸습니다.

당시 외삼촌은 미아리고개에서 더 올라가는 일명 달동네에서 사셨습니다. 당시(1965년경)에는 미아리고개 입구가 버스 종점이었습니다. 외삼촌댁도 아주 가난했습니다. 하숙비조로 보내드린 쌀 2말은 2주일도 못가 다 떨어졌습니다.

쌀이 떨어지면 외삼촌댁 식구들은 죽을 먹고 직장으로 향했습니다. 외숙모님은 형님에게만은 죽을 주지 않으시고 쌀밥을 따로 차리셨습니다. 형님은 극구 사양했습니다. 형님도 같이 죽을 먹겠다고 강하게 말씀드렸고 그 후로는 외삼촌댁 식구들과 함께 죽을 들었습니다.

죽을 먹고 가는 날은 도시락을 싸갈 수 없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형님은 슬그머니 학교 뒷동산에 올라 배고픔을 달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형님의 사정을 모르는 서울 친구들은 왜 점심시간에 어디를 가느냐고 궁금해 했습니다. 저녁에도 죽을 먹었습니다. 한참 때에 하루 두 끼를 그것도 죽을 먹고 견디기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형님은 허기를 느낄 때마다 흰쌀밥이 생각났습니다. 고향집은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가난했어도 쌀밥은 먹고 지냈습니다. 형님은 쌀밥도 생각나고 부모님도 뵙고 싶어 시골에 갈 생각만 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용산역으로 갔습니다. 기차표 없이 몰래 기차에 올랐습니다. 호남선 완행열차가 밤에 용산역을 출발하여 고향 역에 도착하려면 8시간이 걸렸습니다. 완행열차는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밤새 서있어야 했습니다. 중간에 기차표 검사를 하니까 표 검사를 할 때는 들키지 않도록 잘 피해야 했습니다.

고향 역에 내리면 6km(약4마일) 정도를 걸어야 했습니다. 밤새 힘들었지만 정든 집이 가까울수록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샘가에 어머님이 빨래를 하고 계셨습니다. “어머니! 저 왔어요.” “왔냐? 부엌에 가면 밥이랑 반찬 있으니까 챙겨 먹어라.”

어머님이 반갑게 맞아 줄 것으로 생각했던 형님은 매우 섭섭했습니다. 부엌에서 식은 밥을 챙겨 먹은 형님은 마을 뒷산으로 가서 누었는데 금세 잠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얼굴에 쏟아지는 햇볕에 뜨거워 일어나 보니 벌써 오후가 되었습니다.

얼른 일어나 집으로 갔습니다. 어머님은 형님에게 빨리 서울로 가라고 재촉하셨습니다. 내일 학교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당한 말씀이지만 왜 그런지 서운하기만 했습니다. 형님은 다시는 시골에 내려오지 않으리라 마음을 독하게 먹었습니다. 형님은 야간 완행열차를 타고 새벽에 용산역에 도착해서 곧바로 학교로 갔습니다.

며칠 후 여동생으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오빠! 어머님이 반갑게 대하지 안했다고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 오늘 아침 방 청소하려고 어머님 베개를 집어 들었는데 마치 물에 빠진 것처럼 축축했었어! 오빠 고생하는 것은 알지만 자꾸 시골에 오면 공부도 마칠 수 없고 외삼촌께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

어머님의 놀랄만한 절제력과 결단의 결과인지 모르지만, 형님은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도 잘 마치셨습니다. 어머님은 정이 풍부하신 분이시지만 겉으로는 냉정하신 분처럼 보였습니다.

아버님이 토목 관구(건설부)에서 일하실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1957년, 막내 누님이 6살 때였습니다. 부모님은 직장 관계로 시내에 계셨고 막내 누님은 시골에 계신 조부모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조부모님은 막내 누님을 무척 예뻐했습니다. 누님은 어린 나이에도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식사 시간만 되면 누님은 윗목으로 가서 떼를 쓰며 울기 시작합니다. 할머님은 어쩔 줄 몰라 달래기 시작합니다. 가장 맛있는 반찬을 떠먹여 줍니다. 누님은 식사 시간만 되면 습관적으로 윗목으로 올라가 울곤 했습니다.

부모님이 시골에 오셨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자 누님은 습관적으로 윗목으로 가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식사를 마치고 상을 치우셨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자 누님은 또 윗목으로 가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님은 전혀 달래지도 않고 밥을 먹으라고 권하지도 안했습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상을 치우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식사 시간이 되자 누님은 제일 먼저 밥상에 앉았습니다. 어머님한테는 떼가 통하지 않음을 알아챘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은 참 정이 많으셨지만 겉으로는 잘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차갑게 느낄 정도였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먹지 않으려하고, 젊은 어머니는 따라 다니면서 먹이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두 끼만 굶기면 버릇을 고칠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웃곤 합니다.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천국에 계신 어머님과 인자하신 아버님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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