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보면 옥합을 깨트려 값진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린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을 보고 곁에서 핀잔을 주는 제자들을 나무라시며 이 여인의 행위에 대해 주님은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I tell you the truth, wherever the gospel is preached throughout the world, what she has done will also be told, in memory of her.) 예수님께서 ‘그녀를 기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기억된다.’는 이 말 만큼 두렵고 엄중한 말도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선다는 것은 오늘의 나의 삶의 모습과 생활태도를 결정합니다. 어떤 글을 읽다가 이 부분과 관련하여 참 많이 공감이 되었기에 여기에 한 번 옮겨 적어 봅니다. “인생은 어차피 정거장이다. 파도의 정거장이든 바람의 정거장이든 모래의 정거장이든 인생은 결코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파도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사라지고 모래처럼 흩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흔적은 남는다. 결국 흔적이란 존재가 삶에 그리는 덤덤한 지도 같은 것 아닐까. 인생은 흔적이다. 흘러가고 사라지고 흩어질지언정 그 흔적은 소중하다.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사라지고 모래처럼 흐트러질지라도 마음엔 남고 영혼엔 아로새겨지는 흔적, 우리는 이 순간에도 그 흔적을 누군가에게 남기며 산다.  그게 인생 아닐까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너의 흔적이고 너는 나의 흔적이다. 결국 나는 훗날 어떻게든 기억될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정직하게 대면하고, 인생 막판에 자신의 삶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던 한 인물이 노벨상을 재정한 ‘알프레드 노벨’입니다. 노벨은  1895년 11월 27일 자신이 미리 써놓은 유서를 생전에 전격 공개하며 자기의 전 재산을 쏟아 부어 의미 있는 상을 만들겠다고 공표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전격적으로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뜻밖에도 노벨은 자신에 관한 언론의 오보 기사로 인해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신문 기사를 통해 미리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벨은 멀쩡하게 살아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죽음의 소식을 접한 것입니다. 유서를 공개하기 7년 전인 1888년 자신의 친형 루드비그 노벨이 프랑스 칸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한 신문이 이것을 알프레드 노벨의 사망으로 혼동해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 보낸 것입니다. 이 기사를 본 노벨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당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총 350개 이상의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고 폭탄 제조공장과 탄약 제조공장을 포함해 90여 개가 넘는 사업체를 거느린 당대 굴지의 기업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노벨은 자신이 평생 독신으로 고투하며 살아온 삶이 결국 사람들에게 ‘죽음의 상인’으로, ‘죽이는 일을 한 사람’으로밖에 기억되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접하자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7년 동안 ‘나는 죽어서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를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고민한 끝에 결심했습니다. ‘죽음의 상인’이 아니라 ‘인류에 수여되는 최고로 가치 있는 상’의 창설자로 기억되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던지기로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해마다 수여되는 세계적인 상인 ‘노벨상’이 탄생한 것입니다. 결국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이 물음이 자신의 미래를 향한 길을 새로 뚫습니다. 이 물음은 끊임없이 지나온 길을 성찰하게 만들며, 스스로 진정으로 기억되고 싶은 모습이 되기 위해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새로운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기억된다.’는 이 말 만큼 무서운 말이 없습니다. 엄중한 말도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물음에 정면으로 서질 못하고 비켜서고 피해 보려합니다. 비켜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애써 외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아니 그렇게 하려고 몸부림친다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이 물음 앞에 기꺼이 정면으로 서야만 합니다.  어수선하기 그지없는 작금의 고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들이 이 질문 앞에 정직하게 자신을 세울 수만 있었다면 과연 말도 안 되는, 정말 창피하기 그지없는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하는 아쉬움이 참 많이 남습니다. 먼 훗날 역사 앞에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인가?’ ‘어떤 공직자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단순하지만 엄중한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주어진 직위를 수행했어야 할 사람들이 현실의 이익과 정파적 이해관계에 눈이 멀어 오늘을 망가트리는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인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향유를 부었던 여인을 향해 “그를 기억하리라!”고 말씀하셨던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너를 기억하리라!”고 말씀하실 바로 그 소리를, 천둥 같은 울림으로 감지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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