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참 좋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시는 나를, 나도 사랑 합니다’ 혼자 늘 되새기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12:31)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만큼 이웃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긍휼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긍휼이 없습니다.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매우 잔인합니다. 나무가 장시간 강한 바람에 시달리거나, 아슬아슬한 산기슭에서 자라거나, 눈 더미 등에 눌려 무거운 하중을 받으면 나이테 속에 이상재(reaction wood)가 형성됩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따듯한 햇빛만 받고 살지는 않습니다. 많은 일이 어긋났고, 오랫동안 절망에 눌려 있거나, 폭풍우 같은 고난에 허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삶속에 특이한 옹골(壅骨)을 갖게 되었고 나만의 고유존재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를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세월과 특성을 살핍니다. 실수투성이에, 특이한 생장, 이상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그대로 사랑합니다. 내가 신(神)의 특별한 작품이기 때문이지요.

        오스트리아의 화가 <프리덴스라이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직선에는 하나님이 없다’ 직선이란 뭘까요? 다른 편을 용납하지 않는 완고함,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줄 모르는 이기,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 주위를 살필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조급함 같은 것이 아닐까요? 천천히 고불고불 가면 너무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는데 자동차 타고 직선으로만 달려가니 스치는 일생이 되고 맙니다. 빨리는 가지만 누리지는 못합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사실 직선이 아닙니다. 누가 아파트의 선을 보고 아름답다고 합니까? 우리 한옥지붕의 구부러진 선을 보십시오. 그게 자연스러움입니다. 자연스러움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작도하듯 그어진 완벽한 직선에는 경쟁의 차가움만 있을 뿐, 하나님의 마음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다 곡선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간, 우리 자녀가 지닌 가능성, 우리가 겪는 현실.., 이 모든 것은 다 구부러진 곡선을 가지고 천천히 자랍니다. 재촉하지 마십시오. 조바심내지 마십시오. 모든 일을 직선 긋듯이 똑바로, 정확하게, 직통으로, 본론만, 그런 태도는 하나님과 마찰합니다. 그런 마음으로는 ‘왜 정의로우신 하나님이 이러냐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이 그러면 안된다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가르치려고 덤벼들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상처받기 십상입니다. 신(神)은 우리를 그렇게 다루지 않습니다. 번데기도, 알도, 어미가 껍질을 까주지 않습니다. 나의 미완성 상태를 인정하고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흠이 없지는 않군, 그러나 뭔가가 있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러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두드러진 옹골이 못마땅합니다. 그래서 나름 어려운 세월을 딛고 형성된 다른 사람의 이상재를 비웃고 야유합니다. 구부러진 모습을 가지고 미장원에 앉아 뒷말 합니다. 그리고 식당에서 그 귀한 밥을 먹으며 그 사람이 변해야 한다고 혈기를 내며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요21:22 새 번역: 네 마음에 들건 안 들건 간에 그 역시 충분하다) 우리는 자주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보십시오. 어두운 마디를 지닌 광솔(옹골)이 불이 붙으면 얼마나 잘 타고 오래가는지 아십니까? 그 옹골이 박혀있는 악기(바이올린,첼로,키타 등등)가 얼마나 울림이 좋은지 아십니까? 대나무에 마디가 없으면 대나무로 자라지 못 하는거 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 삶속에 있는 광솔이나 옹골이나 마디를 가지고 기막힌 걸작을 만들기를 기뻐하십니다. 창조주의 손에 만들어지기를 거부하는 마음이 곧 죄입니다. 성장이란 뭘까요? 성장이란 신(神)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는 존재로서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 옹골도 만드시고, 마디도 만드시고, 광솔도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기가막힌 은혜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일 가운데, 사람 가운데, 죄악 가운데, 고난 가운데서 이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세상을 등지고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람으로,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목수로 손 마디마디에 광솔이 박히시고, 배고프시고, 목마르시고, 약하고, 외롭고, 온갖 비난과 모욕과 침뱉음도 받으시며 가시관 쓰시고, 채찍에도 맞으시고, 끝내 십자가에 못까지 박히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사53:11)하셨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제 삶속에는 옹골도 많고, 광솔도 많고, 마디도 많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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