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위한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박3일 일정으로 미국 방문에 나선 아베는 아시아 지도자로서는 최초로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로써 아베 총리는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백악관을 방문한 두 번째 외국 정상이 되었다. 주말 내내 트럼프와 함께 식사와 운동을 하며 정상회담 일정 곳곳에서 서로 간의 우의를 드러내려는 모습을 보였다. 공식 일정 가운데 정오부터 시작되는 모든 행사는 아베 총리와 함께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공동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에게 "미국인을 대신해 그 유명한 백악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네며, 아베의 손을 오랫동안 잡고 있었다. 아베 총리 역시 기회가 날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공동기자회견 인사말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뛰어난 사업가"라고 지칭한 아베 총리는 공직 경험이 없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보여준다고 치켜세웠다.

        워싱턴 D.C. 일정을 마친 다음날인 11일, 두 사람은 플로리다 팜비치의 트럼프 소유 골프장 두 곳에서 총 27홀 코스를 돌며 친분을 다졌다. 애초 18홀로 예정돼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으로 점심 뒤 8홀을 추가했다. 오전 18홀에서는 세계적 골프선수 어니 엘스 등 프로 골퍼 2명과 함께 라운딩을 했지만, 오후 9홀에선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멋진 시간을 보냈다”며 골프장에서 아베 총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아베 총리도“컨디션이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이틀간의 체류 기간 동안 2차례의 오찬과 2차례의 만찬, 5시간의 골프 회동이 보여 주듯 외교·안보 측면에서 미·일 관계가 신(新)밀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아주 특별한 관계를 선사하려 했고, 두 나라 관계도 그렇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했다. 아베 총리로서는 정상회담과 에어포스원 동승, 이어진 골프 회동으로 체면을 세웠다. 국내적으로‘조공 외교’라는 비난을 샀지만 미국 내 70만 개의 일자리를 대거 창출하려는 투자 선물 보따리를 준비했고, 상대방을 만족하게 하려는 섬세한 준비와 태도로 무난하게 회담을 끌어갔다. 그런데 트럼프와 아베가 달콤한 밀월여행을 즐기고 있는 동안, 북한은 또다시 일을 냈다. 두 정상이 워싱턴 정상회담을 끝내고 플로리다로 자리를 옮겨 골프를 치고 있을 때 사거리 500㎞에 이르는 탄도미사일을 기습적으로 발사한 것이다.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미일 정상 만찬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 직후“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내게 매우매우 높은 우선순위”라며 북한을 겨냥한 메시지를 내놓은 지 하루 만이다. 그런 면에서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더구나 이번 미사일은 북한 내부적으로 대단한 성과라고 평가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첫 미사일 도발로, 위협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트럼프 새 정권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평안북도 방현 지역에서 쏜 이번 미사일은 500㎞를 날아가 동해에 떨어졌다. 북한은 지난해 무수단미사일을 8번 발사해 7번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사거리가 3000㎞ 이상인 무수단미사일을 500㎞로 줄여 발사에 성공했다. 무수단미사일은 한국을 돕는 미군이 집중된 괌과 오키나와에 닿는데다 미 본토를 겨냥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기반이 되기에 그 의미가 심상찮다. 더구나 지금까지 사용되어온 액체연료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발사할 수 있는 고체추진연료를 사용한 개량형이라면 분석이 나오면서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미·일 두 정상은 11일 밤 일정 외의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북 공동 대응을 다짐했다. 아베 총리는“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결단코 용인할 수 없다”고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미국은 100% 일본을 지원한다”고 응수했다. 북한의 김정은은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이로 인해 미국과 일본의 사이만 돈독하게 만들어준 셈이 되었다. 지금까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 두 정상이 함께 자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을 제외하고라도 여하튼 백악관과 플로리다주 트럼프 대통령의 별장에서 이뤄진 릴레이 회담과 골프 회동으로 미·일 양측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아베는 트럼프의 환심을 사 아베노믹스의 기초인‘엔저’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트럼프가 1조 달러를 투자할 인프라 사업에서도 기회를 찾겠다는 계산으로 미국을 찾았다. 또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빚는 센카쿠열도에서 미국의 지지를 확보한다는 속셈도 품고 왔다. 이를 위한 초석으로 아베는 이슬람권 7개국 국민의 한시적 입국 거부 등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대한 평가 요청에도 줄곧 입을 다물어왔다. 이 문제와 관련해 입을 다문 G7의 지도자는 아베 총리가 유일했다. 트럼프 역시 미국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일본의 더 많은 투자와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위한 일본의 더 큰 양보를 이끌어내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속이 빤히 보이는 계산이지만,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다.

        이처럼 국익을 놓고 치열한 실리 싸움이 전개되었던 트럼프-아베 회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트럼프 정권이 한반도 정책에 아직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는데다 한국은 사실상의 국정 공백 상태에 있는 터여서, 말 이상으로 효과적인 대응을 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가장 아쉬운 것은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한국의 목소리가 반영될 여지가 좁다는 점이다. 이번 트럼프와 아베의 회동을 보면서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호감을 갖는 우방은 일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솔직히 미국이 일본과의 동맹을 돈독히 할 때마다 우리는 속이 쓰리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트럼프와 골프를 같이 칠 대통령도, 한반도 정책을 논의할 국군통수권자도 없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많이 바치고, 그만큼 얻겠다는 아베의 조공외교를 무조건 비난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미국에 바칠 것도 없다. 그래서 받아낼 것도 없을지 모른다. 이제는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의 핵문제가 아니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트럼프의 뇌리에 스치지도 못하는 비루한 현실을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이 되든 안되든 한국은 올해 새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가 아베를 극진히 대접할 때에도 우리의 대선 후보들은 아랑곳 않고 반탁과 친탁으로 나눠져 태극기 집회와 촛불집회에 집착하고 있었다. 한반도의 주인은 한국 국민이지만, 국민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은지 오래다. 트럼프에 의해 한반도의 미래가 결정된다면, 체면 던져놓고 북한에 대한 경고를 확실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이 낫다. 북한이 핵을 장착한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한반도를 비롯한 인류는 자멸의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반이민행정법으로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도 휴가를 즐기는 트럼프, 그와 아베와의 달달한 밀월여행 중에도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일이었다. 한국을 뒷전에 두더라도트럼프의 우격다짐식의 행정이 아베보다도 북한에 먼저 적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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