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사, 김정남 사건 한국이 배후“내부 정치위기 극복 목적”억측

         북한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사건이 1950년대말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가 실행한 독극물 암살사건과 유사하다는데 군사전문가들이 주목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김정남 시신에 대한 첫 부검에서 사인을 규명치 못했던 이유가 당시 소련의 암살작전처럼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고안된 독극물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959년 10월 15일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지도자로 독일에 망명해 있던 스테판 반데라가 뮌헨 자택 앞에서 신문을 집어 들다 한 괴한이 뿌린 스프레이를 들이마시고 쓰러진 뒤 곧바로 숨을 거뒀다. 독극물은 몇분 지나지 않아 증발해버렸고 반데라의 외견상 사인은 고혈압에 의한 심장마비와 유사했다. 하지만 2년여 뒤인 1961년 11월 독일 사법당국은 반데라가 당시 니키타 흐루시초프 서기장의 지시로 당시 29세의 KGB 요원 보그단 스타친스키이 실행한 암살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KGB는 1957년부터 스타친스키에게 청산염 가스를 내뿜는 스프레이 건을 사용해 요인을 암살하는 법을 훈련시켰다. 이 독가스는 심장 발작을 초래해 피살 대상이 마치 심장마비로 자연사한 것처럼 고안된 무기였다. 이 스프레이 건은 1957년 10월 스타친스키가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작가 레프 레벳을 뮌헨에서 암살하는데도 사용됐다. 반데라에겐 개량된 독극물이 사용됐다. 독일 슈피겔지는 지난 2011년 3월 미국과 소련 첩보원들이 냉전 당시 사용한 살상무기를 소개하며 당시 양심의 가책을 느낀 스타친스키가 자신이 소련에서 훈련을 받고 독일에 밀파된 고정간첩이라고 자백하며 독극물 스프레이 무기가 처음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캐나다 칸와디펜스리뷰의 군사전문가인 핑커푸도 말레이시아 중문매체 중국보와 인터뷰를 통해 이번 암살작전이 반데라 암살 당시 사용된 스프레이 건과 유사한데 주목했다. 그는 “이번 암살작전이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해 김일성 일가의 심장병 병력까지 살펴 이뤄진 것처럼 보인다”며 “김정남이 공항 밖에서 암살됐다면 의사들이 심장발작, 또는 자연사망이라고 진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정남의 시신을 재부검하더라도 어떤 독극물 흔적도 검출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장마비로 보이도록 완전 범죄를 노렸으나 여성 조력자들의 허술한 대처 등으로 결국 북한이 배후로 드러나게 됐다는 셈이다. 김정남 시신을 부검했던 말레이시아 법의학자가 당초 김정남이 이상증세를 보인 뒤 사망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매우 짧다는 점에 주목해 심장마비나 저혈당 쇼크 같은 자연사 가능성도 배제해선 안된다는 주장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핑커푸는 독극물을 이용한 암살작전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는 암살자의 안전 보장이라며 보통 암살 실행 전후에 반드시 해독약을 삼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타친스키 역시 반데라에게 스프레이 건을 발사한 뒤 해독제가 든 병을 깨고는 손수건에 해독제를 적셔 코로 흡입했다.
김정남 친구, 김정남 마지막 몇년 두려움에
편집증적 은둔 생활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된 김정남이 지난 몇년 동안에는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편집증적인 은둔 생활을 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그의 오랜 친구를 인용해 21일 보도했다. 하지만 김정남은 북한 상황을 바꿀 수 없는 무기력감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고 스위스 국제학교 급우 시절부터 알고 온 친구 앤서니 사하키안은 말했다. 김정남이 최근 몇 개월 전을 포함해 지난 2년간 스위스 제네바를 수차례 다녀갔고 그때마다 거의 매일 만나 얘기를 나눴다면서 사하키안은 김정남에 대해 얘기했다. 사하키안은 “우리는 북한 정권, 이복동생(김정은),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얘기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그가 권력에 절대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남이 북한을 통치하려는 야심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거나 좋게 평가하지 못했다. 그는 북한 정권을 멀리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워했다. 두려움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편집증적이었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2011년 초 일본인 기자에게 정치적 견해를 털어놨고 이 기자가 그와 나눈 대화와 이메일을 이듬해 책으로 펴내자 김정남은 침묵했다. 그로부터 1년 뒤 김정남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고모부 장성택이 김정은에 의해 처형됐다. 사하키안은 “그는 북한 상황에 매우 슬퍼했다. 정말로 북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그를 압박했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김정은이 스탈린 시대 태어난 원로 장성이 지배하는 단단한 체계의 일부분이 됐다고 했다. 사하키안은 “김정은이 그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본인도 그런 마음을 갖게 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남은 무자비한 북한 정치 세계에 들어갈 ‘성격이나 의지가’ 자신에겐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북한의 변화를 바라면서도 어쩔 수 없는 무기력감을 느꼈다고 한다. 사하키안은 “그렇게 하려면 냉혈 인간이어야 하는데 김정남은 거기에 맞지 않았다”고 했다. 김정남이 북한에서 주는 돈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고 유럽 내 여러 벤처사업으로 살고 있다면서 제네바를 방문하면 저렴한 에어비앤비에 머물렀다고 그는 전했다. 또 김정남은 외국을 방문하려면 미리 해당 정부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그는 전했다.
북한 대사, 김정남 사건, 한국이 배후
“한국 내부 정치위기 극복 목적” 주장
        말레이시아 주재 강철 북한 대사가 20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사건과 관련 “한국이 이번 사건의 배후”라고 주장했다. 동방일보, 더스타 등에 따르면 강 대사는 이날 북한이 사망자의 신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전에 말레이 정부가 먼저 관련 발표를 하고, 한국 언론이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4일 김정남 사망으로 보도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과 말레이가 공모했다”고 주장했다. 강철 대사는 특히 “한국이 이번 사건을 이용해 현재 자신들이 겪고 있는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사건 발생 후 7일이 지났지만 사망 원인에 대한 명확한 증거도 없다”면서 “부당한 행동을 한 말레이 정부와 경찰의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없으며 북한과 공조수사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앞서 그는 이날 오전 9시54분부터 10시55분까지 1시간여 동안 말레이 외교부에 초치됐다. 지난 17일 김정남 암살사건과 관련 기습 기자회견을 열고 말레이 정부를 비판한 데 따른 조치다. 이어 말레이 정부는 북한 주재 자국 대사를 귀국 조치했다.  강 대사는 초치된 후 쿠알라룸푸르 소재 북한 대사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책임을 전면 부인했다. 말레이 정부와의 정면 대결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강 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정남’을 특정하지 않고 “북한의 여권을 소지한 김철 이라고 칭하며 말레이 정부의 신원확인 결과도 무시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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