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모두를 위한 대통령 되겠다”

문재인, 득표율 41.1%로 당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 당선인의 승리로 민주당은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9년 2개월여만의 정권교체에 성공해 집권여당이 됐다.  9일 실시한 제19대 대통령선거 개표를 모두 마친 10일 오전 6시 15분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문재인 당선인의 득표율은 41.1%로 1342만3784표를 얻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24.03%인 785만2846표를 얻어 2위에 올랐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21.41%인 699만8335표로 득표율 3위를 기록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6.76%인 220만8770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6.17%인 201만7457표를 기록했다.  문 당선인은 당선이 확정된 9일 오후 11시 50분께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한 당선 인사를 통해 “내일부터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국민의 간절한 소망과 염원을 결코 잊지 않겠다”며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 원칙을 지키고 국민이 이기는 나라, 상식이 통하는 나라다운 나라 건설을 약속한 뒤 “위대한 대한민국, 정의로운 대한민국, 당당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정권을 내주고 야당으로 전락하며 뼈아픈 패배를 하게 됐다. 문 당선인으로서는 2012년 18대 대선 패배 후 재수 끝에 대권을 거머쥐게 됐다. 그의 승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가 불러온 조기 대선 정국에서 구(舊) 여권에 대한 극심한 민심이반과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특히 대선 판도를 좌우할 중도층이 박근혜·최한편,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투표율도 최근 2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선관위는 전국 유권자 4247만9710명 중 3280만8377명이 투표에 참여, 잠정 투표율 77.2%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12년 치른 18대 대선 투표율 75.8%보다는 1.4%포인트 높은 수준이며 17대 대선과 비교해서는 14.2%포인트나 높은 수치지만 ‘80% 투표율’의 벽은 넘어서지 못했다.

취임사로 본 국정운영 5대 키워드

          문 대통령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취임사를 통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하면서 향후 5년간 중점적으로 추진할 핵심 과제를 5가지로 압축했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다” 권위주의 청산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다”고 운을 뗀 뒤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 청산을 우선 언급했다. 그는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면서 “참모들과 어깨를 맞대고 토론하고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의 첫 번째 메시지는 권위적 대통령 문화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을 초래했다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국민들로부터 탄핵 당한 박근혜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제왕적 권력 분산
문 대통령은 이어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면서 “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낮은 자세로 일하고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또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고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실제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에도 그는 “검찰을 비롯해 국가정보원, 경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기관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민주적 통제 장치를 만들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분열과 갈등 해소
문 대통령은 이어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한다”며 분열과 갈등을 정치를 정면으로 겨냥하며 “직접 나서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야당은 국정의 동반자이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고도 했다. 이어 탕평 인사 및 적재 적소 배치 원칙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당선 일성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을 강조한 데 이어 이날 취임사에서도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며 통합의 의지를 드러냈다. 선거 때마다 진보ㆍ보수라는 이념의 틀에 갇혀 선거 이후에도 갈등과 반목을 반복했던 관행을 벗어나, 탄핵 이후 분열된 민심을 하나로 묶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는 개혁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한반도 평화
문 대통령은 리더십 문제에 이어 당면 과제로는 최근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위기 상황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다”면서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고,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해 말 언론 인터뷰에서 “당선되면 평양부터 가겠다”고 밝혀, 보수 진영으로부터 덧씌워진 ‘안보 불안’ 이미지를 벗어내겠다는 의도이다.
경제와 민생 해결
문 대통령은 ‘일자리 대통령’ 공약도 재확인했다. 이어 “지역과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의 길을 모색하겠다”면서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동시에 재벌개혁을 추진하고 이번 정부에서 정경유착이라는 말이 완전히 사라지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선거 기간에도 일자리와 경제민주화를 동시에 강조했다. 특히 대기업 총수 일가의 불법경영승계를 통한 지배력 강화를 방지하고 일감 몰아주기나 부당 내부거래와 같은 재벌의 횡포에 대한 규제 및 처벌 강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실장, 문재인 대통령이 걸어온 길

          문 대통령은 1953년 1월 경남 거제에서 피란민 가정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누나와 여동생들은 주부이고 남동생은 원양어선 선원 생활을 했다. 함경남도 흥남 출신 부모는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때 월남해 경남 거제에서 문 대통령을 낳았다. 그 당시 모두가 그랬듯 가정 형편은 어려웠다. 아버지는 포로수용소에서 막노동을, 어머니는 문 대통령을 업고 계란 행상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가계는 어려웠지만 머리는 명석해 지역 명문인 경남중·고에 입학했다. 하지만 부유층 자제가 많이 다녔던 명문 학교에서 빈부 격차와 세상의 불공정함을 접한 문 대통령은 반항심이 생겼다. 술·담배를 하고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소위 ‘문제아’로 불렸다. 정학을 네 번 당했다. 서울대 상대 입시에서 낙방한 뒤 재수 끝에 1972년 경희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 진학 후에도 반독재 학생운동에 몰두했다. 1975년 대학 4학년 때 유신 독재 화형식을 주도하다 서대문구치소에 4개월간 수감됐다. 실망한 아버지는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석방 뒤 특전사령부로 강제 징집된 문 대통령은 자신이 “뜻밖으로 ‘군대 체질’이란 걸 발견했었다”고 말한다. “학교에서는 벌 받기 바빴는데 군대 가서는 상을 더 받았다”고 했다. 당시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고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미루나무 제거 작전에 최정예 요원으로도 투입됐다. 선거운동 기간 특전사 부대를 방문한 문 대통령은 총기를 조준하기 전에 하늘을 쳐다보고 동공을 축소하는 군 시절 훈련 모습을 재현하기도 했다. 1978년 전역했지만 구속 전력으로 복학도, 취직도 되지 않아 낭인(浪人)으로 세월을 보내던 중 부친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문 대통령은 “아들이 잘되는 모습을 아버지에게 한 번도 보여드리지 못해 회한(悔恨)으로 남는다”고 했다. 49재를 마치고 전남 해남 대흥사에 들어가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1980년 ‘서울의 봄’ 시위에 나섰다 체포돼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서 사시 합격 소식을 들었다. 1981년 경희대 2년 후배(성악과)인 김정숙씨와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1남 1녀를 뒀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지만 시위 구속 전력으로 판사로 임용되지 못한 문 대통령은 부산으로 내려가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198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다. 두 사람은 합동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부산·경남 일대 시국 사건을 수임하며 이름을 알렸다. ‘법무 법인 부산’을 세우고 변호사 생활을 하던 문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 출마한 노 전 대통령의 부산 선대본부장을 맡았다. 청와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지내며 임기 내내 노 전 대통령 곁을 지켰고, 격무와 스트레스로 치아 10개가 빠졌다. 문 대통령은 2011년 자서전 ‘운명’을 쓰고 현실 정치에 발을 내디뎠다. 2012년 4월 총선 때 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됐다. 그해 문 대통령은 이후 본격적인 정치에 나섰다. 2015년 2월 당대표 선거에서 박지원 의원에게 이겼다. 하지만 결과는 국민의당 분당(分黨) 사태로 이어졌다. 안철수 후보와 중도 성향 호남 의원들이 당을 나갔고 새 인물들이 민주당을 채웠다. 그가 뒤로 빠지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데려와 치른 20대 총선 결과는 ‘민주당 1당’이었고, 지난달 3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문 대통령은 재수 끝에 9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 문재인 제19대 대통령 약력 
1971년 부산 경남고등학교 졸업
1980년 제 22회 사법시험 합격
1980년 경희대학교 법과대 졸업
1982년 노무현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를
시작, 노동인권변호사로 활동
1985년 부산 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1987년 부산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1995년 법무법인 부산 설립
2002년 노무현 대통령후보 부산 선거대책본부장
2003년, 2005년 청와대 민정수석
2004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2007년 청와대 비서실장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회 위원장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의위원회 위원장
2010년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2011년 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
2012년 민주당 국회의원(부산 사상구)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부산 사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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