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한국학교 종강식에 참석했다. 아들 둘을 한국학교에 보내놓고도 제대로 관심을 갖지 못해 미안했는데, 종강식이라도 참석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앞섰다. 큰아들은 일주일 내내 놀다가 한국학교 가는 날 아침에 부랴부랴 숙제를 하기 일쑤였다. 작은아들은 한국학교를 너무 좋아해서 학교에서 공부는 커녕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기우(杞憂 )에 불과했다. 한 학기 동안의 아이들이 한국학교에서 거둔 성과는 대단했다. 종강식 당일 아침에 큰아들은 색소폰 연주를 해야 한다며 수선을 떨었다. 하지만 연습 한번도 하지 않고, 악보 또한 당일 아침에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뽑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야단을 쳤다. 진지하게 준비하지 않고 그 따위 실력으로 남 앞에 설 거면 한국학교에 가지도 말라며 호통을 쳤다. 둘째아들은 짧은 문장을 종강식에서 읽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연습했냐고 물었더니, 했다고 해서 믿었다. 그런데 막상 종강식이 시작되어 뚜껑을 열어보니 관람객이 된 필자의 입장에서 참으로 허무맹랑한 무대였다. 큰아들은 달랑 8마디 정도의 전주만 연주했을 뿐이고, 둘째 아들도 준비해간 문장을 무대에서 시원스럽게 읽지 못했다. 나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누구 한명을 크게 칭찬하고, 크게 비난할만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필자는 내 아이들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실망에 “그것밖에 못하냐, 좀더 열심히 연습해서들 나왔어야지”하며 남몰래 질책의 말을 던졌다. 아이들의 표정이 금새 우울해졌다. 긴장한 상태로 무대를 마무리하고 내려오자마자 엄마에게 칭찬 대신 핀잔을 들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렇게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필자의 아이들을 향해 “오늘 너무너무 잘했어, 정말 멋졌어.” 라는 한국학교 선생님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순간 침울해 있던 아이들의 얼굴은 미소로 번졌다. 순간 필자는 뒤통수는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 칭찬의 힘이 이런 거구나.’ 나름 충격의 종강식을 마치고 느낀 바가 있어 주말내내 필자는 아이들을 위한 칭찬거리를 찾고 있었다. 마침 마더스 데이에 풀어보라면서 둘째아들이 일주일전부터 맡겨둔 선물이 있었다. 꽁꽁 싸놓은 포장지를 뜯어보니 학교에서 만든 작은 책이 들어있었다. 한장한장마다 엄마에 대한 사랑을 담은 글씨와 그림들이 가득 있었다. 물론 학교에서 시켜서 한 것이겠지만 그 노력이 가상했다. 그래서 너무 잘했다며 칭찬을 계속 해 주었더니 아빠 것도 준비하고 있다면서 하루 종일 싱글벙글이었다. 몇마디 칭찬에 저렇게 좋아하다니, 내가 너무 오랫동안 칭찬을 안했다 싶어서 되려 아이들에게 미안해졌다.

           필자의 야박한 성격의 가장 큰 피해자는 큰아들이다. 성적을 잘 받아오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 하면서 칭찬보다는 응당한 결과로, 성적이 떨어지면 ‘이것 밖에 못하냐’면서 격려보다는 더 깊은 면박을 안겨주곤 했다. 그런데, 한국학교 선생님의 칭찬이 가져다준 아이들의 표정 변화를 목도한 후 필자는 이번에는 큰아들을 향한 칭찬거리를 찾았다. 지난주 일요일, 학원 선생님과 농구 대결을 한 아들은 16-21대로 졌다면서 아쉬워 했다. 필자는 이때다 싶어 "어른하고 대결해서 그 정도 했으면 정말 잘한 것"이라면서 다소 어색한 칭찬을 던졌다. 그러자 큰아들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시키지도 않은 필자의 집안 일을 거들어주는가 하면, 게임하느라 선뜻 나서기 싫어하는 개 산책까지 콧노래를 부르며 시켜주었다. 칭찬의 효과는 확실했다. 일요일 저녁 9시, 다음날 학교갈 준비를 하라는 필자의 말에 작은 아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월요일까지 제출해야하는 숙제를 마치지 못한 탓이었다. 필자에게 호통을 듣고 난 뒤 둘째가 울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런 동생이 불쌍했는지 큰아들이 함께 숙제를 도와주기로 했다. 둘째가 하면 1시간 이상 걸릴 숙제였는데, 형이 도와주어서 생각보다 빨리 끝낼 수 있었다. 큰아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동생의 숙제를 도와주는데, 늘 다투던 아이들은 “형은 타이핑이 빠르다”, “동생은 컴퓨터 단축 기능을 잘 알고 있다”면서 어느새 서로 칭찬을 주고 받으며 화기 애애한 분위기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칭찬으로 연결되어진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칭찬이 좋은 것은 알겠는데 뭘 칭찬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칭찬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칭찬거리를 찾기 위해 굳이 별도로 시간을 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그러려니’하는 익숙한 태도만 버리면 된다. 낯설게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밥 먹을 때 입을 다무는 모습을 지나치지 말고 “흘리지 않고 야무지게 먹네”라고 칭찬할 수 있다. 작고 사소한 것, 노력하는 모습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배우자에 대한 칭찬도 마찬가지이다. 칭찬이야말로 ‘나중에 해야지’하고 미루지 말고, 눈에 띄는 장점이 있다면 즉시 해야 익숙해진다. 하지만 누군가와 비교해서 치켜세우고 성취의 기준을 남보다 잘한 것에 두는 칭찬은 지양해야 한다.

           주간 포커스와 필자도 칭찬을 받아서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을텐데 그 칭찬의 무게를 잠시 잊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10년간 포커스를 적대시한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뿐이었다. 참으로 행복한 포커스이다. 이런 포커스에서 가장 칭찬을 많이 받았던 기획 기사는 '이민 칠전 팔기'의 주인공들이었다. 콜로라도 한인 사회의 최고 엘리트 여성인 윤애원 산부인과 전문의를 시작으로, 콜로라도 대표 오뚝이 인생길을 걸어온 덴버 M마트 사장 이주봉씨, 한인 사회 건강 지킴이 캐헵 메디컬 클리닉 박수지 약학박사, 플리 마켓의 마이더스 손 김동식 사장, 이웃돕기에 열정을 쏟아온 기부 전도사 김복중씨, 그리고 두 아들을 하버드 대학교에 나란히 입학시켜 자녀교육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형철, 조진숙씨 부부, 믿음과 사랑으로 세자녀를 훌륭히 키워낸 김신종 부부 등이 주인공이었다. 이 기획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이민 선배들의 삶과 애환을 다시한번 재조명하면서, 어려운 경기속에서 삶의 권태기를 맞고 있는 한인사회에 새로운 등불이 되어 주었다. 필자는 오늘 이렇게 칭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 한국학교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한국학교 교사들은 돈으로 따져서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영어든, 한국어든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붙잡고 가나다라를 연습시키고, 한국동요를 가르친다. 아이들에게 한국의 위대한 역사도 인지시켜 준다. 중고급반 아이들에게는 한국의 TV 드라마를 통해 한국문화와 유행을 알려주는가하면, 자칫 그들에게는 외국어가 될 수 있는 한국어로 말하기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한국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치고 한국어에 능통한 아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부분은 발음도 어눌하고, 맞춤법도 틀리며, 말하기도 어수룩하다. 하지만 이러한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는 교사들이야말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한국말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미국에 사는 우리 2세들에게는 도전이다. 우리 아이들의 한국말에 대한 도전을 가능케 해 주는 한국학교 전 교사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칭찬, 응원의 힘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의학적으로도 칭찬의 효과는 밝혀져 있다. 힘찬 박수 소리는 뇌에 전달되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몸이 빨라지고 힘도 생기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칭찬과 응원에 힘입어 평소보다 좋은 실력을 뽐낼 수도 있다.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보다 힘 있고, 자신감 있는 인생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다른 누군가를 기운 나게 할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도 누군가를 춤추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